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숨차게 달려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쫓아간다. 어두운 밤거리, 흔들리는 카메라. 소녀는 어린 동생의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뛰어가고 있다. 그리고 화면은 바뀌어 세 자매가 사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소개된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 자매>의 인상적인 오프닝이다.
영화는 차례로 세 자매가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집안이나 그렇듯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혹은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가족도 있고, 개차반 같은 집안 꼴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큰언니 희숙(김선영)은 꽃가게를 하고 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다. 딸애 보미(김가희)는 불량청소년 같고,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남편(김의성)은 폭력적이다. 계속 배를 움켜잡고 신음할 만큼 속으로 골병이 들어간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교수 남편(조한철)과 함께 윤택한 삶을 사는 듯하지만 볼수록 복잡한 심사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남편은 외도하고 자식들은 제 맘 같지 않다. 그리고 셋째 미옥(장윤주)은 글을 쓴답시고 노트북 앞에 앉아있지만 술병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세 자매와 그 남편들, 그리고 자식들이 현실적인, 혹은 초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이 지옥도를 완성해간다.
영화 <세 자매>는 행복한 가족을 위한 찬송가가 아니다.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한치 양보 없는 열연은 드라마에 대한 흡입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다들 왜 저렇게 악다구니를 지르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며, 자신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무슨 내일의 행복을 바랄 수 있을까 의아스러울 때, 점차 지금의 불행과 비극, 광기의 먼 원인을 알게 된다.
영화는 세 자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현실을 조금 과장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화통화가 길어지고, 기도가 거듭될수록 영혼의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문소리는 왜 그렇게 애타게 하느님을 찾고, 김선영은 곧 죽어도 가족을 품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장윤주는 왜 그런 가족의 모습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지 알게 된다.
가족의 굴레는 쉽게 벗어날 수 없고,, 어린 시절의 악몽이 커가면서 영혼을 영원히 갉아먹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가학적 캐릭터와 극단적 희생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던 <세 자매>는 마지막 온 가족 모임에서 폭발한다. 그것은 이창동식 결론이면서도 김기덕식 파멸이다. 하지만, 관객은 오히려 그 안에서 마침내 안식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의 <셀레브레이션>(1998)의 한국판 이야기인 셈이다.
이승원 감독의 <세 자매>를 보고 나면 그의 전작 <소통과 거짓말>, <해피뻐스데이>가 궁금해질 듯하다. 흥미롭다. 하루빨리 개봉되었으면 하는 한국영화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