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 가족의 삶을 표현한 영화 ‘미나리’가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아온다.
23일 오후 2시 화상 채팅 프로그램 Zoom을 통해 ‘미나리’(감독 정이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연출을 맡은 정이삭 감독과 배우 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가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연은 현지에서 화상 채팅으로 참여했다.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한국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다.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 자기 농장을 만들기 위해 아칸소의 시골마을로 이사 온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 분), 아칸소의 황량한 삶에 지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픈 어머니 모니카(한예리 분), 딸과 함께 살려고 미국에 온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영화는 어린 아들 데이빗(알란 킴 분)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의 정직한 기록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출연진들과 감독 사이의 끈끈한 연대가 느껴졌다. 행사가 시작하기 앞서 배우 윤여정은 한국어를 잘 듣지 못하는 스티븐 연에게 “이것도 못알아듣니?”라고 꾸짖었고 이 말을 들은 스티븐 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윤여정 선배가 꾸짖어 주니까 직접 만난 기분이 들고 집에 온 것 같다”고 말하며 편한 분위기를 보였다.
먼저 정이삭 감독은 화면을 통해 “영화제에 초청해줘서 감사하다. 이렇게 온라인 기자회견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는 작품에 대해 “윌라 캐더가 네브라스카의 농장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였다. 윌라 캐더의 기억을 진실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1980년대 기억을 가지고 하나씩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며 창작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감독은 영화 제목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처음부터 ‘미나리’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미나리 씨앗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심었다. 한국 식물 채소 농장을 했는데 미나리만이 우리 가족만을 위해서 심고 길렀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심고 기른 것 중에 계속 잘 자랐었다. 그랬기에 미나리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품은 사랑 같은 존재였다”고 언급했다.
아버지 제이콥 역으로 분한 스티븐 연은 작품에 대해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대, 언어, 문화 소통의 차이로 인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감독이 만든 이 내용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진실되고 정직한 이야기를 만들면서 배우들에게도 많은 고민이 주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감독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들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을 통해 성장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제이콥 연기를 하면서 녹록치 않은 삶을 이겨내고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하는 부분에서 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한예리 배우와 연기하며 내가 명확하게 보지 못했던 심오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어서 좋은 배움의 작업이었다"고 감사함을 표현했다.
한국어 실력이 완벽하지 않은 그는 윤여정 배우에 대한 특별한 감사함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어 연기를 하는 것이 무서웠다. 처음으로 한 말이 윤여정 선배에게 ‘도와달라’였다. ‘버닝’ 촬영과는 달랐다. 그때는 느낌이 다른 모노톤의 한국어를 구사했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구어체를 써야 했다"며 "한국에서 온 이민자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라기 보단 제이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내가 내 작업에 대해 평가할 순 없으니 관객들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모니카 역을 맡은 한예리는 “감독 만났을 때 인상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정말 못하는데 그냥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한국적인 감독과 모니카라는 사람을 잘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언급했다.
한예리는 ‘미나리’를 통해 할리우드 첫 진출에 도전했다. 이에 대해 각종 매체에서는 '한예리, 할리우드 진출 성공' 등의 기사들을 쏟아냈지만 한예리는 정작 "부담스러웠다"는 진심을 밝혔다.
이어 그는 “거창하게 말하기엔 우린 할리우드에 가보지도 못했고 촬영도 시골 농장에서 찍었다.(웃음) 기사 났을 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외할머니 순자 역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윤여정은 “나이가 들다 보니 작품 보다는 사람을 보면서 일을 한다.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남자로 마음에 든 건 아니고(웃음) 사람이 너무 순수하고 좋았다. 나와 한국 영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었고 그냥 하겠다고 이야기했다”며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최근 윤여정은 각종 미국 영화 매체들에 의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로도 거론됐다. 이에 대해 “곤란하게 됐다. 얼마 전에 식당에 갔는데 한 아저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 축하한다고 하더라. 아직 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곤란했다. 후보에 못 올라가면 내가 못한 게 되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정이삭 감독이 책임져야 한다"며 장내를 폭소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배우들은 작품에 참여한 저마다의 소감을 밝혔다. 스티븐 연은 “아름다운 대본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고,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언어나 물리적인 장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힐링 무비가 될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정이삭 감독은 "배우들이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캐릭터를 창조했다. 나의 삶을 모방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 안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각자의 창조 작업에 의해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들에 대한 극찬을 남겼다.
현재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개봉 계획에 대해서는 코로나 상황도 있고 공식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2020년 선댄스영화제 ‘U.S. Dramatic Competition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 제8회 미들버그 영화제‘에서 배우조합상을 수상하며 개봉 시기에 대한 세계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020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