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카와 아야
어떤 한 나라를 이해하기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일 경우가 많다. 피상적인 몇몇 정보로 전체를 파악하기란 힘들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애증의 관계인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그런 일본을 다룬 책은 많다. 무슨 목적으로 일본을 알려고 하는지에 따라 읽는 책이 달라질 것이다. 《디스 이즈 도쿄》나 《론리 플래닛》이면 충분할 경우가 있고, 《국화와 칼》이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여기 '일본탐구' 목록에 새로운 책이 하나 추가된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가 쓴 《지극히 사적인 일본》이다.
책 표지에는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요즘 일본’이라는 문구가 있다. 저자의 전직(前職)에 눈이 간다. 저자는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시골마을 고치(高知)에서 자랐다. 고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2008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여 나라, 도야마, 오사카, 도쿄에서 근무했다. 주로 문화부 취재기자로 활동했단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유별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왔었고 곧바로 한국영화의 매력에 빠진다. 2017년 신문사를 그만두고는 다시 한국에 와서 동국대학교에서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았고, 최근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단다. 저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오랫동안 취재했고, 한국과 일본의 매체에 오랫동안 ‘한국관련’ 컬럼도 집필했다. KBS의 해외방송인 KBS월드라디오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일본어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출연하며 한국소식을 전했다. 이 정도면 한국과 일본에 대한 책 한 권을 낼만한 소양은 갖춰진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듣고, 보고, 배우고,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479쪽 분량의 《지극히 사적인 일본》을 탐독해 보자.
일본을 한국과 비교하면 크고, 넓고, 길쭉하다는 것 정도만 인식하고 있는 한국 사람에게 인상적인 이야기부터 전한다. 오사카에 태어나고 고치에서 자란 저자는 기자가 된 뒤, 중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갔었단다. ‘아사히신문’ 기자라고 말했더니 친구의 반응이 “응, 그 신문 들어봤어”였단다. 한국 사람은 다 아는 신문사지만 일본에서는 ‘듣보잡’인가? 일본은 한국처럼 중앙(서울/도쿄)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 처음 들어봤을 동네 ’고치‘의 경우 <고치신문>의 점유율이 88퍼센트에 달하고, <아사히신문>이나 <요미우리신문>같은 전국지를 읽는 사람은 소수란다. 일본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행정구역만큼 다양한 색깔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역별로 음식의 차이만큼 사람들의 특성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인 스스로 잘 모르는, 인식하지 못한 지역사람들의 특징을 찾는 <비밀의 현민쇼>(秘密のケンミンSHOW)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을 정도란다. 오사카 출신은 대체적으로 유쾌하다는 것은 최근 강남의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인터뷰 자리에서 “빵!”했더니 정말 “와” 하고 웃었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북토크 중인 나리카와 아야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저자 나리카와 아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가족, 태어난 곳, 자란 곳, 성장기, 한국 유학기 등 신변잡기에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일본인의 속마음, 지역의 특성, 그리고 도대체 알 수 없는 국민성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소개, 설명해준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민감한 이슈도 건드린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는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한국에 유학 와서 처음 만난 사람 중 한 사람이 김석범 작가의 《화산도》의 한국어 번역가였다)
한국에 오래 거주하며, 한국과 어느 정도 정을 나눴을 일본인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번쯤 받아봤을 것이다. “독도는 누구 것이라고 생각해?”라는. 나리카와 씨는 어떻게 대답할까. 일본 젊은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366페이지에 그 대답이 있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다면 그 부분만이라도 읽어보시길.
읽다보면, 지극히 사적인 나리카와 아야의 한국관, 한일비교론을 만나볼 수 있다. 청소년 학생들을 봤을 때 일본 학생들이 달리기를 더 잘 한다면서 그 이유를 일본 중고생들은 학교공부보다 부(部)활동에 더 열심이란 것이다. 한창 자랄 나이에 뛰고, 놀고, 즐겨야할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좋은 성적이 나올지 모르니까. 물론, 엘리트체육은 별개의 문제이다. 저자는 독도문제에서 오키나와의 류큐 왕국과 북단 홋카이도 개척과 관련한 아이누족 저항까지 언급한다. 어쩌면 일본 MZ세대에 속할 저자는 일본에서 벌어진 ’미투‘문제와 관련하여 ’문화부기자‘로서의 취재경험담도 솔직히 말한다.
요즘 일본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고 현지답사, 성지순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저자의 고향 고치에 1급 하천 중 가장 깨끗하다는 니요도(仁淀)강이 있다. 코발트블루로 채워진 ‘니코부치’가 유명하단다. 호소다 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용과 주근깨 공주>에 나온다. 저자가 나온 고치오테마에고등학교 시계탑은 지블리 만화 <바다가 들린다>에 등장한단다. 고치는 <호빵맨>의 고향이기도 하고, 시바 료타로의 <로마가 간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은 제일 먼저 한국인의 다이내믹함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창의적인 욕설에 기겁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자막번역과 관련하여 어려운 점의 하나가 한국의 욕이란다. 한국 욕을 알려달라는 일본친구에게 ‘개새끼’ 뜻을 알려주면 ”강아지면 귀여운 것 아니냐?“라는 반응을 들었단다. 귀여운 반응이다. 욕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일본 야쿠자영화를 찾아봤지만 일본에는 그렇게 욕이 많지 않았단다. 오히려 말없이 가만히 있는 야쿠자가 더 무서운 것 같단다. 이 책의 교훈인지 모르겠다.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인터뷰] 나리카와 아야, “일본 사람이 말하는 일본, 일본 사람이 느끼는 한국 이야기입니다”
나리카와 아야는 현재 KBS월드의 일본어방송에서 매주 한국을 알리는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부터 <현해탄의 무지개>(玄海灘に立つ虹)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대중문화를 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때부터 시작한, KBS월드에서 제일 오래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 프로에서 한국영화와 한국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했었는데 지난 4월부터는 <컬처 렙 K>라고 독립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영화와 책과 함께 이제는 뮤지컬, 드라마 등 모든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KBS월드라디오 '현해탄의 무지개 '팀
Q. <지극히 사적인 일본> 제목과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나리카와 아야: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다. 제목을 먼저 들었을 때는 여행관련인 줄 알고 좋아했다. 일본 여행 다니며 감상을 남기는 컨셉트인 줄 알았는데, 출판사의 다른 책(‘지극히 사적인 네팔’)을 보니 그 나라의 정치와 역사 이야기도 있는 것이었다. 편집자는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민감한 소재인 것 같아서 고민을 했다. 내가 그 쪽 전문가가 아니기에. 출판사 측은 이전에 내가 한국의 신문(중앙일보)에 연재한 것이 책으로 나온 걸 알고서 저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제가 쓰고 싶은 것과 출판사가 정한 것이 반반 정도 합쳐진 책이다.”
Q. 그동안 일본을 소개하는 책, 한일문화를 비교하는 책이 많이 나왔었다. 혹시 읽은 게 있는지. 그런 책에서 불만 같은 게 있었는지.
▶나리카와 아야: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었었다. 한국에서 일본을 이야기할 때, 일본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일본이 한국처럼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을 다룰 때도 한국은 서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일본 사정은 많이 다르다.”
Q.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프리랜서의 삶을 누리고 있다. 어떻게 보내는지.
▶나리카와 아야: “주로 글을 쓴다. 일본 쪽 요청으로 한국에 대한 글을 쓴다. 일본에서는 영화가 개봉될 때 영화를 소개하는 팜플렛을 만든다. 천 엔 정도한다. 그게 영화팬에게는 인기가 있다. 최근 작업한 것은 <히든 페이스>, <밀수>, <한국이 싫어서> 등이다. 한해 7편 정도를 소개하는 것 같다. 웹디자이너 친구가 만들어준 홈페이지를 통해 집필 의뢰, 원고청탁, 인터뷰 섭외를 받기도 한다. 통번역도 하고. 한국 영화인이 일본에서 홍보를 위해 무대인사할 때 통역도 한다.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Q. 한국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욘사마’ 열풍 때인가.
▶나리카와 아야: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류 붐은 2003년쯤인 것 같다. 난 그 직전에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 물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어릴 때, 1994년 무렵이다. 가족여행으로 한국에 처음 왔었다. 오빠가 맹장염 걸려 병원에 가고 그랬다. 그런데 그때 간호사 언니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눈 게 기억에 남아있다. 재밌었다. 대학생이 되면 한국어 배우러 가겠다고 이야기했었다. 부모님은 반신반의 했었다. 물론, 한국에 오기 전부터 영화는 영화대로 좋아했다. 2002년 무렵이 한국영화가 재밌어지는 시기였다. 영화에 빠진 것이다.”
Q. 한국 유학은 어디로? 홍대 근처?
▶나리카와 아야: “아니 그때 다들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많이 갔었지만 나는 안암동(고려대)으로 갔다. 생각해보니 난 늘 주류 쪽은 안 간 것 같다. 사실 오기 전엔 그런 사정을 잘 몰랐다. 학교에서는 매일 9시부터 1시까지 한국어수업하고, 오후엔 놀려 다녔다. 영화 보러 가고. 그때 체육관도 열심히 다녔다. 태권도를 배웠다. 어렸을 때 엄마 영향으로 발레를 배웠었고, 아버지는 가라테를 했었다. 한국에서 태권도 1단을 땄다.”
Q.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 소식을 전하는 통신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장에서 느낀 ‘기자’의 차이점 같은 게 있을까.
▶나리카와 아야: “<아사히신문>은 일본에서는 큰 신문사지만 그렇게 큰 기자권력이란 건 없다. 한국에서는 언론사 권력이란 게 있다는 걸 조금 느꼈다. 세월호 때 한국으로 취재를 왔었다. 안산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 따로 기자실도 마련해 뒀더라. 와이파이 설치 등 취재지원을 도와주는데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병원 안에 못 들어간다. 병원에서는 기자들 나라가고 그런다. 한국에서는 기자들이 대접받는 것 같았다. 그때 많이 놀랐다.
Q. 나리카와 씨는 부산국제영화제도 꾸준히 취재했다. 일본에는 도쿄국제영화제가 있는데, 둘을 비교해 준다면?
▶나리카와 아야: “2013년부터 매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했다. 솔직히 부산영화제와 도쿄영화제를 비교하기는 힘들다. 도쿄국제영화제는 너무 상업적인 모습을 보인다. 부산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신인영화인을 발굴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부산영화제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맞다. 도쿄영화제는 어차피 곧 개봉할 영화를 미리 보는 느낌이 강하다. 부산은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날 수 있고, 영화인을 키우는 의미가 있다. 물론 지금은 점점 더 상업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Q. 일본에서 기자를 그만 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나리카와 아야: “고민이 많았다. 좌절한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동일본대지진 때였다. 그 직전에 뉴질랜드에서 큰 지진이 나서 뉴질랜드에 있던 일본인이 많이 희생당했다. 도야마 출신이 많았다. 그 때 도야마의 유족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유족 취재가 제일 어렵다. 문 앞에 ‘벨을 누르지 마세요’라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기자니까, 취재 인터뷰를 해야 하니까 편지를 썼다. 이런 이야기 듣고 싶다고. 그런데 거절당했다. 그 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완전히 규모가 다른 큰 지진이었다. 지진 자체가 무섭고, 원전사고도 일어났고, 무서웠다. 가야하는데 못 간 것에 대해 큰 좌절을 느꼈다. 지진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당시 후쿠시마 가는 길은 막혀있었고, 저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그랬다. 기자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1년 뒤, 후속취재를 가게 되었다. 큰 사고가 있으면 매년 그렇게 한다. 열흘 동안 취재를 했는데, 방사능탐지기를 갖고 다녔는데 그게 고장이 났는지 바늘이 정말 홱 돌아가더라. 그런 상황이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갑상선암이다. 이건 연관성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개인이 그걸 밝힐 수 없는 것이니.”
Q. 최근에 본 재밌는 영화가 있다면?
▶나리카와 아야: “<승부>를 재밌게 봤다. 난 바둑을 전혀 모르는데 재밌었다. 일본 작품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일본영화는 아니지만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도 좋았다.”
Q.좋아하는 한국영화감독은?
▶나리카와 아야: (의외로 한참 생각하더니) “신수원 감독님. 데뷔 때부터 좋아했고, <오마쥬> 일본 상영 때 무대인사 통역을 했었다.”
Q. 한국에서 여행은 자주 다니는지.
▶나리카와 아야: “많이 다닌다. 주로 취재 때문에. 최근에 공주에 다녀왔다. BTS벽화마을이 있는데, 멤버들이 제대하니까 일본 출판사에서 그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취재 겸 다녀왔다.“
Q. 한국을 알리는 일본일간지 출신의 작가이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리카와 아야: “솔직히 한국 편, 일본 편드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책에서도 독도가 어느 땅이냐 물어봤을 때 ‘잘 모르겠어요’ 했더니 배신자라고 하더라. 난 한국영화 좋아하는 일본여자일 뿐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저처럼 도쿄 아닌 지방에 살았고, 신문기자로 다른 지방에서 살았던 그런 사람이 쓴 일본과 일본사람에 대한 시선이 담긴 책이다. 아마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일본사람이 썼다면 전혀 다른 책이 될 것이다. 그냥 이런 책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셨으면 한다. 한국의 언론에 일본의 정치인의 발언이 전해지면 ‘왜 일본은 한국을 싫어하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저는 문화 쪽 관련 일을 하는데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은 한국에 관심 많다. 보는 게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리카와 아야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여하는 제 8회 학봉상 언론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23)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쪽의 메신저, 스피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씨의 새 책 《지극히 사적인 일본》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의 동국대학교 박사논문 제목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영화교류 양상 연구 -영화인의 활동을 중심으로>이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