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인터뷰 내내 박보검은 감사의 말을 수십 차례 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박보검은 겸손함과 예의바름의 화신이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가 ‘가을 편’까지, 그러니까 전체 16회 중 12회까지 공개된 뒤 가진 인터뷰 자리였다. 기자들이 자리에 앉자 박보검 배우는 리스트를 들고, 기자를 한 사람씩 부르며 반가움을 일일이 표시한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Q.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박보검: “감사한 마음일 뿐이다. 드라마 후반 들어 까까머리 (양)관식이가 왜 안 나오느냐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다들 그리워해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분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필모그라피에 <폭싹 속았수다>가 있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준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다.”
“작가님이 워낙 글을 잘 써셨고, 감독님도, 음악감독님도 모두들 공감할 수 있게 섬세하게 관식이를 표현해 주어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어린 관식을 연기한 이천무 배우, 잠깐 나오는 문우진 배우, 그리고 어른 관식을 연기한 박해준 배우님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주신 덕인 것 같다. 4막도 좋아해주실 것이다. 오랫동안 기억될 인물과 작품이 될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
Q. 관식과 <폭싹>이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박보검: “임상춘 작가님의 글이 주는 힘이 컸다. 드라마 후반부에 들어 중간중간 청년 관식의 모습이 나오니까 계속 좋아해 주셨으면 한다. ‘까까머리’ 관식이와 ‘쪽단발’ 애순이를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유와 아쉬워했다.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이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 작품을 함께 한 것만도 영광이다. 저의 분량은 알고 들어온 것이다.”
Q. 관식이는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지.
▶박보검: “10대 때의 관식이는 운동선수라서 듬직할 것이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어 많이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서 듬직하게 기댈 수 있는 관식이가 되려고 했다. 20대 넘어 결혼하고 애기아빠가 되어서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애순이와 우리의 소중한 생명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관식이다. 그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관식이를 연기하려고 했다. 쉽지 않았다. 관식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수가 적어진다. 내면적으로 더 여물어가는 부분이 컸다. 말이나 표정보다는 분위기가 주는, 그 안에 있는 힘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
Q. 양관식을 연기할 때 가장 신경을 쓴 지점은 무엇인가.
▶박보검: “그 부분은 박해준 선배 덕을 많이 봤다. 관식이는 말수가 적은 인물이다. 목소리가 높지 않을 것이다. 툭 던지는 말이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사의 톤에서 그런 느낌이 나도록 했다. 각 인물의 출생이나 설정에 대해 표로 만들어 주었다 .관식의 아버지는 제주도 사람이지만 엄마는 아니었고 애순이는 피난민이라는 설정이다. 오민애 선배님(관식의 엄마, 계옥)의 연기톤에 제주어말 수업에서 들은 것을 살짝 접목해서 연기했다. 구수한 청년이지만 강인하고 우직한 청년의 느낌이 들도록 했다. 박해준 선배와는 대본 읽기 할 때 연기 톤을 서로 확인했다. 완성본을 보니 물 흐르듯이 잘 넘어간 것 같다.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관식의 걸음걸이조차.”
Q. 워낙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판타지 같다는 느낌도 든다.
▶박보검: “저는 이 드라마는 현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사람, 관계, 이야기가 우리를 비춰준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오프닝 신에 나오는 삽화를 보면 어린 애순이가 달려가고, 꽃이 피고, 여름이 된다. 빗물이 흐르자 손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드라마를 표현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교동리 마을 사람이 그렇다. 서로에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존재이다.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물 속에서 보여주는 관계성과 유대감이 느껴진다. 정말 멋진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통해 저를 되돌아보게 되더라. 가족들을 생각하고, 저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런 어른인가. 관식이를 통해 많이 배운다. 분명 그런 사람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딘가 존재할 것이다. 판타지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박보검
Q. 양관식과 박보검은 어느 정도 닮았나.
▶박보검: “관식이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사랑도 더 표현한다. 관식을 통해 더 배우고 싶은 것은 올곧은 성정, 꿋꿋한 마음가짐이다.”
Q. 가장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을 하나만 꼽는다면.
▶박보검: “정말 많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나문희 선배님 대사이다. 살아온 삶이 어떤 여행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우리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소풍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인생은 짧게 왔다가는 소풍일 것이다. 각자의 인생을 행복한 여정으로 만들어갔으면 한다. 모험이 가득한 여정이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이건 봄에만 잠깐 공개되고 보고 마는 작품이 아니라 두고두고, 계속해서 회자되고, 꺼내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박보검이 말한 장면은 12화에 등장한다. 잠녀(해녀)일을 하면 악착스레 살다 숨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을 때, 어머니 춘옥(나문희)과 동행한다. 립스틱을 곱게 바르면서 나누는 대사이다. ‘내가 잘 살았느냐?’면서 이어지는 대사이다.
염혜란: 소풍이셨소, 고행이셨쇼?.
나문희: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었지.
그리고 카메라 셔터 소리와 영정 사진으로 이어진다.
Q. 아빠연기를 펼친다. 도전하는 부분인데.
▶박보검: “그렇다. 도전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역할인데 잘 할 수 있을까, 꼭 해보고 싶었다. 글이 너무 좋아서 참여해보고 싶었다. 아이를 연기한 배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 함께 온 아역배우들의 부모님을 보며 뭉클해졌다.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 애순이와 관식이는 자기들이 낳은 아이들을 얼마만큼 사랑해 줄까. 그 사랑스런 눈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청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가 군대 갔다 온 후 이 작품을 하게 되어 기뻤다. 군에서 <굿보이>를 먼저 받았는데 <폭싹>을 먼저 하게 되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린다. 캐릭터도, 장르도, 그동안 연기하고 싶었던 범주가 넓어졌다. 그동안 연기할 때 공감하고, 표현하는데 경험이 부족했다. 이번에 관식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작품과 관련하여 임상춘 작가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박보검: “작가님에 대해 신비주의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을 드러내기 보다는 배우들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성정이 곱고, 따듯한 사람이다. 다음에 또 함께 하고 싶다. 대본을 보면서 이건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은 속속 이해될 만큼 읽기가 쉬웠다. 관식이 대사는 제주도 말로 되어 있지 않다. 제주도 대사들도 그런 뉘앙스겠지 생각이 들었다. 설명도 되어 있고. 글을 읽으면 그 감성이 풍성하게 그려지는 것이 연기하면서 재밌었다. 글을 읽으면서 느낀 감성이 미술, 분장, 의상이 더해지면서 배가 되었다. 그렇게 제주도가 만들어졌고, 관식이를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
Q. 애순을 연기한 아이유와의 연기호흡은 어땠는지?
▶박보검: “동갑내기 친구와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기할 때보다 홍보활동을 펼치는 지금 더 친해진 것 같다. 애순이는 알록달록하고 롤러코스터를 탄 인물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대사도 많고, 연기의 폭이 많은 인물이었다. 서로의 장면, 대사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에 맞춰 연기하는 게 최선이었다. 홍보를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란 걸 알겠더라. 소중한 친구 만나게 되었고,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하면서 놀란 것은 아이유는 애순이 역할도 하고, 금명이 역할도 준비해야 했는데, 가수로 콘서트 준비도 했다. 마음도, 체력도 튼튼하구나 싶었고, 저도 조금 자극을 받았다. 가수이며, 배우, 그리고 본인 이름의 진행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Q. 동명이의 죽음과 동사무소에서 오열하는 장면에 대해.
▶박보검: “동명이 이야기에서는 교동리 마을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연기한 것 같다. 그날 신기할 정도로 날씨까지 분위기를 더한 것 같다. 비도 내리고. 마을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인 게 , 한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CG도 멋있게 더해졌고. 정말 ‘폭싹 속았수다’ 말해주고 싶다.”
“그 장면에서는 이모들을 바라보며 울음을 삼켰던 것 같다. 그 장면에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 장면 지문은 공감이 되게 표현해 주었다. 내레이션으로 고스란히 나온다. 감독님도 관식의 쓸쓸한 뒷모습을 잡아주셔서 잘 전달된 것 같다.”
“<폭싹 속았수다>는 앞으로 다시 꺼내보고 싶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함께 해서 행복했다. <응답하라 1988>의 최택은 지켜주고 싶은 인물이었다면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는 기대고 싶은 듬직한 인물이다. 두 작품 다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응팔>을 꺼내 보시더라. <응팔>은 겨울에, <폭싹>은 봄에, 그리고 여름엔 <굿보이>를 꺼내보시면 된다. 이제 가을만 잘 만나면 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