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스페셜 2020의 세 번째 작품 <나의 가해자에게>가 지난 19일 방송되었다. 나수지 피디를 만나 목요일 밤에 편성된 <나의 가해자에게>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수지 피디는 작년에 <웬 아이가 보았네>와 <때빼고 광내고> 등 두 편의 단막극을 연출했었다.
주위의 평가는 어땠나는 질문에 “다들 좋게 말하기는 하는데, 시청률이 조금 아쉽다. 1.5% 정도 나왔다.” 요즘 그 시간대에 무슨 프로가 인기 있는지 조금 잔인한 질문을 던지자 “트로트 프로그램. 요즘은 드라마가 트로트예능과 대결 한다”란다. 본격적인 <나의 가해자에게> 이야기로 넘어갔다.
- 올해도 KBS는 10편의 단막극을 준비했다. <나의 가해자에게>를 선택한 이유는?
“공모전을 거친 강한 작가가 KBS 인턴작가로 있으면서 지난 5월에 낸 작품이다. 학교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그 대본이 재미도 있었고, 뭔가 와 닿는 내용이 있었다.”
- 강한 작가의 대본이랑 완성된 작품이랑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해자인 성필이 이야기가 많이 편집되었다. 그가 왜 선생이 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성필이란 캐릭터를 처음부터 일관되게 나쁜 사람으로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급식실 장면이 남았다. 성필이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생각이 흔들린다.”
- 강한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보다 어리다. 남자 분이고. (드라마작가) 입봉도 빠른 셈이다. 섬세하고 이야기의 라인 잡는 것, 특징을 잘 파악하신다. 이야기를 재밌게 가야지 하는 것, 드라마의 방향성이 같았다.”
- 학교폭력이 소재이다. 혹시 경험담이나 주위 이야기는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송진우 선생이 겪은 그런 직접적인 가해 장면은 본적이 없다. 물론, 분위기로 누군가를 왕따 시키는 그런 것은 있었다. 작품 준비하며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요즘은 애들은 좀 더 지능적으로 친구를 못살게 구는 모양이더라.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희진이 만큼은 아니지만.”
- 그동안 학교폭력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많다. 트라우마에 시달려 극단적안 선택을 하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이야기는 조금 색다르다.
“송진우 선생님은 대단한 어른으로 자랐다. 힘든 현실과 여러 외압을 견디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의 배경은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겪을만한 소재이다.”
- 처음엔 사립학교 비리를 다루는 줄 알았다.
“학교 비리보다는 진우가 겪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사립학교이다. 외지에 있고,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가 많지 않은 학교를 염두에 뒀다.”
- 촬영한 곳이 당진에 있는 학교이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 빌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당진의 그 학교에서 다 찍었다. 현재 장면뿐만 아니라 과거 씬도 같은 학교이다. 수도권에서는 학교 섭외하기가 어려웠다. 2시간 반 내에 갈 수 있는 곳을 염두에 두었고, 충남지역에서 찍을 수 있었다. 학교가 주변이 예뻤다. 논밭도 보이고. 과거 장면은 새로 칠해서 찍은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학교 학생들도 출연한다.”
- 한상진 배우가 꽤 많은 장면에 등장한다.
“<인형의 집>때부터 알던 배우이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수학선생님으로 출연한다. 원래 수학선생은 여선생이었는데 한상진 배우가 말 많은 캐릭터는 자기가 하겠다더라.”
- 이사장의 손녀, 박희진을 연기한 우다비의 연기가 돋보였다. 어떻게 보면 우다비 악당영화로 느껴질 정도였다. 맹랑한 학생의 사악함이 어른을 넘어선다.
“우다비가 신인인데 희진 캐릭터를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다. 희진은 굉장히 세고 무서운 배역이다. 다행히 분노유발을 잘 해 주었다. 욕먹을 캐릭터인데 도전을 해보겠다며 애정을 보였다.”
“진우(김대건)와 성필(문유강)을 연기하는 배우는 결정이 빨리 났다. 이 드라마는 네 명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극이 심화, 발전하는 구조이다. 어린 연기자부터 시작하여 다 찾아봤다. 어린 배우가 연기하기에는 조금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전형적인 학원물이 될 수도 있다. 오디션 볼 때 다비가 눈에 띄었다. 따로 다시 만나서 보니 악한 친구는 아닌데 순간 서늘함을 주는 구석이 있었다.”
- 이연은 어땠나. 최근 본 영화 <담쟁이>에서 놀라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처음 봤을 때 <담쟁이>의 예원이 같았다. 극중에선 피해자를 연기해야하는데 이미지가 맞을지 걱정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캐릭터를 잘 해석했다. 은서를 이야기할 때, 할머니 때문에 위태로운 학생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연씨가 전형적인 '피해자' 캐릭터가 아닌 전형성을 탈피한 입체적인 은서를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
- 네 배우의 가능성을 점치자면.
“네 배우 다 앞으로 잘 될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2014년 KBS에 입사한 나수지 피디는 <인형의 집>, <하나뿐이 내편>, <영혼수선공> 등을 거치며 연출수업을 받았고, 드라마스페셜 <웬 아이가 보았네>로 연출입봉을 했다.
- 작년에 두 편, 올해 한 편의 단막극을 만들었다. 소감이 어떤지. 제작환경이 달라진 게 있는지.
“작년 단막극으로 연출데뷔를 할 때는 기본 퀄리리도 못 따라간다는 평가를 받을까 초조했었다. 드라마 제작현장은 작년부터 많이 변했다. 변화된 환경에 맞추느라 힘들었다. 올해 드라마스페셜 작업은 편하다. 한 편만 하니까. 올해엔 배우들 캐스팅할 때에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제작 분위기였다. 현장 노동시간도 잘 지켜진다. 콘티 짤 때, 대본 연습할 때 최대한 맞추려고 한다.”
- 코로나 때문에 현장이 정말 힘들겠다.
“학교에서 찍다보니 더 힘들다. 주말에만 촬영하고. 들어갈 때 문진표 작성하고 마스크 꼭 쓰고 그런다. 다행히 촬영하던 그 쪽에는 확진자가 없었다. 학교 측 도움으로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다. 수도권에서는 이런 촬영이 힘들다.”
TMI로는 학교 다닐 때 중어중문학을 전공했고, 정치외교학을 부전공했단다. 특이하게도 “대만드라마 보면서 드라마 피디가 되는 꿈을 꾼 모양”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드라마인지 물어보니, “유성화원(꽃보다 남자). 그 때 중국어 배우며, F4 그런 배우들과 연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지.
“작년에 연출한 두 편도 색깔이 다르고, 이번 작품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드라마가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때 전형적이지 않게 풀어가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
- KBS프로그램 말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OTT등.
“사실, 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스토리나 방향, 생각하는 가치관이 맞아야 본다. 드라마 피디가 그렇다니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더라. 꼭 화제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내용이나 분위기, 메시지가 있는 것은 찾아본다. 연출을 할 때는 비슷한 레퍼런스도 찾아보고.”
- 음, 그럼, 읽고 있는 책이라도 추천해 주세요.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종교서적이라. 아, 이 작품 준비하면서 <나의 가해자들에게-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라는 책을 보았다. 콜라보 진행하려고 했었다. 실제 사례집이다. 왕따 당한 것을 회상하면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엮은 것이다. 나는 드라마로 만들었지만 아무리 표현을 해도 피해자였던 학생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면 찾아보시길.”
나수지 피디는 2014년 KBS 피디로 입사했다. KBS 기수로는 41기란다. “드라마를 지원한 동기는 이현석 피디뿐이다. 이 피디는 작년 <집우집주>와 <히든>을 연출했었다. 다음 작품은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김영광, 최강희 주연의 미니시리즈 <안녕? 나야!>라고. 동기인 이현석 피디와 함께 연출한다고 한다. 나 피디는 다음 달부터 자신이 맡은 파트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