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하다’라는 말로 그들의 고통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2014년 8월,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야자디족이었던 바하르(골쉬프테 파라하니 분)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야자디족의 모든 남성은 사살되고, 자신의 아들은 IS 전투원으로 강제 동원 되었으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은 성노예로 팔려나갔다.
인신매매로 여러 곳에 팔려간 이후 이루 말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던 바하르는 목숨을 건 탈출 계획에 성공한 뒤 여성과 생명, 자유를 위해 총을 들었다. 여성 전투 부대 ‘걸스 오브 더 썬’을 결성해 IS를 제거하기 위한 정의의 세력에 힘을 보탰다.
영화 ‘태양의 소녀들’(감독 에바 허슨)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대한 실화 바탕의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바하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그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떻게 ‘걸스 오브 더 썬’이 되었는지, 어떻게 현재까지 생존해 정의로운 부대를 이끌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붙인다.
바하르는 자신이 성노예로 팔려 나가며 참혹한 현실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남자들은 나같이 늙은 사람은 2-3주면 금방 질려하고 보통 10살이나 15살 사이의 아이들이 거래된다”는 그의 대사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며 자신의 처지와 속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그러던 중 TV에서 자신의 대학 시절 만났던 교수님을 보게 되고 그가 말한 번호로 구조 신호를 보내게 된다. 바로 그 순간이, 처음으로 바하르의 인생에서 여성들간의 연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작품 속에서 주목할 두 주인공은 여성 군대를 이끄는 바하르와 이를 곁에서 취재하며 증인이길 자처한 프랑스 종군 기자 마틸드(엠마누엘 베르코 분)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자신이 이 참혹한 전쟁터의 최전방에 나서 싸우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며 여성이라는 성별을 떠나 인류 모두가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에 대해 공감한다.
또한 두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강인한 면모를 지닌 여성이다. 바하르는 자신이 죽인 IS 남성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 전화를 대신 받는다. “내 동생은 어디갔냐”고 묻는 발신자에게 “너의 동생은 내 앞에서 차갑게 죽어가고 있다. 너도 여자에게 죽고 싶냐”며 무덤덤하게 묻는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IS는 여자에게 살해당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믿기에, 이 말은 IS에게는 무엇보다도 치욕스러운 말로 IS에 대한 바하르의 분노와 지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종군 기자인 마틸드 또한 여러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전쟁의 참혹함과 그들의 증언을 담는 강인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걸스 오브 더 썬’ 멤버들에게는 쉬는 동안 노트북을 가지고 그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등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지만 전장에서는 그들이 마주한 공포와 시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폭발로 인한 부상에도 개의치 않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명장면을 꼽자면 단연 바하르가 여성들과 함께 탈출하는 장면일 것이다. 현실의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질려 “우리는 그 문을 넘지 못할 거야”라고 망설이는 친구에게 그는 “여기에 있어도 죽고, 잡혀도 우린 죽는 거야”라며 격려한다. 그리고 탈출하는 순간에 마침 양수가 터진 친구를 부축한 채로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스무 걸음이야”라며 함께 목놓아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안전한 지대에서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준다.
이 영화는 비단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참상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우리가 인류가 지닌 잘못된 가치관을 마주하고, 그것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여성으로서 어떠한 힘과 연대를 보여줘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다. 마치 바하르가 외친 "그들이 죽인 것은 우리의 두려움뿐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여성을 무릎 꿇리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KBS미디어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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