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이 나왔던 영화 <사과>(2008)로 데뷔한 강이관 감독은 이정현 주연의 <범죄소년>(2012) 이후 신작 소식이 없었다. 물론, 중간에 단편(옴니버스) 몇 편을 찍기는 했다. 실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선보인 영화 <바이러스>는 코로나 사태로 개봉 시기를 놓쳐 이른바 ‘창고영화’ 신세가 되었다가 지난 주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감염/전파'에 대한 내용인데 죽음의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랑의 바이러스라는 뜻밖의 컨셉트이다. 배두나, 김윤석과 함께 '완전히 뜨기 전의' 손석구, 염혜란이 출연한다. 강이관 감독을 만나 분투하고 있는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드디어 극장에서 만나보게 된다.
▶강이관 감독: “영화는 2019년 하반기에 크랭크인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잠깐이면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래 갔다. 그 동안 편집 작업 계속했다. 음악작업도 오래 했다. 음악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최근이다. 지난주에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Q.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강이관 감독: “굉장히 기쁘다. 무엇보다도 편집실에서 저 혼자 보던 작품을 여러 사람과 보게 되어 기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력이 이제 빛을 발한다.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강이관 감독은 촬영 중
Q. 편집 시간이 길다보니 달라진 것이 있는지.
▶강이관 감독: “그게 오히려 저에겐 장점이 된 것 같다. 코로나 오기 전 상황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바이러스’니 ‘행복바이러스’ 이런 게 조금은 붕 뜬 이야기이다. 이걸 좀 더 현실적으로, 과학적인 이야기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 설정이어서 찍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과 관련하여 공기 감염이니, 비말에 의한 전파니, 증상이 어쩌니 하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찍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랬다. 그런데 코로나 지나면서 사람들이 이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게 장점이 된 셈이다.”
Q. 이민지 작가의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 하게 되었는지.
▶강이관 감독: “<범죄소년>을 찍고 나서 우연한 기회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으로 단편을 찍었다. 좋았지만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나니 내가 하고 싶은 것, 조금은 밝고 명량한,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지민 작가의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도서관에 갔더니 대출되고 없었다. 대신 작가의 <청춘극한기>가 있어 보게 되었다. 재밌는 이야기였다. 그걸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Q. 소설에서 영화로 옮기면서 바뀐 부분은?
▶강이관 감독: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바이러스를 다룬 기존의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부정적이다. 종말론적인 이야기가 많다. <바이러스>는 그런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한 사람이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의 특성상 로맨스가 이뤄진다. 영화를 보면 택선을 통해 백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균 박사를 알아가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이균 여동생(박희본)의 결혼식에 가게 되고 그 가족들도 만난다.”
Q. 작품에 등장하는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강이관 감독: “영화에서는 처음 감기 같은 증세를 보인다. 바이러스 때문일 텐데 좀 더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찾아보니 ‘톡소플라스마 곤디’(Toxoplasma gondii)라는 기생충이 있더라. 조금 특이했다. 원래 고양이의 변을 통해 쥐에게 감염되는데, 감염된 쥐가 이상 증세를 보인다. 마치 용기가 생긴 것처럼 고양이 앞에 나타나고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런 속성을 이용하여 기생충과 바이러스가 뇌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경희대 정용수 교수님을 만나 바이러스를 생각해 내고, 플롯을 짰다. 그게 시나리오에 담긴 것이다. ‘톡소플라스마 곤디’는 실제 있는 것이다.”
강이관 감독은 촬영 중
Q. 실제 증세 발현에서 백신 개발까지는 전 과정이 그려진다.
▶강이관 감독: “바이러스 발생부터 치료법 개발까지 많이 조사했다. 채혈검사는 어느 병원, 어느 연구소에 갈 것인지도 알아봤다. DNA증폭 PCR검사를 하는 것까지. 몸에 반점이 나타나는데 그걸 관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현미경이 필요하다. 이 영화 찍을 당시에 그런 장비를 갖춘 기관은 우리나라에 두 군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흔쾌히 촬영을 허가해 주셨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실험용 쥐 사육장은 많은 대학 부설연구소에 다 있다. 동물실험과 몇 차례 임상단계를 거쳐 백신이 만들어지는데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영화에서는 그게 많이 축약된 셈이다.
Q. 소설에선 ‘미키마우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에선 수필이 미키마우스를 애정한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냥 ‘쥐’다.
▶강이관 감독: “영화로 옮기면서 ‘미키마우스’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실험실에서는 상시로 실험용 쥐를 죽인다. 실제로 실험동물에 대해 반대운동을 하기도 하더라. 영화 속 장면을 자세히 보면 쥐 옆에 그런 동물실험반대 로고가 있다. 쥐가 중요하다. 수필(손석구)이 쥐 인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단순화시켰다.” (택선의 직업도 바뀌었다) “택선의 직업도 소설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 영화에서 영화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특수한 소수의 직업이라 잘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좌절한 인물로 그려보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기는하지만 자기 일을 하면서 갈등을 느끼는 여주인공이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자를 만난다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과학자는 이과적인 머리가 받쳐주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는 직업이다. 그에 대한 동경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봤다.”
Q. 택선을 연기한 배두나에 대해.
▶강이관 감독: “처음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면 피드백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나리오에) 나쁜 것이 없다’며 좋아했다. 그런 게 감독에겐 큰 힘이 되었다. 캐릭터 분석을 많이 해 왔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고 인물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더라. 옆에서 보니 편했다. 배두나 배우에게는 청춘의 느낌이 있다. 20대, 30대가 되면서 마치 이웃에 살더라도 신비로운 느낌을 갖고 있는 배우이다.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SF나 장르물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 같다. 택선이 사랑스럽게 나온 것 같다.”
Q. 이균 역에 김윤석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강이관 감독: “김윤석 배우 원픽이었다. 이 이야기에 김윤석 배우가 들어오면 영화의 색깔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달라졌다. 가상의 바이러스를 다루는데 이균 캐릭터가 균형을 잡아주는 기둥 같은 역할을 했고, 다른 배우와의 앙상블이 현실화 되었다. 문성근, 염혜란과 함께 이런 연기자들이 모이면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두나와의 케미도 맞았다. 둘이 만났을 때 호흡이 잘 맞았다.”
Q. 다른 배우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달라.
▶강이관 감독: “고심을 많이 했다. 이균의 어머니로 출연하는 최형인 배우는 <사과>에서 문소리의 엄마로 나온 배우이다. 1970년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메소드 연기를 제대로 배워오신 분이다. 연우무대에서 활동했고, 교수로 많은 배우들을 키운 분이다. 김윤석의 엄마 역할로 나오면 합이 잘 맞을 것이라고 보았다. 동생으로 잠깐 나오는 박희본 배우도 합이 맞을 것 같았다. 막순을 연기한 염혜란 배우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배우는 연극 <품바>로 유명한 분이다. 잠깐 나오지만 제 역할을 다 하셨다.”
Q. 이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손석구나 염혜란 배우가 지금만큼의 인지도 스타는 아니었다.
▶강이관 감독: “그렇다. 손석구 배우가 완전히 뜨기 전이었다. 시나리오 줄 때 굉장히 좋아했다. 극중 역할이 개성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고, 잘 표현해 주었다. 영화 개봉이 늦어지면서 그 동안 연기자로 잘 되어 기분이 좋다. 염혜란 배우는 <폭싹 속았수다> 이전부터 굉장히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였다. 극중에서 ‘원,투,쓰리,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여러 가지 버전으로 미리 준비해 왔다. 캐릭터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배우였다. 두 분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잘되어 기쁘다.”
Q. <사과>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것 같다. 인간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강이관 감독: “그랬던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니까.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공감대가 형성되기 쉽다. 가족 내에서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과>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까, 그 관계 중심으로 풀었다면 이번 <바이러스>는 감정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하는 셈이다. 깊이 들어가면 누가 좋아하는지, 도파민이 나오는 감정을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바이러스’ 때문에 좋아했지만, 회복되고 나서는 어떤 이유인지 생각해 보았다.”
Q. 최근 극장에서는 장르물이나 액션물이 넘쳐난다. 그 틈바구니에서 이런 영화가 개봉된다.
▶강이관 감독: “관객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변하니까. OTT에서도 많이 보게 되고.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만 이런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가족과 함께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단점을 빨리 찾는 것이 능력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긍정성을 어떻게 발현할 것인지. 타인의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영화처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연기 잘하는 배우들 사이에 가수인 장기하 배우를 캐스팅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강이관 감독: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볼 때 이 가수는 노래 부르는 것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하도 그런 면에서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장기하는 굉장히 성실하게 그 역할을 연기했다. 배역을 위해 같이 자동차 매장에 가서 카 딜러들이 어떻게 영업하고, 고객을 설득시키는지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렇게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기를 한 것이다. 장기하는 배우로서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감독님이 픽한 것인가?) “처음엔 김윤석씨가 추천했다. 처음 연락했을 때는 안하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김윤석 배우가 직접 설득해서 캐스팅한 것이다. 그 역할은 전형적인 느낌의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기능적으로만 느껴지는. 장기하 배우가 진지하게, 그 인물을 리프래쉬 하게 연기했다.”
강이관 감독
Q. 감독의 꿈은 어떻게 꾸게 되었는지.
▶강이관 감독: “뭐,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잠깐 생각해 보았었다. 영화감독이 된다면 잘 만들겠다고 했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 그래서 이과생이나 공대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대학에선 사회학을 전공했다. 연영과가 아니라. 동아리 활동하다가 영화 연출부 생활을 했고, 영화아카데미 가서 영화를 제대로 배운 것이다.” (작품이 뜸한데...) “작품이 없으니 그동안 뭐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근데 계속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도 쓰고. 이번 작품은 후반작업이 길었다. 아카데미에서 강의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많이 했다. 그게 실현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Q.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강이관 감독: “그럴 형편은 못된다. 저나 잘해야죠. 각자 알아서 잘 하시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감독에게는 좋은 점이 있다. 영화를 통해, 작품을 통해 자기가 생각한 것을 표현할 수 있으니. 혼자 볼 수 있지만 함께 보는 즐거움이 있다. 개봉되면 여러 사람들이 보고 평을 남겨 주신다. 그러면서 제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좋은 직업이다. 더 좋은 작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요즘 영화 관람의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극장이 위기에 빠졌다.
▶강이관 감독: “톡소바이러스 걸린 것처럼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관람의 형태가 바뀌는데 그것이 공연 체험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이 영화도 꼭 극장에서 보셨으면 한다. 코로나 전에 영화를 볼 때는 영화 관람이 일종의 체험이었다. 누구랑 같이 가서 영화를 보았고, 보고나서 어땠는지. 그런 것이 합쳐져서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알맹이만 보는 것 같다. 핸드폰으로 정보만 보는 것이다. 영화 관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면 같이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요.”
Q. <바이러스>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강이관 감독: “갈수록 자극적 스릴을 느끼는 작품이 많아진다. 그런 것도 좋지만, 무해하게 웃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보면서 ‘기분 나쁘다’가 아니라,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애’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한다. 긍정보다는 부정의 힘이 센데,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를 통해, 긍정의 힘이 훨씬 더 세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신작이 이렇게 늦게 개봉되는 것은 내가 직접 자료 조사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찍어서 그런 것 같다. 시나리오 과정이 길게 걸린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꼭 함께 나누고 싶다.”
강이관 감독이 함께 영화보기를 바라는 배두나,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의 <바이러스>는 지난 5월 7일 개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