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에 출근하려고 문을 열면 집 앞에 ‘새벽배송’ 택배가 와 있을 것이고, 회사에서 클릭한 상품이 퇴근하니 문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처음엔 이게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플랫폼 산업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퀵실버가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진정, 인류의 행복한 미래 모습일까. 매일 택배관련 비보가 쏟아지는 가운데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보고나면 억장이 무너질 영화가 방송된다. 지난 연말 극장에서 잠깐 내걸렸던 영화 <미안해요, 리키>(원제:Sorry We Missed You)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영국 복지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주었던 철저한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작품이다. 이번에는 택배노동자의 불행한 삶이다. 물론, 영국 택배기사이야기이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먼저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은 이 영화 주인공의 정확한 신분이다. 그는 ‘제로 아워 계약’(zero-hours contracts) 노동자이다.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다. 택배기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교사 등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를 보자.
영화는 영국의 4인 가족을 보여준다. 중년 영국남자 리키(크리스 히친)는 건설현장 노동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힘들게 구한 직장은 택배기사. 분명 택배회사의 업무지시를 받지만 계약상으로는 자영업자이다. 게다가 배송차량도 자기가 직접 구해야한다. 없는 살림에 밴을 구해 택배일 에 나선다.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는 요양보호사로 힘들게 일한다. 노동조건은 남편과 그야말로 ‘막하막하’이다. 아빠, 엄마는 종일 일하러 나가고 사춘기 아들 세브(리스 스톤)과 딸 리사(케이티 프록터)의 가정교육은 점점 소홀해져만 간다.
켄 로치는 택배기사로 나선 리키의 상황을 잔인하게 따라간다. 조금의 희망이 보였던 택배 일은 극악무도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와 함께 가족의 유대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노예계약에 다름없는 근로조건에 리키의 육신은 피폐해지고, 수입은 고사하고 목숨까지 길 위에 내놓게 된다. 과연 리키는 돈을 벌 수 있을까. 집 계약을 맺을 수 있을까. 가족은 오순도순 모여 다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는 ‘브렉시트’ 영국의 이른바 ‘긱 경제'(gig economy)와 ‘제로 아워 계약’의 지옥같은 상황을 전해준다. 자본주의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전근대적인, 혹은 포스트 모던한 ‘노동력 착취’에 아연실색하면서도 우리네 상황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켄 로치 감독 작품답게 보면서 고통스럽지만, 보고 나선 깊은 여운이 남는, 그래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워진다. 이 작품은 재작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같이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곱씹게 되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오늘 밤 12시 10분, KBS 1TV <독립영화관>시간에 방송된다. 꼭 보시길.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