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신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상가건물의 개척교회 목사는 줄어드는 신도 수와 아내의 외도에 혼란스럽다. 애써 끌어들인 남자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다. 그 남자를 지켜보는 여형사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 놈이 여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다. 여학생 신도 하나가 사라지면서 이제, 목사와 형사와 전과자가 신의 계시인지, 정의의 구현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망상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2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계시록>이다.
연상호라하면 이제 <부산행>이 도달한 ‘글로벌 K-좀비의 아버지’나 ‘넷플릭스의 황태자’라 지칭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돼지의 왕>와 <사이비>를 만든 독립영화(애니메이션)의 기대주였던 것은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인 듯하다. 그런 연상호 감독이 다시 ‘저예산, 독립영화’ 스타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넷플릭스’를 통해서. 연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에서 어떤 계시를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Q. <계시록>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연상호 감독: “예전엔 TV 켜놓으면 관심 없는 것도, 보여주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유튜브가 되었든 OTT가 되었든 하나를 보면 그와 연관된 것이, 알고리즘을 통해 나의 취향이란 것에 맞춰준다. 옷을 살 때에도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다. 사회가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사회가 되어간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계시록>이 시작되었다. 영화감독을 꿈꿀 때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연출의도를 생각했었다. 감독의 연출의도를. 스토리텔링으로 보자면 성민찬 목사의 파멸을 다룬다. 그런데 정작 해결해야하는 것은 이연희 형사의 외눈박이이다. 처음부터, 영화 내내 등장한다. 회초리를 든 엄마 아빠도 대놓고 보여준다. 감독으로 관객 눈에게는 그게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후반부 일기장에는 파란색으로 강조했는데도 안 보인다. 연희(신현빈)가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인식의 전환이 생긴다. 그 순간에 뻔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타이틀 자체가 그렇다. 뻔히 보이는 것이 안 보였다가, 최종적으로 보인다. 그걸 보여주려고 했다.”
넷플릭스 '계시록'
Q. <지옥1,2>, <정이>, <선산>, <기생수:더 그레이> 등 넷플릭스와 꽤 많은 작업을 같이 했다. 그것도 단기간에.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는 서비스 방식이 다르다. 구독형 서비스란 게 극장시스템과 완전히 다르다. 월드와이드하게 동시에 소개된다. 넷플릭스에서는 해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다양하다. <계시록>은 관객이 원하는 방식의 엔터테인먼트는 아닌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사적복수나 사이다 전개를 통해 대중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작품이 아니다. <계시록>은 그 반대편에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역설적으로 넷플릭스가 아니면 이런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왜 이 작품을 하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Q. 넷플릭스는 왜 이 작품을 택했을까. 같은 시기에 공개된 넷플릭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건 그에 비하면 <계시록>은 정말 초저예산이다.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가 그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부에 적정예산을 평가하는 팀이 있다. 창의성과 시나리오 개요를 보고, 그것이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적정제작비를 평가한다. 그에 대해 합의를 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작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넷플릭스 라인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Q. 시리즈가 아니라 영화로 작품을 만들었다.
▶연상호 감독: “작품을 많이 했지만 넷플릭스에 들어가면 어떤 작품을 봐야할지 모를 때가 있다. 너무 많아서. 그래서 저 혼자 상상한 게 ‘오늘은 연상호 것을 봐야지..’ 그런데 연상호 작품 중에 뭘 보지? <지옥>을 보자니 시리즈라 부담스럽다. 애니메이션 <사이비>처럼 응축된 작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였다. 연상호가 가진 톤이 완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같은. 그 뒤엔 판타지를 많이 한 것 같다. 완결성 있는 영화작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마지막에 결말. 감방의 성민찬이 벽에서 ‘주님, 혹은 악마의 형상’을 보게 된다.
▶연상호 감독: “전 장면에서 연희가 교도소를 찾아와서 아영이 찾았다고 말해주자, 목사는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죽었다고 그랬다’고 말한다. 이에 형사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며 끝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게 악마일 수도 있고, 그냥 얼룩일 수도 있다.”
Q. 권양래가 절벽에 떨어지는 장면. 성민찬의 얼굴에 낭패감과 절망감이 교차하는 장면도 고심한 미장센 같다.
▶연상호 감독: “바랐던 앵글이 있었다. 멀리 산이 보이고, 벼랑도 있어야한다. 굴러 떨어져야하니. 번개가 치고. 비도 내리고.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세트 짓고 촬영한 장면이다.”
Q. 권양래를 연기한 신민재 배우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연상호 감독: “(정색하고는) 저는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사람들은 저를 인식할 때 입체적으로 본다. 저는 저를 보는 것이 ‘2D’ 거울이다. 거울에 딱 비친 모습, 제 마음에 드는 각도로만 날 인식하는 것이다. 닮았다고 해도,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Q. 성민찬 목사가 아내의 외도에 대해 회개하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에서 아내(문주연 배우)는 곧바로 울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조금 뜬금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연상호 감독: “아내는 성찬이 자신의 잘못을 다 알고 있다는 그 말이 무서웠을 것이다. 목사의 아내이니 그 믿음이 약해졌을망정, 믿음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걸 일깨워주는 것이니. 그 때 그 사람의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원작(만화)에는 민찬이 좀 더 세속적인 인물로 나온다.”
넷플릭스 '계시록'
Q. 이연희 형사의 동생 연주를 연기한 한지현 배우에 대해.
▶연상호 감독: “한지현 배우는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300만이 넘는다. 캐스팅 담당 조감독이 이 배우를 추천해 주었다. 처음엔 전작을 봤을 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던 모양이다. 조감독이 책임지겠다고 하기에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연기욕심이 엄청난 배우였다.”
Q. 정신과 전문의 이낙성을 연기한 김도영 배우는 어떤가.
▶연상호 감독: “서울독립영화제를 심사할 때 <해야할 일>을 봤었다. 주연보다 돋보이더라. 만장일치로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낙성 캐릭터는 뻔하지 않게, 드라이하게 성민재와 이연희의 상황을 전달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야할 일> 보면서, ‘아, 저 배우다’ 생각했었다.”
Q.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를 맡았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상호 감독: “작품을 처음 이야기할 때가 코로나가 한창 일 때였나, <정이> 찍고 있을 때였나. 제가 코로나 걸려 집에서 2주 격리할 때 첫 미팅을 했었다. 어떤 작품 하고 싶은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어 했다. 자기 SNS에 <계시록> 예고편도 올리며 홍보도 해주시더라. 끝까지 이 작품이 감독의 비전과 맞는지 물어보았다.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감독이 가진 비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종 오픈할 때까지 신경을 많이 써줬다. 중간에 <디스클레이머> 촬영했었다. 편집본 보내주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후반부에 나오는 폐쇄된 호텔 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롱테이크로 찍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롱테이크는 실제 일어난 일처럼, 관객이 보는 것처럼 잘 흘러가야한다. 그 장면 신경 많이 쓴 것 같아 좋다고 했다.”
Q. 리허설은 어떻게 했는지.
▶연상호 감독: “리허설 때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대강의 동선을 찍었다. 그걸 편집해서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었다. 러프하게 붙은 것을 배우들에게 보냈다. 대부분 그 영상을 보고 동선을 잡았다. 더 좋은 게 나올 때까지 계속 찍었다. 테이크가 가면 갈수록 감정이, 연기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연상호 감독
Q. 영화 초반부 목사가 바퀴벌레를 밟는 장면이 있다.
▶연상호 감독: “바로 전 장면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바퀴벌레가 교회 쪽으로 기어가고 있으니. 그 다음 장면에서 만나는 인물이 권양래이다. 성민찬이 벌레를 발로 치우는 장면과 권이 전자발찌를 찬 것을 보고는 ‘교회는 죄지은 사람이 오는 곳입니다’고 말한다. 내면의 것과 외면의 불확실성, 그 차이에서 오는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Q. 신현빈은 연 감독의 차기작 <얼굴>과 <군체>에도 캐스팅되었다. 신 배우의 매력이라면.
▶연상호 감독: “신현빈 배우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인기가 있는데 저는 <너를 닮은 사람>으로 처음 봤다. 좋은 배우가 생각했다. 얼굴에 사연이 있어 보인다. <괴이> 끝나고 인사만 나눈 것 같다. ‘계시록’의 이연희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부서질 것 같은 예민함을 가진 인물이다. '괴이' 때도 아이를 잃은 역할을 잘 해주었다.”
Q. 동생이 귀신처럼 보이는데.
▶연상호 감독: ”귀신이 제일 힘들다. 처녀귀신처럼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성민찬에 비해 이연희의 죄의식도 시각적이 형태를 가졌으면 했다. 어떻게 비주얼로 보여야할까.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보다는 ‘저 모양이 맞나?’ 라는 애매모호한 느낌이 중요하다. 악마인가처럼. 미묘한 지점인 것은 죄의식의 상징이란 것이다. 그리고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현주와 귀신이 동일하다고 느끼겠지만 그 것은 이현주가 아니다. 이현희가 만들어낸 죄의식이다. 그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넷플릭스 '계시록' 제작보고회
Q. 종교를 소재로 한다. 연출을 할 때 조심한 부분이 있는지.
▶연상호 감독: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는 좋은 소재이다. 그렇다고 이게 개신교에 대한 비판은 전혀 아니다. 마지막에 아영이 장면까지 생각한다면 오히려 개신교의 계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외눈박이 모습을 보면 창문에 십자가가 클로즈업된다. 그 장면이 종교적이지 않을까.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처럼. 의도한 면이 있다. 이 영화를 이연희 캐릭터로 따라가면, 이연희에 대한 계시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건 기독교적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작품을 두고 인터뷰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기존의 장르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장르영화에서 잘 쓰지 않는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쓴다. 소재가 아니라 방식에서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말한 것을 염두에 두고 보시면 <계시록>이 더 재밌지 않을까. 성민찬이 아니라 이연희 사연을 더 살펴보면 더 좋지 않을까”
Q. 차기작은?
▶연상호 감독: “대기 중인 작품은 <가스인간>이다. 제가 쓴 대본을 일본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신기했다. 오구리 슌과 아오이 유우가 나온다. 아오이 유우를 만났는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스인간>은 1960년 개봉한 일본영화를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연상호와 류용재가 극본을 맡고, <실종>과 드라마 <간니발>의 가타야마 신조가 감독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은 박정민과 함께한 초저예산 영화 <얼굴>과 함께 전지현과 함께한 블록버스터 <군체>도 준비 중이다. 물론, 모르긴 해도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프로젝트로 착착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