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이면 넷플릭스의 블록버스터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된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에 ‘K콘텐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작품이다. BTS의 K팝과 함께 ‘한류’의 대표주자, 대표상품이 되었다. 이젠, ‘한류’나 ‘K콘텐츠’라는 말이 익숙함을 넘어 식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그 두 단어를 타이틀로 내건 책이 출간되었다. [K-컬쳐와 새로운 한류 정경]이다. 이런 아이템을 다루는 책에 ‘정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특별해 보인다. KBS의 배기형 피디의 역작이다.
배기형 피디는 KBS PD로 오래 근무하며 ‘체험 삶의 현장’, ‘TV는 사랑을 싣고‘, ’TV,책을 말하다‘ 등 다수의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리고 KBS월드채널과 KBS 콘텐츠의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며 방송프로그램(한류 콘텐츠)의 해외유통을 현장에서 오래 지켜보았으며, 최근까지 글로벌 한류프로그램 <퀴즈 온 코리아>를 제작하며 ’K’와 ‘글로벌’의 컨택트 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사무국에 근무하며 방송사의 국제공동제작에 관여했다. 이 정도 백그라운드라면 글로벌한 시각에서의 ‘한류’와 ‘K콘텐츠’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이 책은 그의 박사 학위논문을 대중적으로 다시 손 본 것이다. 현장 스터디케이스이자, 대중입문서이며, 아카데믹한 역작인 셈이다.
먼저, 책의 제목에 쓰인 ‘정경’(情景)은 풍경이란 의미이다. 물론 단순한 자연풍광의 의미에 학문적인 의미가 확장되어있다. 저자는 “정경은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경치뿐만 아니라 사람이 처한 모습이나 형편, 정황,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배경을 포함한다. 정경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한다. 즉 정경은 인식의 틀로서 문화의 지형을 의미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 생산자 중심으로 그려지던 한류 지형에서 디지털 환경변화와 더불어 향유자 주심의 새로운 디지털 한류 정경을 포착한다. 저자는 말레이시아 ABU 현장 경험과 시장분석, 이후 심층연구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K-드라마 수용 맥락을 파고든다. 말레이시아라는 특수하면서도, 특별한 시장환경에서 K-컬처의 수용 과정을 꼼꼼히 살펴본 것이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한국에서 만든 K-드라마의 유통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 한류’의 정경이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많은 글로벌/로컬 OTT 서비스를 통해 한류 콘텐츠 향유가 탈계급 ‘옴니보어’적 문화 소비 형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K-컬처와 새로운 한류 정경>은 공영방송사 PD의 우직한 학습력, 그리고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진실성과 관찰자로서의 철학이 어우러진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창작자와 제작자에게 영감과 상상을, 비즈니스 현장에는 전략과 방법론을, 연구자에게는 전망과 통찰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수용자에게는 향유의 지속과 확장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말 그러한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속이 꽉 찬 지침서이며 가이드이다.
물론, 박사학위 논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기에 학술적인 시각의 서술이 많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변화와 기술의 부작용을 언급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한류 변증법(정-반-합의 테제)으로 설명한다거나, ‘창발’(創發)성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 등이다. 이중 하위문화로 이야기되는 ‘서브 컬처’를 ‘소집단 문화’로 설명하는 것은 흥미롭다.
‘오빠’, ‘진짜’, ‘대박’이란 우리말이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K-’의 힘은 확장되고 있다. 대중문화에서 그냥 문화로, 그리고 ‘쌍방향’의 일상이 되는 동시대성을 느끼며 다시 한 번 ‘K-’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저서이다.
▶K-컬처와 새로운 한류 정경 ▶저자: 배기형 ▶출판사: 사우/ 2024년 12월 10일/ 3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