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 감독
한국 조폭영화에 등장하는 조폭들의 출신, 계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영국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에 등장하는 갱들의 상황은 어떨까. 2020년 시즌1이 시작된 이 드라마에는 아이리시, 알바니라, 쿠르드, 파키스탄 갱들이 뒤섞여 ‘마약’을 둘러싼 이해충돌의 대전쟁을 펼친다. 그야말로 인터내셔널한 다문화 런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대전쟁에 한국인이 참전(!)했다. <공모자들>과 <늑대사냥>의 김홍선 감독이 시즌3의 디렉터로 참여한 것이다. <갱스 오브 런던> 시즌3의 웨이브 공개에 맞춰 김홍선 감독을 만나 ‘영드’에 ‘K감성’을 혼합시킨 소감을 들어보았다.
Q. 영국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 시즌3의 연출자로 참여하게 된 과정을 소개해 달라.
▶김홍선 감독: “한국영화가 유럽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한국감독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언어적인 면을 제외한다면 한국배우들에 대한 믿음도 있다. ‘갱스 오브 런던’은 액션의 수위가 센 드라마다. <늑대사냥>의 폭력적 장면 때문에 감독 제의가 있었다기보다는 <늑대사냥>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 캐릭터 탐구, 액션의 디자인, 색감 등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시즌1’이 대박 나고 ‘시즌2’에서는 액션은 조금 줄고 약간 호러적인 맛이 났다. ‘시즌3’은 좀 더 상업적인,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으면 했다.”
'갱스 오브 런던'
Q. 한국영화나 한국의 영화감독에 대한 관심이나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
▶김홍선 감독: ”임권택, 강제규,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류승완 등 한국영화감독들이 해외에 많이 알려져 있고, 인정도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대중문화에 대한 차트를 매주 볼 수 있었는데 한국 드라마가 꼭 두세 개씩 있었다. 한국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런 훌륭한 감독 덕분에 인정을 받는 것이다. 영화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런 인식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다.”
Q. 아시아 감독으로서는 첫 영국드라마 연출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신승환과 임주환이 출연하는데, 한국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김홍선 감독: “한국배우를 주요 캐릭터로 쓸 생각이었는데 대본이 수정되면서 염두에 둔 캐릭터의 나이대가 바뀌었다. 그래서 한국배우를 기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미안해서인지 극에서 ‘한국 갱’이 나와도 괜찮은 부분이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작가진이 오케이했고, 두 배우에게 연락해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홍선 감독
Q. 영국에는 얼마나 머물면서 작업한 것인가. 한국인 감독으로서 영국 드라마를 연출하는데 진입장벽은 없었는지.
▶김홍선 감독: ”19개월이었다. 23년 6월에 들어가서, 24년 12월까지 작업했다. 영국드라마를 연출하게 된 것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타이밍도 맞았고.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았다. <늑대사냥>이 해외영화제에 많이 소개되었다. 상도 많이 받았고. 토론토영화제에서 WME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그중 하나가 이 작품이었다. 프로듀서가 <늑대사냥>을 재밌게 봤다고 하고, 투자사 중 한 곳인 AMC도 관심을 가졌다. 미팅을 6번 정도 봤었다. ‘시즌1,2’에 대한 생각, ‘시즌3’에 대한 비전 등 대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시리즈 톤 앤 매너에 대해 생각한 바를 밝혔다. 신인이니까 그런 식으로 경쟁을 하는 모양이다.“
Q. 미국의 쇼러너 시스템과 비교하면 영국의 드라마 제작 방식은 어떤가.
▶김홍선 감독: ”영국에도 쇼러너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좀 특이하다. <갱스 오브 런던>은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이라는 액션영화를 감독한 레이드 가렛이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제작사 펄스(Pulse)필름은 광고나 뮤직비디오로 유명한 회사이다. 기존 영국드라마를 제작하던 프로덕션이 아니었다. 80프로 이상이 영화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작품에는 리드감독, 리더 작가가 있고, 메인 프로듀서와 상의한다. 영화처럼 감독에게도 크리에이트한 자유를 준다. 물론 작가와 대본회의도 하고. 그런 게 다른 쇼러너 시스템과의 차이였다. 나와 함께 패런 블랙번과 테사 호프라는 감독이 연출을 나눠맡았다. 리드 디텍터로 전체적 톤, 색감, 스타일, 액션 디자인을 해서 바이블이라는 문서로 공유했다.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그걸 기준으로 다른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첨가할 수 있다. 그렇게 ‘시즌3’의 1부에서 8부까지의 전체 톤앤매너가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김홍선 감독은 1,2,7,8부를, 패런 블랙번은 3,4부를, 테사 호페는 5,6부를 감독했다”
Q. 시즌1,2에 이어 시즌3에 넣고 싶었던 서사가 있었는지.
▶김홍선 감독: “대본이 있었고, 그 안에서 기존의 거칠고 영화적인, 시네마틱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시즌을 통해 캐릭터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많이 바꾸지 않고 시즌3에 가져와야했다. 시장을 포함하여 메인 캐릭터가 4명 추가되는데 오리지널 캐릭터와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도전이었다.”
“‘시즌3’에서 중점을 둔 것은 이전 시즌에서는 진짜 갱들이 나오는 런던의 언더그라운드가 많이 나온다. 고담시티 같은 뒷골목, 아주 비싼 건물 같은. ‘시즌3’에서는 외국인의 시선과 진짜 런던 시티즌의 눈에 어울리는 그런 런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기존 영국 드라마에서 많이 보는 원 톤이나 투 톤의 다크한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색감을 많이 넣었다. 물론 템스 강이 깔려있는 영국적인 톤을 이용하려고 했다.”
'갱스 오브 런던'
Q. 외국인 감독이 한국작품을 연출할 경우, 한국적 정서, 대사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따른다. 이번 작품도 그러할 것이다. 한국인 감독이 외국작품을 연출할 경우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에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더불어, 미드나 영드보면 알바니아 갱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조폭 계열에 대해서도 공부했는지.
▶김홍선 감독: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나의 경우엔 어려서 미국에서 공부를 했었다. 현장에는 통역과 어시스턴트가 있다. 한국교포였는데 한국말을 잘 못하더라. 제 말을 잘 이해 못하니까 덕분에 나의 영어가 많이 늘었다. 통역이나 어시스턴트가 있더라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미팅을 할 때는 미리 준비할 시간이 많지만, 현장에선 영어가 안 되면 힘들 것이다.“
”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영국은 아일랜드 갱이 세다. 스코틀랜드도 인구는 적지만 세가 강하다. 정말이지 런던은 백인종(百人種)이다 정말 다양한 인종, 민족이 산다. ‘갱스오브런던’의 특징이 바로 그런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는 이야기란 것이다. 쿠드드족도 나오고 이란도 나오고 파키스탄도 나온다. 그런 인터내셔널한 특징으로 런던이 촘촘하게 연결되어있다. 백인도, 흑인도. 현장에는 다양한 나라의 스태프가 있다. 그러다보니 들리는 영어도 다양하다. 런던 말도 동서남북에 따라, 인종에 따라 다르다. 코리안 잉글리시도 있다. 콩글리시 말고. 한국발음의 잉글리시를 사용해도 괜찮은 곳이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영국의 역사, 런던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었다. 런던은 동네마다 발음이 다르다. 흑인과 백인 다르고, 그들이 사는 집의 건축양식도 다르다. 그런 것을 배웠다. 로케이션 다니면서 촬영하면 괜찮겠다 싶은 집을 보았는데 ‘여긴 그 갱이 사는 곳이 아냐’라고 설명해 주더라. 출신 배경에 따라 사는 집의 양식도 다르다. 영국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그걸 모르면 연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열심히 공부했다.“
Q. 5화에선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그 에피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배가 남산만큼 부른 ‘라레’가 힘겹게 출산하며 ‘탯줄 액션’을 펼친다)
▶김홍선 감독: ”정말이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장면이 탄생한 것 같다. 작가가 대본을 잘 쓴 것 같다. 찍기 전에 그 장면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 저도 의견을 냈었다. 인터내셔널한 쇼인데 여태 한 번도 본적 없는 액션이다. 아이를 낳자마자 그런 과격한 액션을 한다는 게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보자면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견이 있었지만 작가팀의 의견대로 찍었다.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현지에서도 호불호가 있었지만. 그 역할을 한 이란 배우(나르게스 라시디)가 연기를 잘했다. 배우가 대본을 좋아했고,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엔딩이 임팩트 있게 잘 나왔다.“
Q. 전체적으로 갱단의 패밀리 이야기이다. 가족 서사는 어떤 식으로 그려졌는가.
▶김홍선 감독: “에피소드1이 나올 때 합류했다. 수석 작가가 50대 후반인데 원래 가족 이야기를 잘 쓴다. 시즌3의 다른 점은 정점에 있는 숀 패밀리가 분열되면서 모든 갱단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로가 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갱들끼리 싸우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다. ‘시즌1’에서는 누가 숀의 아버지를 죽였는지, ‘시즌2’에서는 코바라는 빌런과 갱들의 싸움이 펼쳐진다. 이번 시즌은 심플하면서도 상업적인(대중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미스터리와 스릴을 잘 표현했다. 엔딩을 한국식 드라마처럼 만들고 싶었다.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드라마 연출로.”
Q. 영국에서 드라마 찍을 때 현지 영상위원회(필름커미셔너)의 역할은.
▶김홍선 감독: “런던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강남구, 동작구 식으로 지역단위, 카운티마다 영상위원회가 있어 로케이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촬영을 할 때는 한국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루들의 실력이 한국의 스태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독에게 많이 열려 있어서 내가 원하는 식으로 찍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촬영 방식이 9시간, 10시간, 11시간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을 따로 주느냐 않느냐, 몰아서 찍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편의성 때문에 ‘9시간’ 몰아 찍는 걸 다 좋아하더라. 가끔 로케 이동 같은 것이 있을 경우 ‘11시간’ 방식으로 했다. 영국에서는 현장편집이나 스토리보드 이용을 하지 않는다. 이건 한국시스템이다. 스토리보드보다는 프리비쥬얼 작업을 많이 한다. 현장편집 개념에 대해 대게 신선해 하더라. 그것의 장점이 있으니깐. 그 외는 시스템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많이 발전한 것이다.”
'갱스 오브 런던'
Q. 런던에서의 촬영은 어렵지 않은가. 날씨도 안 좋을 것 같고, 마약 갱에 대해 취재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김홍선 감독: “마약거래를 사전 취재, 리서치 하기는 너무 어렵다. 근데 마약 구하기는 정말 쉬운 것 같았다.그런데 런던이 대게 안전한 도시였다. 총기가 없으니까. 뉴스에서도 총기사고를 전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날씨는 정말 좋았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신 비가 많이 온다. 그게 촬영할 때 힘들었다. 찍다가 비 내리면, 좀 기다려야지 하는데 계속 비가 온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그냥 찍더라. 조금 튀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고. 최대한 신경 쓰면서 찍었다.”
Q. 장르물, 범죄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김홍선 감독: “게임, 드라마, 영화 보는 것 좋아한다. ‘세렌디피티’같은 로코 좋아하고 ‘시티오브 갓’ 같은 드라마도 좋아한다. 글을 쓰다보면 액션과 신선한 범죄에 대한 생각이 나온다. 다양한 것을 좋아한다.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었다. 방송국에서 드라마 조감독을 했다. <대물>(SBS,2010)까지 찍었었다. 그러다가 관객들과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영화 <공모자들>(2012)로 데뷔했다. 약간 있을 법한 이야기, 신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드라마를 하다 영화판에 뛰어든 동명이인 감독이 있다 “사실 이민호가 출연했던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SBS,2007)에서 김홍선 감독님이 연출을, 제가 조연출을 했었다. 대본 크레딧에 김홍선A, 김홍선B로 쓰여 있었다. 김 감독님과는 인연이 많다. 엄청 좋아하는 선배이다.”
*** 김홍선A 감독은 드라마 ‘히어로’, ‘라이어게임’, ‘보이스’, ‘손 the guest’,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쿠팡플레이 ‘미끼’ 등을 연출했고, 김홍선B 감독은 ‘공모자들’, ‘반드시 잡는다’, ‘변신’, ‘늑대사냥’에 이어 <갱스 오브 런던>시즌3을 연출했다.***
Q. 영국 드라마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김홍선 감독: “일단 영국식 영어가 많이 늘었다. 앞으로 해외팀과 미팅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스태프, 크루를 만났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다양한 인종을 찍다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동양인, 흑인, 백인이 모인 장면이 많다. 이런 걸 풀 샷으로 찍을 때 다 보이게 하는 조명 세트값이 있다. 보조 조명은 어떻게 할지. 미드나 영드에서 보는 색감이나 질감이 있다. 그런 세팅을 한국드라마에서 찍는다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김홍선 감독
”정말이 우리 한국 감독과 배우들은 뛰어나다. 톱 클래스이다. 아마 우리 스태프와 배우들이 영어를 잘 한다면 진짜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배우가 많지 않다. 정말 인력 풀이 적더라. 엑스트라조차도. 한국배우가 영어가 된다면 다양한 작품애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김홍선 감독은 ‘잉글리시’ 작품을 한 편 더 찍고, 그 다음에 한국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갱스 오브 런던> 시즌1,2,3은 현재 웨이브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사진=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