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고단했던 삶의 위로를 건네준 한 잔. 정성으로 빚고 세월이 깊은 맛과 향을 내는 우리네 인생이 담긴 밥상을 만나러 가본다.
경기도 지평면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있었다. 물맛이 좋아서, 예로부터 막걸리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전국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양조장은 이전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때가 되면 여전히 막걸리를 빚고 있다. 특히 모내기 철을 앞두고, 농번기 때 새참으로 내갈 막걸리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막걸리를 만들 땐 고두밥을 잘 식혀야 술이 쉬지 않는단다. 정성스레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서 닷새 정도 숙성하면,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막걸리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속앓이했다면서도 계속 술을 빚는 건, 막걸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칠갑산 자락 아래, 청양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 이곳의 일곱 번째 주인인 권경남 씨(72세)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양조장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놀러 가 술밥을 얻어먹으며 고픈 배를 채웠는데, 그게 인연이 돼서 평생 막걸리를 떠나지 못했다. 막걸리를 유통하며 전국에 배달 다니던 경남 씨의 꿈은 ‘나만의 양조장을 갖는 것’이었다. 그 간절한 꿈을 20여 년 전 이루었지만, 건강이 쇠약해진 탓에 요즘 걱정이 많다. 그래도 아들이 아버지의 꿈에 기꺼이 함께해서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단다.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탓에 손이 많이 가지만, 아들 순오 씨(36세)는 아버지의 삶이 담긴 그 방식을 말없이 따르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
처음에 술을 빚기 시작한 건 술 좋아하는 남편이, 조금이라도 건강한 술을 마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수원 백씨 문중의 전통주를 복원한 김영자 씨(76세)의 술 인생은 술 좋아하는 남편의 건강때문에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중 연회에 올랐던 벼누룩 술은 250년 전 궁중 나인에 의해 수원 백씨 문중에 전해왔는데, 어느 순간 명맥이 끊겼다. 처음에는 누룩을 제대로 발효시킬 줄 몰라 기껏 만든 술을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10여 년 연구 끝에 되살아난 벼누룩 술은 맑은 자태와 산뜻한 과일 향을 자랑한다.
'인생을 빚다. 세월을 달래다' <한국인의 밥상>은 29일(목) 오후 7시 4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