
“계속 창의적이고 싶어요.”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깜짝 데뷔를 한 전종서 배우가 두 번째 영화 <콜>에 출연하고 나서 밝힌 연기 신념이다. “뭔가를 계속 만드는 연기, 캐릭터, 영화였으면 한다. 주어진 캐릭터에 전종서다운 것으로 새롭고 신선하고 파격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갑자기 실검을 장식하고 있는 여배우 전종서를 만났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출연하며 데뷔작으로 칸느로 직행한 전종서가 두 번째 작품 <콜>로 넷플릭스 세례를 받았다. <콜>은 현재의 '박신혜'가 전종서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스릴러이다. 전종서는 1999년에 존재하고 있다. 전화가 거듭되면서 악몽이 시작된다. <콜> 공개와 더불어 배우 연쇄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인터뷰 화상인터뷰 방식이었다.
- <콜>이 넷플릭스로 공개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는지.
“감상평을 보면 주말에 맥주 마시며 재밌게 봤다, 핸드폰으로 봤다, 노트북으로 감상했다, 빔으로 쏘아 봤다 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시는 것 같았다. 영화관이 제공 못하는 편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 제약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많이 부각된 것 같아 기쁘다.”
● 영숙이라는 캐릭터
- 영숙이라는 연쇄살인범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 방법은?
“어쨌든 연기를 하려면 이해하는 게 우순이다. 영숙이 행동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보시는 분들도 납득이 되도록 접근했다. 서연이(박신혜)를 나쁜 애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타당성을 끊임없이 만들었던 것 같다. 영숙이라는 캐릭터는 그런 식으로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그렇게 설계가 된 것 같다.”
전종서 배우는 기자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곤 어눌하게 말문을 열더니, 질문을 꼭꼭 씹은 듯 신중한 답변을 내놓는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잘게 잘라서 세밀하게 보고, 충분히 시뮬레이션 한다. 시나리오를 통해 분위기나 캐릭터에 대한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여 그 느낌을 갖고 촬영현장에서 상황에 바로 들어간다. 영숙이는 좀 더 분석이 필요했던 역할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확 빠져나오거나 확 돌아버리는. 그런 극단적인 시도가 필요했다.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면 역효과가 있을 것이 같았다. 감독님도 같은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어쩌면 과하게 몰입하면 자유로움을 잃고 강박에 사로잡히는 저의 성향을 촬영 첫회 차에 감독님이 파악하시고 저에게 맞는 디렉팅을 주신 것 같다. 그렇게 모든 촬영이 이뤄졌다.”
- 영숙은 잔인한 살인마이다.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어필되나.
“얼핏 보면 강한 캐릭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기자 입장에서는 강함보단 약함에 더 중점을 두었다. 엄마와의 관계, 서연이에 대한 집착 등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파고들었다. 때때로 파워풀한, 역동적인 영숙이 모습도 있지만 살짝만 쳐도 산산조각날 것 같은 영숙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 ‘박신혜배우님’과 ‘이충현감독’에 대한 리스펙
- 이충현 감독에 대해서.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 복잡할 법도 한데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만 봐도 실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감독님이 포인트를 주려고 한 장면이 시나리오에 부각되어 있었다. 숨겨진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는 비밀 같은 게 있었고, 퍼즐 맞추듯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 감독님의 단편작품(2015년, 14분)을 접하고 그 파격성에 반했던 기억이 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발상, 충격적 아이디어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 장편데뷔 작품이 이 시나리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과 미팅하고 싶다고 먼저 요청을 드렸다. 첫미팅에서 존경한다고 말씀드렸을 만큼 리스펙이 크다.”
- 함께 연기한 박신혜 배우는 어땠나? (전종서는 줄곧 ‘박신혜배우님’, ‘신혜배우님’이라고 했다)
“신혜배우는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배우이다.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것,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있었다. 신혜배우님과 연기를 맞추다보면 그게 확실해진다. 극중 둘의 관계는 절대관계이다. 한 쪽이 에너지를 주고나면 균형이 깨져버리게 된다. 시나리오는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다. 영숙이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면 신혜배우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 영숙이가 좌절하기 위해서는 신혜배우님이 달려주셔야 하는 구조이다. 핑퐁게임처럼, 매회 차 제가 폭발해야하는 것만큼 상대배우도 폭발해야했다. 신혜 배우는 바닥을 쳐야하는 역할이다. 매회 차 눈이 충혈 되어 가시곤 했다. 제가 만약 그렇게 했다면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을 것 같다. 끝까지 중심을 놓지 않고 평행이론을 가져가 주셨다. 서로 균형을 잘 맞춘 것 같다.”
- 영숙이의 광기어린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소감은.
“그런 평가, 리뷰를 접하고 기뻤다. <콜>이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 5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다듬었고, 스태프들의 피땀 노력이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초고부터 시작하여 제작사, 감독, 콘티, 촬영감독, 의상, 분장, 조명팀 모두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분들이 노력으로 서연이는 서연이에게, 영숙은 영숙에게,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본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다.”
- 영숙이 같은 센 역할을 하면 후유증이 없는가.
“처음에 연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열이 많이 났다. 온몸이 각성된 것처럼. 잠이 잘 안 오고 몸이 불같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초반에 그랬다. 2주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어 괜찮아졌다. 과격한 연기, 역동적인 모습,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은 초반에 한 달 정도 몰아서 촬영을 한 것 같다. 그 이후는 괜찮았다.”
- 서태지 음악은 어땠나.
“서태지는 제 세대가 아니다. 하지만 워낙 전설적인 아티스트라 알고는 있었다. 유튜브 많이 찾아봤고, 항상 노래를 들었다. 잔잔한 서정적인 곡보다는 역동적이고 비트가 센, 빠른 그런 쪽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중에 ‘울트라맨이야’처럼 실제로 영화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때 같이 많이 들었던 곡이 빌리 아일리쉬 노래이다.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보았다. 실제로 영감을 받은 요소가 있었다. 약간은 기괴하지만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그런 매력을 많이 참조했다. <콜> 찍으며 음악에 많이 기댔다.”
전종서 배우는 그러면서 실제 좋아하는 가수는 ‘지오디’라고 말하곤 활짝 웃었다.

● 욕도 자연스럽게, 40대 연기도 자연스럽게
- 욕하는 연기는 어떻게 했나? 연습은 어떻게?
“따로 욕 연습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대본에도 욕은 나왔지만, 영화에 사용된 것은 애드리브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원래 대사처럼 자연스러워졌다. 테이크를 거듭할수록 그게 연습이 된 것 같다. 입에 붙고,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 영숙이의 과격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 것 같다.”
- 촬영 현장은 어땠는지. 박신혜 배우와의 호흡은?
“유독 혼자 촬영하는 것 같았다. 영숙은 고독한 인물이고, 큰 집에 있는 콘셉트였다.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추게 되는 날은 그 사람을 죽이는 날이다. 살인의 연속이다. 호흡을 맞추고 싶지만 그게 없었기에 ‘콜’속의 영숙이 캐릭터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박신혜 배우와 이뤄진 대화의 90%는 전화통화이다. 서로의 촬영장에서 목소리를 해 주며 촬영을 한 것이다.”
- 40대 영숙을 연기하면서 준비한 것이 있는지.
“대본을 보면서 그 점을 감독님께 여쭤봤다. 40대 영숙은 제가 하는지 다른 배우가 하는지. 20대가 40대를 연기를 하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감독님이 ‘영숙이’가 다 하는 거라고 하셔서 설레기도 했다. 40대는 애매하다. 굳이 40대의 연기는 어떻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현재의 이런 모습을 단서로 삼았다. 입고 있는 의상, 분장, 흉터. 이런데서 힌트를 얻었다. 조금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살이 빠져 핼쑥해진, 좀더 차갑고 어두어진 모습. 동작이 느리고, 표정이 없고, 단순하고, 시크하게 연기했다.”
- 영화에서 보여주는 웃음소리가 특별했다.
“영숙은 럭비공 같은 아이였다. 순수하다가 날카롭게 변하는 극과 극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장난기가 도져 악동처럼 굴 때는 아이처럼 낄낄낄 웃어보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접근해서 웃어본 것 같다.”
- 엄마에게서 매를 맞는 장면은.
“전문가 선생님에게 코치를 받았다. 이엘 선배님이랑 같이 연습실에서 합을 맞춘 장면이다. 촬영장에도 선생님이 오셔서 몸동작, 디테일을 많이 살펴주셨다. 이틀에 걸쳐 촬영했다. 그 장면은 엄마가 영숙이를 이러한 이유 때문에 때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벌하고 억압하는 느낌을 줘야한다.”

● “빨간 색 영화, 섹시한 영화”
- ‘영숙이’ 캐릭터는 ‘처키’나 ‘엑소시스트’ 속 캐릭터,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도 생각날 만큼 임팩트가 크다. 캐릭터를 다지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면.
“이 영화를 위해 따로 참고한 캐릭터나 영화는 없다. 노래에 많이 기댔던 것 같다. 그리고, 음악. 사진을 많이 봤다. 출처 모를 사진과 그림들. 영숙이를 연상시키거나 영숙이답다고 생각되는,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으면 감독님과 공유했다. 아마, 영숙이를 만든 가장 큰 것은 그림과 사진인 것 같다.”
“이것저것 많이 봤다. 몸을 만들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인터넷을 활용하여 많은 사진을 봤다. 주로 빨간 색 이미지의 사진을 많이 봤다. 새빨간 색.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의 이미지. 아주 자극적인 사진도 많이 받다. 사람의 형태는 아니지만 작은 악마 같은 모습. 독방에 갇혀 있는 아이의 모습도 참고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노란색 우비를 입고 빨간색 배낭을 메고 산속을 뛰어가는 작은 아이의 뒷모습이다. 하도 많이 보다보니 다 영숙이 같아 보였다. 그 시점에 보기를 멈춘 것 같다.“
- <버닝>의 이창동 감독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버닝> 못지않게 <콜> 촬영 현장은 너무나 좋았다. 모든 스태프들이 자기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창동 감독님께서 알려주신 것은 연기를 한 후 매 테이크마다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해 보라는 거였다. 그렇게 다음 테이크를 가면 자기객관화가 된다. 거슬리거나 과하다면, 혹은 약하다면 다음 회차에서 고칠 수 있다.”
- <버닝>에 이어 <콜>로 주목받는다. 소감은.
“<콜>은 사실 <버닝>을 마치자마자 바로 찍었던 작품이다. 그 시기에 바로 관객을 찾아갈 계획이었는데. 저 역시도 많이 기다렸다. 마치 김장 김치처럼. 오래 묵혔다가 제일 맛있을 때 먹는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영화를 더 완벽하게 편집하고 다듬은 것 같다. 모두가 노력한 것이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발성이 아니고 오래 회자될 수 있는 한국영화였으면 한다. 파격적이고 섹시한 영화이다. 저에게도 그런 영화로 남고 싶다.”
- 다음 작품은 정해졌는가.
“밝히기엔 이르지만 검토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결정되기까지 신중하게 살펴볼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영화 보시는 분들이 재밌고, 신선한 작품. 이런 것이 있었나 하는, 처음 보는 것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영역이 많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버닝>에 이어 <콜>로 전종서 아우라를 만든 전종서는 “감사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세요. 인터뷰 즐거웠습니다.”며 ZOOM을 이용한 인터넷 화상인터넷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벨 소리가 그만 울렸으면 할 영화 <콜>의 끔찍한 빌런 전종서였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전종서/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