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개봉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시빌 워:분열의 시대>는 ‘언젠가,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미국의 모습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감독이 내다본 미국의 미래는 ‘분열과 내전’이다. 미국은 이미 사분오열되었고 대통령이란 작자는 백악관에 웅크리며 최후의 저항을 펼친다. 백악관으로 탱크와 군인이 진격해 들어가서 마지막 타깃을 제거할 군사작전을 펼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기자들은 그 마지막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 중이다. 미국 극장에 이 영화가 내걸리기 전에 ‘분열의 아메리카’를 다룬 소설이 하나 나왔다.
범죄 스릴러 <빅 픽처>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의 디스토피아 소설 <원더풀 랜드>이다. 이 책은 기이하게도 프랑스 번역본 'Et c'est ainsi que nous vivrons' (This is How We Shall Live)이 먼저 출판되었다. 영문판은 (이 시점까지) 출판되지 않은 상태이다. 왜 그럴까? 궁금하다. 작가는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 벌어진 일에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무슨 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자 그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을 점령한 사건이다. 그 사이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에 이 사건이 어떻게 ‘재정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키피디아에는 이 사건의 방식을 ‘극우 테러리즘, 시민 혼란, 폭동, 파괴행위, 약탈, 정치적 전복, 입법부 공격’ 등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이 소설을 집필한 것이다.
소설 속 배경은 2045년이다. 미국은 이미 두 개의 국가로 갈라섰다. 2034년, 민주당지지자의 연방공화국과 공화당지지자의 공화국연맹으로 분열되었다.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트럼프 시대부터 끓어오르던 미국 사회는 그렇게 완전히 갈라섰고, 두 개의 나라가 되어 서로의 체제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마치 ‘냉전시대의 미소분쟁’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두 ‘적성국’ 사이에는 양독(兩獨)시절의 베를린 같은 중립지대 미니아폴리스가 있다. 두 나라는 이곳에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사수하기 위해 처절한 첩보전을 펼치는 것이다.
<원더풀랜드>의 주인공은 연방공화국 정보국 소속의 요원 샘 스텐글이다. 그에게 떨어진 명령은 적국인 공화국연방의 경찰국 특급요원 케이틀린을 암살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케이틀린은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이제 피도 눈물도 없는, 일체의 자비도 없는 스파이/암살극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진행된다.
작가는 쪼개진 2045년의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민주당-공화당의 신념을 기준으로 했다. 연방공화국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즉, 종교적 신념이나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해 개방적이다. 이에 반해 공화국연맹은 청교도적 신권정치를 표방하고 있기에 신성모독이나 동성애 등은 사형에 처할 중범죄이다. 이런 개인적 차이가, 공동체의 운명,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것이다.
만약, 영화 <시빌 워>를 먼저 봤다면 이 소설에서 거대한 내전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동서냉전 시대 첩보전 스타일의 긴장감을 안겨준다. 때로는 제임스 본드 같고, 때로는 제이슨 본 같고, 전체적으로는 이단 헌트 같다.
소설에서는 앞으로의 미국 역사 발전의 과정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적당하고도 적절하게’ 제시해 준다. 트럼프 이후, 그와 똑같은 대통령이 나오고, 미국은 더욱 엉망이 되어가고, ‘클리블랜드 대학살’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분리하게 되는 것이란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2045년의 과학기술의 수준’이다. 그때는 이미 ‘억만장자 모건 채드윅’이 개발한 채드윅칩이란 것이 사람의 뇌에 이식되어 모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단다. 아이폰과 SNS, 도청기 등이 뇌에 심겨진다는 것이다.
참, 영어제목 ‘플라이오브’(FLYOVER)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책 앞부분에 ‘미국 중부지역을 이르는 말로, 서부나 동부해안 지역에 비해 덜 중요하다는 뜻에서 붙은 명칭’이라고 소개했다. 뉴욕이나 워싱턴 같은 동부 대도시에서 비행기 타고 서부의 ‘할리우드’로 갈 때 비행기로 지나치는 그런 ‘촌동네’를 일컫는 듯. 이 작품에서는 첩보전의 주요무대가 되는 미네소타 중 미니아폴리스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원더풀랜드 ▶원제:FLYOVER ▶지은이: 더글라스 케네디 ▶옮긴이:조동섭 ▶밝은세상/ 2024년10월15일/5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