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의 마스코트가 되고 싶은 여우의 이야기. 마치 모바일 게임에나 나올 것만 같은 가상 현실 속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실제로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초상이 새겨진 작품이다.
이번 2020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초청된 작품 중 하나인 '마스코트'(감독 김리하)는 고시촌에서 생활하며 도시의 마스코트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우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꼬집는다.

김리하 감독은 2020 SICAF에 참여하게 된 소감에 대해 "어렸을 때 서울로 대학을 와 SICAF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감독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자리에 내 작품이 올랐다는 것에 대해 뜻깊었다. 다른 나라 감독들도 뽑히기 쉽지 않고 우리나라 감독들도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 행사임에도 나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마스코트'라는 작품을 통해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온 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것이 국내에서만 상영되고 끝날 줄 알았다"며 "해외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우리나라 상황과 다르지 않더라. 그런 것에서 많이 공감을 해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펐다"고 벅차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밝혔다.
그는 고시촌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이는 실제 그가 지켜본 주위 환경과 자신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기도 했다.
"고시원에 살긴 했는데 딱히 공부를 하겠다는 이유는 아니었고 돈이 없어서였다. 고시원이 얼마나 협소한지, 그 느낌은 잘 알고는 있다. 작품을 만들기 전 조사를 하다 노량진 육교가 철거된다는 뉴스를 봤다. 노량진 육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있다. 공무원 시험을 보는 고시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하나의 기록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작품 속에는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시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여우라는 발상 또한 신선하다. 이에 대해 그는 "애니메이션인데 관객들에게 너무 무거운 영상이 될 것 같아서 발상을 비틀었다. 공무원 시험을 마스코트 시험으로 바꿨고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 나오게 해서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주인공인 동물을 여우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개나 고양이는 마스코트로 유명한 캐릭터가 많은데 여우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여우는 약간 성형을 하면 개랑 비슷하게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여우를 주인공으로 했다. 여우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거의 없지 않나. 여우가 가진 마이너함을 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주인공이 여우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 나중에 '아 여우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그런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작품 속에는 여우가 취하는 다양한 행동들이 등장한다. 이는 청년들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여우의 행동 중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장 잘 담은 장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면접볼 때 여우에게 하울링 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우한테 강아지처럼 멍멍 짖게 만드는 장면이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그는 여우 외에 그에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 '새'를 꼽았다. 그는 "옥상에서 여우는 하울링을 하고 날지 못하는 새가 날갯짓을 하는 장면이 나오게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식상한 것 같아서 뺐다. 하지만 아쉬운 캐릭터다. 조류 캐릭터를 넣고 싶었다"라고 언급하며 아쉬운 감정을 내비쳤다.

그는 오랜 기간 열악한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해온, 어떻게 보면 작품 속 '마스코트'가 되기 위한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특히나 단편 영화의 열악한 상황에서 작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마다 다 틀릴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열악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결국 하는 것 같다. 청년들을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있지만 그 청년들 옆자리에는 내가 앉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 애니메이션 영화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힘들었다기보다는 열 받았다. 모두가 반대했고 그 사람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현재는 그걸 하고 싶으니까 끌고 가는 것뿐이다"라며 단단한 의지를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가가 마비되어 있는 상황 또한 영화인에게는 좋지 않은 여건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인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는 "우선 관객들을 직접 못 본다는 것이 아쉽다. 온라인으로 많이 봐주고 대한민국 청년들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걸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기회를 준 SICAF 관계자들한테도 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다음 이어질 차기작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다음 작품은 사람이 나올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내 스타일대로 풀고 싶다. 외로운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이 어려운 사건을 겪으면서 단편 이야기다. 좀 더 러닝 타임이 길 것이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SICAF 2020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