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영원한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 이영애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연극 무대에 오른다. 이영애는 지난 7일(수),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 헤다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기자 데뷔 초기 한 차례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이영애로서는 32년만의 연극 무대란다. <헤다 가블러>는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헨리크 입센의 희곡으로 ‘헤다 가블러’라는 여자의 방황과 선택을 담은 작품이다. ‘헤다’는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 결혼 뒤에 닥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든지 과거에 맞서 싸우든지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 어쩌면 총을 들어야할지도 모른다. 개막 뒤 다섯 번 헤다의 삶을 산 이영애 배우를 만나 연극의 재미와 여성의 성장에 대해 들어보았다.
“감사합니다. 어제까지 5번 무대에 올랐는데 조금씩 갈고 닦으면서 무대를 더 재밌게 만들려고 합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한 번 더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멀리서 찾아와주신 관객분에게 감사한 마음뿐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Q. <헤다 가블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이영애: “작품 제의가 작년에 들어왔거나 내년에 들어온다면 못 했을 것이다. 타이밍이 좋았다.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이 6월 쯤 촬영이 끝나고 이 작품이 구체화되었다. 김미혜 은사님이 입센 작품을 번역하시는 걸 오랫동안 봐왔었다. 내가 입센 작품을 하게 된다면 이 작품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작년 LG아트센터에서 <벚꽃동산>을 보면서 무대에 대한 동경이 생겼었다. 김미혜 교수님의 입센 번역, LG아트센터라는 공연환경, 그리고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감정들이 켜켜이 쌓였다. 이제는 헤다를 연기하는데 적당한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다. <헤다> 말고 몇 작품이 있었지만 이게 제일 하고 싶었다.”
연극 '헤다 가블러'
Q. 작품에서 특별힌 끌린 지점이 있었다면.
▶이영애: “오로지 헤다를 중심으로 그려나가는 이야기가 끌렸다. 제목이 여주인공이다.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 큰 짐이지만 행복한 짐이었다. 헤다에게는 욕심과 욕망 같은 것이 있다. 배우로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을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 행복한 짐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번 무대 연기가 고통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연기하는 것이 재밌다. 처음에는 대사 틀리지 말고, 매뉴얼대로, 연출이 지시한 동선대로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루 이틀 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줄 수 있더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 무대에서 즐기려고 한다.”
“처음엔 악몽을 꾸었다. 대사가 안 나오고, 관객들이 나가버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대사를 한다는 것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무대의 베테랑들인 훌륭한 배우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겨내고, 깨우치고, 공부가 되더라. 무대에서 희열을 느낀다. 행복하다.”
Q. 이영애가 가진 이미지와 헤더 가블러를 비교하자면.
▶이영애: “그동안 제가 가진 이미지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CF에서 보여준 이영애 같은 모습이라면 재미가 없죠. 다른 것을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입센의 작품은 120년 전 관습을 담고 있다. 가족이라는 굴레, 제도적 억압, 불안한 결혼생활 같은 도망가고 싶은 여성의 입장을 그린다. 요즘이라면 ‘그냥 이혼하면 되는’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걸 따르진 않는다.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통할 것이다.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심리상담하는 분이 이 연극을 보고는 요즘 헤다 같은 환자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안에 여자든 남자든, 큰 헤다든 작은 헤다든 그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걸 연극적인 요소로 풀어보면 어떨까.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헤다 입장에서 연기하는 게 편하다.”
Q. 100년도 더 된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를 연기하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지점이 있다면.
▶이영애: “처음 본 것은 완역본이다. 120년 전 입센의 생각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것만 보면 어렵고 지루했다. 이걸 초연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여자’라는 반응이 있었다. 강하고 센 여자라기보다는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고, 예민하기는 하지만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헤다를 그리고 싶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그걸 100프로 이해하고 관객에게 설득하는 연극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랑이든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런 장치적 요소를, 현대적 가미한 작품이다. 원작보다 라이트해지고, 대사도 더 직접적으로 바뀌었다. 대사도 짤막해지고 은유도 많이 줄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은?) “내가 헤다의 감정에 공감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헤다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공감 여부는 무대 밖에 있을 때이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그냥 공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Q.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이다. 카메라투사 연출방식은 누구 아이디어인가.
▶이영애: “리처드 이어의 각색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번 무대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이다. 나머지는 전체적인 흐름은 다 살아있다.”
Q. 김미혜 교수에게서는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연기지도?
▶이영애: “저의 지도교수님이셨다. 연기지도는 아니었고. 영향을 받은 것은 연극을 많이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육아하고 쉴 때, 학교 다닐 때 연극을 정말 많이 보여주셨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다.”
Q. 이번 공연에서 인상적인 무대 설정은 카라바조의 그림(바쿠스)과 무대에 풍선을 나무처럼 세워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을 좀 부탁드린다.
▶이영애: “헤다에게는 ‘에일레트’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옛날 연인이면,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가고 싶은 자유, 예술에 대한 욕구, 갈망을 그를 통해 조종하는 것이다. 디오니스소적인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니 상징적일 것이다. 원래 그 그림을 집어넣은 것이다.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풍선은 처음 헤다가 무대로 걸어 나오면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데 이용된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 수 없는 풍선의 마음. 묶여있는 신세이다. 보시는 분에 따라 해석의 자유가 있을 것이다.”
Q. 앞으로도 연극을 할 것인지, 연극을 하면서 든 생각은.
▶이영애: “당장은. 여건이 안 될 것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반성도 한다. 그동안 너무 쉽게 연기한 것을 아닌가.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이번 공연은 대극장 무대였다. 장단점이 있다. 온전히 배우와 관객이 하나로 심리게임을 할 수 있는,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연기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Q.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와 함께 곧 이혜영 배우의 ‘헤다 가블러’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영애: “헤다 가블러를 비교하면서 보면 좋을 것이다. 헤다의 색깔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관람 계획은?) “마음은 보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제 것부터 제대로...” (하하하)
이영애
Q. 32년만의 연극이란다. 처음 무대에 등장할 때 떨리지 않았는지.
▶이영애: “: 그렇게 떨리는 느낌은 없었다. 사실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잘 해야겠다고 집중했다.” (공연 중에 객석에서 전화벨이 두어 번 울렸다. 그런 경우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집중도가 흐트러질 것 같은데) “영화나 드라마 찍을 때는 카메라에 집중하면 된다. 대사를 까먹지 않기 위해 집중하력 한다. 관객들이 많으니까 눈을 안 마주치려고 했다. 그런데 몇 차례 무대에 오르고 나서는, 관객 분들이 어렵게 이 자리까지 오셨으니 제 얼굴도 보여드릴 겸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대사 할 때도 여기서 하다가, 앞에서 하다가 그렇게 변주를 주고 있다.”
Q. 가족들은 작품을 관람했는지.
▶이영애: “딸은 관심이 많아 다음 주에 와서 볼 것이다. 아빠와 아들은 나중에 남자들끼리 한 번 올 것 같다.”
“이건 100년도 더 된, 입센이 살던 때의 관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작품은 결혼에 메인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관객들에게는 각자 헤다스러움이 있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치유가 될 수 있다면 배우로서는 보람 있는 일이다.”
이영애가 <짜장면>이라는 소극장 연극을 한 뒤 32년만에 무대연기를 펼치는 <헤다 가블러>는 지난 7일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6월 8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LG아트센터는 마곡나루역에 붙어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멋진 건물이다.
[사진=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