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간에 공개된 영화 <호텔 레이크>(2020)로 데뷔한 윤은경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세입자>가 오늘(4일) 극장에서 개봉된다. 의사이자 작가인 장은호의 단편을 영화화한 <세입자>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배경으로 ‘쾌적한 환경과 편안한 자기 집’에 대한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개봉을 앞두고 감독에게서 영화에 대한 숨은 의미를 직접 들어보았다.
Q. 일단 영화는 흑백이다.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을 계획이었는지.
▶윤은경 감독: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독특하다. 그래서 흑백으로 옛날 영화의 고전적인 느낌을 담아보려고 의도한 것도 있다. 상업적으로 기획된 영화이니 처음에는 컬러로 찍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사회적인 부조리를 다루고 있다.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좋았던 부분이 카프카적인 느낌이었다. 인간소외를 레트로 감성으로 맞추다보니 흑백으로 결정한 것이다. 후반작업 중에, 컬러 색보정을 하다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흑백고전 <알파빌>(장 뤽 고다르 감독,1965)도 떠올랐다.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반응이 괜찮았다. 흑백(모노)은 상상의 여지가 있다. 영화든 글이든 상상을 자극하는 게 좋다.”
Q. 장은호 작가의 단편 <천장세>가 원작이다.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지.
▶윤은경 감독: “<호텔 레이크>를 준비하다가 프로듀서가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다른 감독이 픽을 안 했다면 내가 하고 싶었다. <호텔 레이크> 할 때 스트레스가 심했다. 입봉하고 한 계단 올라간 것은 같은데 지쳤던 것 같다. 아마 주인공 신동의 심경 같았다. 현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렇게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이 되어 각색 작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도 찾았고,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이런 작품(원작소설)을 읽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니!
▶윤은경 감독: “나와 비슷한 심경의 인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각색을 하며 분노와 우울감을 추가시켰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이 좋았다. 만들면서 행복했다.”
Q. 방에 걸린 풍경화, 바다가 보이는 해변 모습은 천국 같다.
▶윤은경 감독: “누구에게나 이상향이 있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감독이 되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 것 같지만 현실은 딱 그 때뿐이다.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일 것 같다. 이상향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있다면 죽음뿐일 것이다. 각색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암울하게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그 풍경화는 누구나 꿈꾸는 목표, 이상향을 상징하는 것이고.”
Q. 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꾸었는지, 원래 영화학도인가?
▶윤은경 감독: “전공은 교육심리학이었다. 영화평론을 할 때 심리학과 맞닿아있는 것이 있었다. 중앙대 영화과에 편입했다. 평론을 하려고 했다가 영화수업 들으며 제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학도 가게 되었고. 벤쿠버 필름스쿨에서 실전을 배웠다. 재밌었다. 돌아와서는 충무로 일을 시작했다. 첫 작품이 <아 유 레디?>(2002)였다. 나름 큰 작품이다. 그리고 <올드 미스 다이어리>(2006) 조감독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전문조감독을 오래 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현장에서 부담스러워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되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호러를 첫 작품(단편)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는 심리학이랑 맞닿아있는 것 같다.”
Q. 그 첫 작품이 무엇인가?
▶윤은경 감독: “단편 <나사의 회전>이라고 영진위 제작지원을 받은 것이다. 그 작품에는 반전 요소가 있는데, 그걸 좋게 봐서 장편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그 작품이 <호텔 레이크>였다. 감독의 길에서 특별한 롤모델은 없었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온 것 같다.”
Q. 호러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
▶윤은경 감독: “물론 처음부터 호러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괴담 같은 기이한 이야기를 재밌게 본 것 같다. 심리학에 관심 가진 것도 그런 이유인지 모른다. 호러 이야기가 가진 상징이 있는데 그게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호러 장르는 미술, 사운드 등 미학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난 음악도 좋아한다. 후반작업이 힘들다지만 난 재밌더라. 호러장르라서.”
Q. <호텔 레이크>는 자작 시나리오였나.
▶윤은경 감독: “그렇다. 무대가 되는 적당한 모텔을 찾아 돌아다녔다. ‘중정(中庭)형’ 구조의 모텔을 하나 만났는데 느낌이 강렬했다. 공간을 일단 잡고 그걸 토대로 찍게 된 것이다.” (이 영화도 집이란 공간이 중요하다.) “그렇다. 공간이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분위기, 무드가 창작에 도움을 준다. 위가 뚫린 중정형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세트보다는 그런 오픈 로케이션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지금 편집하고 있는 다음 작품도 그렇다.”
Q. 국내 개봉에 앞서 해외 영화제에 많이 출품되었다. 외국 관객 반응은 어땠는지.
▶윤은경 감독: “다들 재밌어 했다. 아시아권 반응은 비슷한 것 같다. 집에 대한 생각이 서구보다는 우리와 가까운 것 같다. 싱가포르 관객들은 학구적으로 분석하며 보더라. GV하며 흥미로운 해석을 많이 들었다. 영감도 많이 받았다. 몬트리올에서는 또 다르더라.”
Q. 장은호 작가의 단편을 각색하며 보강하거나 변경한 지점은 어떤 것인가.
▶윤은경 감독: “원작도 다른 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SF 느낌을 더 줘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육’이야기나 집주인이 어린아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캐릭터들이 다들 생기가 없으니까 상징한 부분이 있다. 미래적인 요소로.” (그런데 왜 집주인이 아이 설정인가?) “음, 그것은. 미래는 이런 게 발달하지 않을까. 유튜버 중에는 백만장자 아이들이 생기고 있으니. 그런 부분을 고민을 많이 했고 부조리한 측면을 확장시켰다. 현실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환경오염 같은 것. 원작에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미래도시의 환기시설을 생각했다. 나쁜 공기는 저쪽 동네로 보내버리는 식으로. 지역적 계층구조가 생긴다. 차별적 패턴이 보인다. 신도시, 구도시, 그리고 집안을 들여다보면 월세, 월월세, 천장세로 분화된다.”
Q. SF적이라고 하니. 친구와의 전화통화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스타워즈’의 홀로그램 화상통화의 진화 같았다. 아니면 초저예산 독립영화의 어이없는 설정 같은?
▶윤은경 감독: “그 장면은 악몽의 일부라고 봐도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느낌, 아스트랄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세련된 기술이 들어오면 너무 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니. 키치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 친구는 과거에 이미 죽은 것일 수도 있다. 회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주인공이 꾸는 커다란 악몽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약에 취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 친구는 분열된 자아일 수도 있다. 해석의 여지는 많을 것이다.”
Q. 심리학을 배웠고, 원작의 작가가 의사였다니. 그래서 이런 다층적 해석의 작품이 나온 것인가?
▶윤은경 감독: “원작자와 작업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 명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아마 개취인 것 같다. 원작을 사랑했다. 그래서 엔딩을 좀 바꾸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꼭 사수하고 싶었다. 대신 조금 결이 다른, 코드를 넣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게 여지를 둔 것이다.”
Q. 주인공이 천장에서 구멍으로 내려다볼 때 보이는 여자의 모습, 지하철 문에서 보았던 그 영상 속 여자인가.
▶윤은경 감독: “천장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집주인이었다. 신도시의 다른 계층의 여자인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들어가는 설정이다. 원작에는 없지만 의미를 강화시킨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관객이 이 작품은 거듭 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여 흥미롭다고 하더라. 서독제에서 이 작품을 5번 봤다는 관객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Q. 감독이 그런 장면을 일부러, 의도적으로 숨겨둔 것인가?
▶윤은경 감독: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렇게 해석이 된다니까 재밌긴 하더라. 내가 해석의 여지를 둬야지 의도한 것은 엔딩 밖에 없다. 어떤 관객은 잠깐 보이는 허동원의 주민번호에 대해서도 의미를 찾더라. 내가 좋아했던 작품이 있다. 데이비드 린치 작품이나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 같은 것을 벤치마킹한 부분은 있다. 카프카도 막연하게 좋아했기에. 그런 게 나도 모르게 DNA에 남아 영향을 준 것이리라. <기생충>도. 딱히 레퍼런스 삼아야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게 있는 모양이다.”
Q. 배우들 이야기를 하자면.
▶윤은경 감독: “‘월세남’으로 나오는 허동원 배우는 이미지가 세지만 실제 만나보면 신사적이고 예의바른 배우이다. 너무 세게 연기하지 말고, 딕션도 젠틀하게 할수록 느낌이 살 것이라고 디렉팅 했다. 그런 갭이 영화적 효과를 더 준 것 같다. 아내 역의 박소현 배우는 외국인 설정이다. 이질적인 모습은 철저히 의도한 것이다. 처음엔 외국인 배우를 찾으려고도 했었다. 오디션을 통해 박소현 배우를 캐스팅 했다. 똘망똘망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프로필만 봐도 느낌이 오더라. 주인공 신동을 연기한 김대건도 프로필에서 느낌이 왔었다. 리얼리즘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작품에 대한 해석능력이 좋았다. 정확하게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었다..”
Q. 해석의 여지에 대해.
▶윤은경 감독: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너무 힘든 이런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힘드니 약을 먹는다는 것이다. 약을 먹고는 순환적 구조에 빠진다. 환각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그게 의도한 것이다. 이게 전체가 꿈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인공이 이미 죽었고, 그 공간을 맴도는 지박령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더라. 바퀴벌레가 되었다는 것도. 바퀴벌레는 지구상에 오래 존재한 것이니, 모든 것을 관찰하는 화자일 수도 있다고.”
Q. 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 공포/심리 드라마에 매진할 것인가.
▶윤은경 감독: “한 우물을 파고 싶다. 호러 장르가 의외로 심리적 치유 효과가 있다. <샤이닝> 같은 경우도 가족부양의 꿈과 스트레스가 악몽으로 변하는 광기를 다룬다. 인간심리와 관련 있는 캐릭터를 통해 치유 받는 좋은 호러를 만들고 싶다.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호러말고. 그런 호러는 극장에서도 선호할 것이다. 태생이 극장영화 출신이니, 힘이 닿는 데까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차기작은 <시스터후드>이다. 여자배우가 많이 나오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장편이고, 컬러이다. 그리고 저예산작품이다. 김주령, 한지현, 최명빈 배우가 출연한다. 내년 봄에 공개될 것 같다.”
심리 호러드라마, 인간거주 공간인 집에 대한 집착을 이어가고 있는 윤은경 감독의 영화 <세입자>는 오늘(4일) 개봉한다.
[사진=인디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