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철 감독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 등 잇달아 흥행작품을 내놓은 뒤, <스윙 키즈>로 숨고르기를 했던 강형철 감독이 신작 <하이파이브>로 돌아왔다. <하이파이브>는 2021년 촬영이 끝난 작품이지만 ‘유아인 문제’로 개봉이 불투명한 상태였다가 지난 주, 마침내 극장에서 공개된 것이다. 강형철 감독을 만나 <하이파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어린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캐릭터 배치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강형철 감독: “개성 있는 특촬물을 기대했다. 저의 첫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제작실장이었떤 유성권 피디가 2014년 <타짜2> 찍고 나서 아이디어를 하나 냈었다. 초능력자로부터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이야기였는데 재밌는 로그라인이 나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스윙 키즈> 끝나고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떤 소녀가 빠른 속력으로 언덕길을 자유롭게 뛰어가는 그림이었다. 가장 연약한 소녀가 힘을 가지면 독특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야기이다.”
Q. 개봉을 앞두고 예매 1위를 차지했다.
▶강형철 감독: “(두 손을 들며) 와우! 요즘 극장이 어렵다. 전체적으로 관객이 많아졌으면 한다. 순위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말이다. 극장에 빈자리가 너무 많다. 마법처럼, 콘서트를 즐기듯이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Q. ‘하이파이브’ 멤버들에 대해 연령대나 성별 안배는 하였는지. 안재홍과 유아인의 경우는 겹치는데.
▶강형철 감독: “안배를 한 것은 아니다. 둘은 30대, 젊은 남자이다. 둘을 설정한 것은 티키타카를 위한 것이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화합이 되는 모습을 생각한 것이다. 정말 잘 안 맞는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어떤 것이 좋을까. 좋아하는 야구팀이 다를 경우?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다가 나이가 비슷한데 서로 조금 다른 것을 생각한 것이다.”
강형철 감독
Q. 티키타카나 트러블은 <슬램덩크>가 생각나기도 한다. 참고하거나 오마주한 만화나 작품이 있다면?
▶강형철 감독: “<슬램덩크>는 어릴 때 너무 재밌게 본 만화이다. 직접적으로 존경의 마음을 담고 싶어 오마쥬했다. 만화적인 설정이 가미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또 다른 설정에는 ‘영춘’(신구/박진영)의 흡입능력이다. 이건 무협지에서 악당들이 흔히 쓰는 공력이다. 흡성대법이라고 상대의 기를 좍 빨아 당기는 무공이다. 췌장의 기능 중에 소화흡수를 하는 특성이 있다 .의학적으로 약간의 연계성도 있고. “
Q. 주인공 이름은 어떤 식으로 지었는지. 이재인의 박완서나 안재홍의 지성은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강형철 감독: “그렇다. 박완서 작가를 좋아한다.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소녀 박완서가 들판에서 뛰어놀던 장면이 연상이 되었다. 그 싱그러움을 주인공에 담고 싶었다. 존경을 담아 이름을 쓴 것이다. 축구선수 박지성은 ‘세 개의 폐’를 가졌다고 한다. 역시 존경을 담았다. 라미란의 ‘선녀’는 말 그대로 미모로 빛나는 인물이기에. 그리고 친구동생의 이름이기도 하다. 감독들은 그런 식으로 주변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한다.”
Q. 슈퍼히어로급 초능력을 가졌지만, 땅바닥에 발을 디딘 서민들의 모습이다.
▶강형철 감독: “시나리오 쓸 때부터 캐릭터를 우리 주변의 인물로 설정했다. 우주에서 날아온 게 아니다. 그러니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아닌 주변 인물의 삶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 일반인의 고단함과 애환이 묻어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빌런은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사이비교주를 택했다.”
Q. 개봉이 늦어졌다. 촬영 당시는 어땠는지.
▶강형철 감독: “그 때가 코로나 시국이었다. 다들 마스크를 써야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아쉬웠던 것은 촬영이 끝나면 함께 맥주 한 잔 할 수가 없었다. 후반은 제가 저질러놓은 일이니까. VFX작업하고, 편집하고, 다시 VFX작업하고, 다시 편집하고, 음악 넣고, 다시 보고. 무한반복이었다. 얼마 전까지 그런 작업이 이어졌다. 기술시사가 끝난 뒤에는 사운드와 색보정을 아주 조금 더했다.”
Q. 장기이식을 한 후 초능력을 얻는다는 설정이다. 그럼, 최초의 초능력은 어디서 나왔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가. 향후 프랜차이즈가 되었던, 프리퀄이 되었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강형철 감독: “힘의 기원에 대해해서는 미스터리하게 시작한다. 타이틀 시퀀스에서 관객들에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암시를 주었다. 고대의 어떤 힘이 사람에게 주어졌고, 그게 시대를 거치며 대륙을 건너간다. 어떤 경우에는 선인에게, 또 어떤 경우에는 악인에게 전해진다. 토로처럼 신화 속 인물이 되기도 하고, 메두사나 드라큘라가 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쪼개지고, 또 합쳐진다. 봉인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이된다. 영생을 얻기 위해 뺏고 빼앗기고. 힘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한국으로 건너와서 지금처럼, 평범한 여섯 명에게 뿌려지는 것이다. 초반은 느와르 미스터리를 시작하여 우당탕탕 소동 속에 이런 톤앤매너의 코미디가 된 것이다.”
Q. 유아인이 연기한 기동은 힙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강형철 감독: “기동은 어릴 때 손대서는 안 되는 위험한 일을 저지른다. 박람회장에서 사고로 시력을 상실한다. 이식 받은 뒤 시력을 되찾고, 초능력까지 받게 된 것이다. 성격답게 그 초능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한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는 않고, 옷을 사 입고 까불거리는 이기적인 친구이다. 그러다가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친구들을 만나, 전기에 감전되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그런 서사를 기동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Q. <신의 한 수>의 최승현, <스윙 키즈>의 도경수에 이어 이번에는 박진영이 출연한다. 아이돌을 캐스팅한 이유는?
▶강형철 감독: “백 퍼센트 그들이 연기자이기 때문이다. 영화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서 생각해서 아이돌을 캐스팅한 것은 아니다. 아이돌이라고 흥행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순수하게 그 배역에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캐스팅의 절대기준이다. 박진영도 연기의 매력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Q. 신구가 사이비교주 역을 맡았다.
▶강형철 감독: “흔쾌히 그 역할을 허락해주셔서 영광이었다. 스탭들이 환호했었다. 박진영 연기를 위해 대사를 읽어주시기도 했다. 식사자리에서 말씀을 나눴었다. 대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다. 한마디 한 마디가 명대사였다. 그냥 말씀하는 것 찍어서 편집하며 영화가 될 것 같았다. 계속 건강하게, 작품 많이 하셨으면 한다.”
하이파이브
Q. 이재인 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강형철 감독: “이재인 배우를 처음 본 게 아마 <사바하>로 백상예술대상 상 탈 때였을 것이다. 객석에서 봤는데 저 반짝이는 아이가 누굴까 싶었다. 수상소감을 말할 때 긴장한 것 같은데 매력이 있더라. 바로 인스타 팔로우 했다. 대본을 쓸 때 완서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배우들을 오디션 했다. 훌륭한 배우가 많았지만 완서 역에는 이재인 배우가 적역이었다. 완서랑 매치가 제일 잘 되었다. 본인의 일상성, 매력이 완서의 매력과 동기화된 것 같았다. 연기자로서의 테크닉도 훌륭하고. 제가 로또 맞은 것이다.”
Q. 안재홍 배우의 코믹 연기에 대해서.
▶강형철 감독: “오정세 배우와 안재홍 배우가 대사하는 것을 보면 내가 쓴 대사가 맞는가 싶었다. 마치 본인이 쓴 것처럼 자연스럽다. 애드리브하는 것 같이. 감독의 의도를 하나로 훼손시키지 않고 배우가 체화해서 연기하는 것이다. 리코더 불 때 재홍이가 그렇게 춤을 출 줄은 몰랐다. 그런 뻣뻣한 몸으로 춤을 추다니. 안재홍과는 코미디 결이 잘 맞았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진지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국밥을 먹는 것이다. 그 사람이 마치 턱시도를 입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공간에서 국밥을 먹는다면 재밌을 것이다. 젓가락질 못하는 사람이 작은 콩을 집어먹으러 애쓰는 것처럼. 그런 진지함이 스크린에 담겼다. 아마 같은 동네사람으로서의 연대감이 잘 발현된 것 같다.”
Q. 요즘 극장이 어렵다.
▶강형철 감독: “관객으로 극장에 가면 실감한다. 7년 만에 신작을 내면서 극장 개봉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느낀다. 저에게 극장이란 소중한 공간이다. 평생의 놀이터이다. 극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은 무시무시하다. 극장의 공기, 냄새, 무드가 특별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극장용 세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이 작품은 마중물이 되어 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왔으면 좋겠다.” (OTT 작품을 만들 계획은 없는지?) “OTT와도 협업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니까.”
Q. 장기이식 후 초능력을 갖게 되면 그 징표로 손목 부위에 문신이 나타난다. 그런데, 라미란만 문신 위치가 다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강형철 감독: “설정을 위해서이다. 양쪽 손목을 보고는 ‘없네~’했다가 반전을 주기 위해. 콘티에서부터 라미란의 능력이 처음 발현될 때 그런 샷을 쓰고 싶었다. 라미란이 센터에 있고, 양 옆으로 초능력자들을 이어준다. 그런 그림을 위해, 컷을 구성했다. 라미란의 연기를 보면 대단하다. 아마 라미란만 봐도 재밌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영화는 한 명씩만 집중해서 봐도 재밌을 것이다. ‘쟤는 뭐 하지?’ 하면서.”
강형철 감독
Q. 아픈 이야기지만 <스윙 키즈>가 평단의 호평과 달리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강형철 감독: “순전히 감독이 관객과 소통을 잘 못한 것이다. 관객과 소통하기엔 거리감이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도 영화는 기록매체이고, 하드웨어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영원할 것이다. 언젠가는 ‘스윙 키즈’가 재발견될 것이라고, 열려있다고 믿는다. 진정성을 담아 만든 것이다. <스윙키즈>의 주제는 아프다. 전쟁은 참혹하다. 이념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는 자들을 고발한다. 진정한 승자는 ‘스윙키즈’이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다.”
“<하이파이브>는 <스윙키즈>의 실패와는 상관이 없다. 개인적으로 저는 비디오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 다양한 장르의 재밌는 영화가 가득한 비디오가게를 채우고 싶다. <스윙키즈>도 있고, <과속스캔들>또 있고. 이번에 나온 신작은 재밌는 오락영화 칸에 꽂혀있다. 재밌게, 깔깔대면서 친구들과 볼 수 있을 것이다.”
Q. 슈퍼히어로물인 셈이다. 강형철 감독이 좋아하는 슈퍼히어로 무비는 어떤 것이 있는지.
▶강형철 감독: “뭐가 있을까. 저는 <크로니클>을 재밌게 봤었다. 작품에 나오는 빌런이 현실적이었다. 미국의 한적한 동네 아이들이 초능력을 얻게 되고 점점 빌런이 되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현실적인 소재로, 화면도 소소하다. 너무 큰 이야기가 아닌 게 매혹시키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행복해지는 초능력? 망각하는 능력을 가졌으면 한다. 요즘 세상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며 근심이 는다. 그런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초능력을 갖고 싶다. 물론 내 성격은 낙천적이고 무던하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혐오의 시대에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 함께 즐기고 싶다. 다함께 즐깁시다.”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신구, 박진영이 출연하는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는 5월 30일 개봉했다.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