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 누구보다도 깊은 사연과 삶의 궤적을 가졌을 것 같은 윤재호 감독이 신작 <숨>으로 돌아왔다. 윤 감독은 <뷰티풀 데이즈>와 <파이터> 그리고 몇 편의 덜 알려진 역작을 통해 꾸준히 소외된 자,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영상에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높은 곳에 있었거나 낮은 곳에 있었거나 누구나 죽는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지금 죽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정리될까. 육신은 어떻게 되고, 위명과 기억들은 어떻게 사라져갈까. <숨>은 우리의 육신이 누구에게 의탁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곁은 떠나는지 보여준다. 분명,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담론이지만, 그에 앞서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숨>은 사람의 생로병사를 담는다. 물론 ‘생’의 순간은 잠깐이다. 영화 초반 아기가 태어나고 배밀이를 하고, 칸막이에서 걸음걸이를 배우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모든 인간이 태어남은 활기찰 것이고, 청춘은 화려했을 것이고, 인생의 전반부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나이 들고, 병들고,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윤 감독은 그런 인간의 후반부, 마지막 순간을 담는다. (이 영화는 인간의 행복한 삶은 다룬 것이 아니란 것을 명심하고 접근하기 바란다.)
'숨'
우선 카메라는 병들고, 외롭고, 서글픈 신세의 노년을 보여준다. 자막은 ‘넝마군’이라고 나온다. 폐지 줍는 할머니를 비춘다. 어떤 삶인지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1500원 벌어.” 그렇다. 인생이 아름답고, 화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어 활활 타오르는 다비식 장면을 보여준다. 윤 감독은 이 인물, 저 사연, 또 다른 죽음의 순간을 두서없이 전해주는 것 같다. 그 사이사이, 이들의 죽음과 주검을 정리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이다. 영화 <파묘>를 통해,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직업군이다. 때로는 가족의 통곡 속에, 때로는 차가운 배웅 속에 하얀 종이와 삼베옷에 싸이고, 관에 들어가서, 화염 속으로 사라진다. 물론, 그 뒷정리까지. 유품정리사의 일은 눈을 뜨고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한때는 사랑받고, 한 때는 화려했을 사람이 세상에 남긴 서글픈 자국들이라니.
윤재호 감독의 카메라는 잔인하고,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다. 그러기에 영화를 보고, 더욱 더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좀 더 달라진 생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웰빙과 함께 웰다잉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그 일은 오랫동안 ‘천직’으로 여기고 오랫동안 수행하고 있는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의 모습에서 직업인의 고결함보다는 종교인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영화에서 장례지도사 유재철님의 아내분이 하는 말이 뒤늦게 생각날지 모르겠다. “남편과 손을 잡고 주무시냐고 묻더군요.”라고. 누군가는 눈물을 쏟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육신을 어루만지며 경건하게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이다.
<숨>은 12세이상관람가 작품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절반 이상’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를 권한다.
▶숨 ▶감독/각본:윤재호 ▶출연:유재철, 김새별, 문인산 ▶제작:빈스로드픽쳐스, 시네마로드 ▶배급:인디스토리 ▶개봉:2025년3월12일/12세이상관람가/7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