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을 뛰어넘은 아씨와 몸종의 이야기를 다룬 '모단걸'의 연출을 맡은 홍은미 PD가 진정한 '모단걸'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홍은미 PD에 따르면 털 모(毛), 끊을 단(斷),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를 담은 단막극 ‘모단걸’(감독 홍은미)은 유교적인 가치관을 지닌 아씨 구신득(진지희 분)과 그의 몸종 영이(김시은 분)가 경성 최고의 신여성이 되기 위해 학교를 같이 다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모단걸'은 지난 7일 공개됐으며 KBS ‘드라마스페셜 2020’의 첫 타자로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사실 부담이 엄청 컸다. 기본적으로는 상업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자고 생각한다. 매해 실험적인 작품을 통해 신인 작가,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는 장이어야 하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거나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면 안 되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방송이 무사하게 잘 나가고 나서 잘 봤다는 격려 문자나 전화도 많이 왔지만 새벽까지 잠이 안왔었다”며 초조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모단걸’은 ‘드라마스페셜 2020’에 속한 작품들 중 유일한 시대극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옛날부터 시대극을 좋아했고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우정 이야기를 좋아했다. 한 인간의 성장을 도와주는 이야기, ‘대조영’, ‘태조왕건’처럼 전쟁 있고 정치적인 암투가 있는(웃음) 그런 작품들을 좋아했다. 사극이나 시대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고 밝혔다.
시대극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홍 PD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조사를 많이 했다. 책이나 신문이 등장하는 장면의 인서트를 딸 때도 옛날 맞춤법에 대해 잘 아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님 자문도 받았다.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옛날 출판물 대신 오늘날의 출판물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또한 한국 영화계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가씨, 영화 ‘말모이’ 팀이 작업하고 간 세트장을 쓰기도 했고 최근 했던 시대극의 제작진들이 만든 아웃풋을 보고 참고를 많이 했다. 한국 영화계에 감사드린다”며 환한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연인 진지희 배우는 ‘모단걸’을 통해 경성 최고의 신여성으로 거듭나는 구신득 역을 맡았다. 그를 캐스팅한 계기에 대해 “내게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기에 한 명 정도는 내가 걱정을 하지 않고 의지할 만한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희가 돌아왔다’ 조연출을 맡았을 때 진지희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동양적이면서도 귀여운 마스크로 안정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몸종 영이 역을 맡은 배우 김시은에 대해서는 “구신득이라는 캐릭터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길 바랐다. 어린 친구를 검색하다가 조연출 후배가 김시은 배우를 추천해줬다.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 배우 김새론의 친구 역할로 등장했다. 과거 회상 신에서만 나오다 세상을 떠난 친구였는데 마스크도 좋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했다”고 밝혔다.
진지희와 김시은, 두 배우는 촬영 전부터 친하게 지냈다. 홍 PD는 그들의 호흡에 대해 “두 배우를 붙였는데 미묘하게 귀엽고 어울렸다. 진지희는 복스럽고 귀하게 자란 느낌이고 영이는 귀엽긴 하지만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것을 작품에 구현하려 노력했다. 촬영 나가기 전에 어색해하지 말라고 밥도 같이 먹고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는데 촬영 때 보니 많이 친해졌더라”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구현해야 하는 단막극의 특성상, 홍 PD는 ‘모단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많은 장면들이 날아갔다. 아씨와 몸종이 어떻게 학교를 가게 됐는지 그 전의 서사들이 있었고 선생님이 구신득의 집에 찾아가 영이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도 있는데 다 날아갔다. 이제 그 장면들은 내 외장하드에 다 있다.(웃음) 단막극이 어려운 것 같다. 소설도 장편보다 단편이 쓰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단막극도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야 하기에 어렵다. 많은 부분을 덜어내야 했기에 힘들었다. 배우들에게는 ‘나중에 다들 한가해지면 어디 치킨집 하나 빌려서 빔 프로젝트로 다같이 보자’고 말했다.(웃음) 그래도 배우들이 다 이해해줬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자신의 작품 이외에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없다. 단순히 서로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다.(웃음) 본인의 작품을 구성하기만 해도 너무 바빴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로 칭찬은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착해 보이려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함께 한 PD들이 워낙 다 좋은 멘토이자 선배들이어서 그저 함께 시청률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더불어 그는 ‘드라마스페셜 2020’의 다음 타자인 ‘크레바스’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언급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크레바스’는 일단 작품성이 좋았다. 나라면 저 드라마 못 찍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나는 우정과 사랑인데, 그곳은 어른의 결핍을 다룬 멜로 스릴러 장르였다. 이걸 어떻게 구현했는지 기대됐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원작의 재치 있는 상상력을 한국 드라마 문법에 맞추기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맞췄을지 궁금했다. 원작 팬들도 그렇고 그 외의 시청자들도 이 단막극을 통해 원작을 읽고 싶을 만큼 잘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는 첫 포문을 연 자신의 작품 ‘모단걸’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했다.
“‘모단걸’은 주제의식도 분명하고 어렵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씨와 몸종 사이에 피어나는 우정과 성장이 키워드다. 여성 감독이 어린 여성 배우들을 써서 이슈를 몰거나 시선을 집중시키려 했던 의도는 아니었다. 아마 남자 아이들이 주인공이었어도 했을 것이다. 도련님과 노비가 장원급제를 향해 가는 여정이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이어 그는 “작품 속에서 구신득이 가족 같은 영이를 보내기로 결심한 장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어릴 때부터 붙어 지내온 영이가 없으면 못 살 것만 같은 구신득이 그 결정을 내릴 때 하늘이 무너졌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구신득이 ‘모단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구신득이라는 인물이 깨달음을 얻었고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 결심은 한 사람, 인간으로서 큰 용기를 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KBS미디어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