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올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분에 상영된 <휴가>(감독 이란희)는 메이저 영화제, 혹은 요즘 영화판에서 만나 보기 힘든 노동과 인권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서는 해고노동자가 높다란 굴뚝에 올라 기한도 알 수 없는 고공농성을 벌인다.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자신의 울분을 표현할 방법은 높고, 춥고, 외롭고, 배고픈 탑 위일 뿐일까. 2020년 한국사회, 노동계의 현실은 변함없다. 어디선가 축배를 드는 반면, 또 어느 한 구석에서는 실적의 압박으로, 경기의 후퇴로 끔찍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란희 감독의 신작 <휴가>는 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대법원 판결까지 났으니 법적으로 정리된 상태이다. 그럼 그가 갈 곳은 어디인가.
회사와의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한 중년의 해고노동자 재복(이봉하)은 망연자실하다. 언제 적부터 눌러앉은 천막농성장이지만 동료는 하나둘 떠나가고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더 싸울 여력도 여지도 없는 그와 동료들은 “이렇게 된 것 마음을 추스를 겸, 휴가나 다녀오자.”고 그런다. 재복은 휴가비도 없는 그런 이상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어디로? 실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해고노동자의 집은 삭막하다. 싱크대는 막혀 있다. 싱크대를 뚫고,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한다. 철 지난 선풍기도 깨끗이 닦아둔다. 오랜만에 만난 두 딸은 서먹서먹하다. 서둘러 저녁을 차리지만 컵라면을 들고 시큰둥해한다. 큰 딸(김정연)은 당장 대학 예치금 40만원이 필요하단다. 작은 애(이승주)는 롱패딩을 갖고 싶어 한다. 다행히 친구의 소개로 가구공장에서 며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제 코가 석자인 재복은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짧은 휴가는 끝나고, 아무런 기약도 없는 농성천막으로 돌아간다.
이란희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해고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단편 <천막>을 만들었다. 그때 투쟁을 벌인 노동자는 기타를 만드는 콜텍에서 해고당한 노동자였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경영상의 이유로 행해진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된 노동자는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야했다. 다행히 작년, 4464일간 이어진 복직투쟁은 노사합의로 마무리됐단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회사를 ‘선인가구’로 바꾼다.
이란희 감독은 단편 <천막>을 바탕으로 장편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는 어둡고, 칙칙하고, 가슴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10년 이상 이어진 투쟁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고용의 유연성’이나 ‘해고노동자의 안전판’ 문제가 아니어도, 가정의 영속성이나 사회적 관계유지가 가능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배부른 선입견은 뒤로하고 이란희 감독은 단편작업에서 빠진 부분을 확대한다. 해고노동자가 잠시 천막을 벗어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말이다.
영화는 천막농성현장을 떠난 해고노동자의 ‘집/가족’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수입이 끊어졌을 경우,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을 때, 상급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었을 때, 당장 먹을거리가 걱정인데 목돈이 필요하다면. 누군가 아프기라도 하다면.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며 조마조마해진다. 오랜만에 돌아온 해고자 아버지와 철없는 딸들이 언성을 높이고, 가족이 해체되지나 않을까, 겨우 얻은 가구공장 아르바이트 자리가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위태롭게 되지 않을까 말이다.
이란희 감독은 해고노동자의 ‘휴가’를 통해 실제적인 삶의 질을 이야기해준다. 결코 달콤하지 않고, 절대 마음 편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해고노동자’에 대한 시스템적 안전망이 요구되는 것이리라.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