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트렌드 포럼’이 지난 7월 (목) 아모레퍼시픽 본사 2층 아모레홀에서 진행되었다. 포럼의 목적은 한 해 동안의 한국 대중문화를 결산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것으로, 2022년에 시작한 이래 매년 그 성과물을 책으로 발간했다. 아모레퍼시픽 재단이 주최를 맡게 된 금번 3회 K컬처 트렌드 포럼은 규모가 더 확장되어 4개의 섹션에 약 800명 정도의 연인원이 참석하는 대중 학술 행사가 되었다.
11월 7일 오전 9시40분부터 참가자 등록과 함께 시작된 포럼은, 김태우 아모레퍼시픽재단 사무국장, 정민아 컬처코드연구소 소장, 안숭범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장의 환영사로 문을 열었다. 이어 오전 10시에 첫 순서인 ‘대중음악’ 세션이 시작되었다. 조일동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 고윤화 서울대 한류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이재훈 뉴시스 기자가 참여했고, 김영대 평론가는 2024년 한국의 대중음악계에 대해 “가능성은 많이 제시되었던 한 해지만, 시끄러운 것에 비해 성과는 크지 않았다”고 요약했다.
키워드는 총 다섯 개였는데, ‘멀티 레이블 체제의 명암’ 부분에 대해서는 프로듀서의 시대에서 현재 하이브 같은 멀티레이블의 시대로 이행하면서 2024년은 일종의 성장통을 겪었던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키워드에선 데이식스나 QWER 같은 밴드 음악의 열풍에 대해 분석했다. 인디 록부터 주류음악계까지 열풍이 퍼진 밴드 포맷 대중음악은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현상임에 분명하다는 분석이었다. 세 번째 화두는 로제가 발표한 ‘APT’ 열풍이었다. 패널들은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결합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을 지적하며 이젠 K팝은 K라는 수식어를 떼고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가 기존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스타일을 섞은 ‘매쉬업’ 방식을 보편화한 체감 사례로 로제의 ‘APT’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외에도 최근 국내에서 재점화된 일본 J팝의 인기에 대한 분석이 있었고, 팬덤의 확산과 대중음악 시장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올해의 MVP로는 밴드 열풍을 이끌었던 데이식스가 선정되었고, 2025년의 전망 및 화두로는 ‘K없는 K팝’, ‘버추얼 아이돌 시장의 성장’, ‘BTS 완전체의 컴백’ 등이 언급되었다.
두 번째 세션은 드라마와 예능을 함께 다루는 시간이었다. 패널로는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안수영 MBC 예능본부 PD, 남지은 한겨레신문 기자,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그리고 <킹덤> 시리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을 제작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가 참여했다. 먼저 드라마 부분에 대한 윤석진 교수의 발제가 있었다. 윤 교수는 스토리텔링에선 로맨스 캐릭터의 변주(젠더 감수성과 남녀 관계 전복), 데우스 마키나(회귀, 환생, 빙의의 판타지), 세계관의 공유와 확장(시즌제와 스핀오프) 그리고 주말 드라마와 막장 드라마의 퇴조를 키워드로 꼽았다. 캐릭터 면에서는 주체적 여성과 자기 모순의 남성을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 언급하며, 그 예로 여성의 연대, 남성의 권력에 맞서는 여성, 윤리적 함정에 빠진 남성 그리고 BL과 GL 로맨스의 관계성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정년이>의 김태리를 MVP로 선정했다.
예능에 대해 발제를 한 안수영 PD는 경제 성장률 둔화 시대에 광고 시장이 축소되면서, 신규 예능이 줄고 안전지상주의의 현상이 나타난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유튜브나 숏폼 그리고 OTT로 예능이 확산된 부분도 중요한 흐름이었는데, 이른바 ‘국민 MC’들이 대부분 유튜브를 겸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었다. 한편으로는 진정성 있는 착한 승부의 서사가 돋보이는 예능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최강 야구>와 <흑백 요리사: 요리계급전쟁>이 좋은 예이며 MVP로는 <흑백 요리사: 요리계급전쟁>이 선정되었다.
사실 드라마와 예능 모두 현재 시장 축소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토론에선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루었는데, 위기론과 함께 한편으로는 거품이 빠지며 드라마가 좀 더 본질을 찾아가는 현상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러운 전망들이 이어졌다. 과거에 대해 극적 성찰을 하는 드라마가 다수 제작되고 있고, 로맨스나 추리물의 외연 확장이 기대되며, 산업적으로는 크리에이터나 신인 작가의 창작 기회가 활성화되고 젠더 감수성이 강화된 여성 연출가의 작품이 두드러질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예능에선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연반인’에 대한 강조와 요리 예능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세 번째로 이어진 웹툰 세션엔 김소원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서은영 한양대 학술연구교수, 강태진 코니스트 대표 그리고 웹툰 <검술명가 막내아들>을 제작한 임민혁 콘텐츠랩블루 이사가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2024년 웹툰계의 첫 이슈로 네이버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나스닥 상장을 들었다. 이것은 한국의 웹툰이 북미 시장에서 주류 시장 안으로 진입한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BL 장르의 인기와 팬덤도 중요한 이슈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K웹툰의 중요한 콘텐츠인 BL 장르는 강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큰 잠재력을 지닌 분야이다. 웹툰의 미디어 믹스도 2024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대표적인 것은 웹툰을 기반으로 성공한 게임인 <나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 한국 같은 경우는 ‘웹소설-웹툰-드라마’라는 파이프라인이 형성되어 탄탄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지닌 확장성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유럽 시장에서의 가능성도 논의되었던 의제였다.
2025년 전망에선, BL 장르가 올해보다 더 인기를 끈다는 점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웹툰 산업 자체가 더 좋은 결과를 낼 거라는 비전도 제시되었는데, 그 근거는 IP의 힘과 함께 점점 늘어나고 있는 플랫폼과 유통처를 들 수 있다. 한편 인스타툰에 대한 전망도 있었다. 해시태그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웹툰이라 할 수 있는 인스타툰은 다변화된 시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데, 이 시장을 기존 웹툰이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MVP는, 최근 드라마를 통해 각광 받고 있는 원작 웹툰 <정년이>가 선정되었다.
마지막 세션인 영화 파트는 정민아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현경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나원정 중앙일보 기자 그리고 <서울의 봄> <핸섬가이즈> <보통의 가족> 등을 제작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참여했다. 타 분야와 다르게, 영화 산업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인데, 2019년과 비교할 때 1억 명 정도의 관객이 줄었고 여전히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런 만큼 전체적으로 산업 중심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객석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흥행 분석에 있어서는 장르 다양화, 시성비, 체험 중심의 관람 등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볼 영화를 고르는 기준에서 ‘안정성 > 시즌성 > 스타성’의 공식이 작용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핸섬가이즈> <탈주> <파일럿> 등 중소 규모 영화의 알찬 흥행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소중한 성과였다. 한편 중견 감독들의 작품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한 건 아쉬우면서도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영화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팬덤’의 존재가 돋보이는 2024년이었다. 임영웅의 공연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안녕, 할부지>나 <사랑의 하츄핑>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었다. 아울러 영화관에 야구 중계나 드라마 상영 등 타 분야의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점점 확장하고 있는 재개봉 시장이나, 마치 1990년대의 영화 문화가 재연되고 있는 듯한 최근의 시네필 문화도, 크게 보면 영화 산업에서 팬덤이라는 키워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2025년엔 팬데믹 이전의 시장으로 좀 더 회복하길 염원하며 가진 전망 시간에선, 먼저 봉준호 박찬욱 나홍진 등의 감독들이 내놓을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언급되었다. 팬덤 시장은 점점 더 확장되리라 예측되며, 장르 다양성도 올해보다 더 커질 것으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MVP는 <서울의 봄>과 <베테랑 2>로 악과 정의의 얼굴을 보여주었던 황정민이 선정되었다.
올해 3회를 맞이한 포럼은 아모레퍼시픽재단(이사장 서경배)이 주최, 컬처코드연구소(소장 정민아)와 경희대학교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소장 안숭범)가 주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연구재단, 미다스북스가 후원한 행사다.
포럼 행사를 마친 ‘2025 K컬처 트렌드’ 팀은 올해도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12월 말에 미다스북스에서 도서 『K컬처 트렌드 2025』가 출간될 예정이다.
[사진=아모레퍼시픽재단/컬처코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