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상영에 이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영화 <전,란>에서는 박정민의 빛나는 연기변신을 다시 한 번 목도하게 된다. 박정민은 무과 장원급제의 어사화를 쓴 이종려를 연기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칼싸움 동무였던 ‘노비’ 강동원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7년의 왜란은 그를 변화시킨다. 유리 같은 인물을 크리스탈 같은 연기를 해낸 박정민을 만나 <전,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이종려 캐릭터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면.
▶박정민: “액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그에 대한 연습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진폭이 큰 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Q. 종려는 무표정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박정민: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종려 캐릭터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동안 ‘남자다운’ 것을 연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확 분출하는 연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재밌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증폭시켜야하는 하는 부분이 조금 있었다. 테이크가 거듭되면서 종려 연기가 잘 나온 것 같다. 예전에는 초반 테이크가 좋았었다.”
Q. 천영(강동원)과의 관계는 어떻게 잡았는가. 벗으로 삼았지만 변한다.
▶박정민: “인간의 마음이란 게 한쪽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천영에 대한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잘못된 정보(천영이 자기 가족을 다 죽였다는!)를 듣게 되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인물에게도 계급의식이 있는 사람, 양반의 태도를 보인다. 종려의 마음이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게 있다. 종려는 천영이 좋아서 이름을 지어주잖은가. 그런 양가적인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바탕으로 둘 사이의 감정을 연기했다.”
Q. 사극연기가 처음이다. 대사 톤은 어떻게 했는지.
▶박정민: “사극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대사 톤을 정말 ‘사극처럼’ 해보고 싶었다. 정통 사극을 해 볼 기회가 많지 않기에 좋은 기회라 싶어 제대로 연습을 했다.”
Q. 박찬욱 감독 영화에 출연하고,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박정민: “<헤어질 결심> 후시녹음 갔다가 (김상만) 감독을 본 것 같다. 그리고 단편 <일장춘몽> 캐스팅 되었고, 그걸 끝내고 이 작품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단편을 통해 날 테스트해 본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고 있다.” (박 감독은 <시동>과 <변산>을 재밌게 봤다는데?) “그런 영화도 보신다는 게 놀랍고, 그 영화 때문에 캐스팅했다면 더 놀랍다. 그런데 왜 <헤어질 결심>에서의 캐릭터를 줬을까. 그래도 뭔가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저한테서 뭘 보셨는지 모르겠다.”
Q. 극중 이종려의 무술실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어릴 때부터 천영에게 훈련 받았지만 어떤 열등감이 있는 것도 같다.
▶박정민: “검술의 실력차이는 한 포인트인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천영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7년 동안 왕을 호위하며, 군을 이끌면서, 명나라와 교류하였을 테니 실력이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그 포인트가 중요했던 것 같다. 천영과 다시 만나 싸울 때는 예전과는 달리 대등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액션 팀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다시 대련할 때는 종려가 조금 더 이성적이고 차갑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천영은 흥분해서 달려드는 형국으로 만들어다. 그러다가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종려가 흥분하고, 제압당한다. 그런 감정적인 액션을 만드는 게 포인트이다. 검술은 사실 천영과 비교하면 뒤처진다. 내 생각으로는 훨씬 더 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종려의 칼질에서는 울분의 감정이 실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정이 실린 린 칼 사위가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Q. 칼 연습을 할 때 천영이 ‘네 칼에는 분노가 없다’가 말했다.
▶박정민: “아마 종려에게 분노가 분출하는 것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시작된 것이다. 그 때부터 백성에게조차 거리낌 없이 칼을 휘두른다. 분노는 축적이 되었고, 7년이란 세월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 것이다. 영화에는 빠졌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대사도 있었다. 천영이와 다시 붙었을 때 천영을 한 번 제압한다. 그때 천영이 ‘너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난 길거리를 떠돌았는데, 넌 군대에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Q. 김상만 감독의 호흡은.
▶박정민: “생각지도 못했던 연출을 할 때가 있다. 연기를 하다가 잘 안 풀리거나 어려울 때 말씀드리면 껄껄 웃고 마신다. 그런데 다시 찍을 때는 카메라 앵글이나 대본이 다 수정이 되어 있다. 내가 걱정하던 게 다 해결이 되어 있었다. 말로 한다기보다는 본인이 생각하고 바꿔서 증명해주신다.”
Q. 시나리오에서 박찬욱 감독 각본의 특징이 엿보이는 구석이 있었는지.
▶박정민: “전체적으로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소설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소설책으로 내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보고 상상하며 연기하기가 쉬운 부류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이게 유머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게 섞여있었다.”
Q. 차승원 배우가 연기한 선조 연기톤에 대해.
▶박정민: “선배가 준비를 많이 해 온 것도 있고, 사실 왕은 유일한 사람이니 왕이 무엇을 해도 성립되는 것이다. 준비를 이렇게 해 와서, 카메라에서 다 하시는 것을 보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넷플럭스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로 있었다. 배우로서의 소회는.
▶박정민: “갑론을박 하는 것을 보고는 이게 중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가 훨씬 많다. 코로나 이후 영화팬에게 이런 플랫폼이 많이 스며든 상황에서 OTT와 극장의 우열을 따지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 두 매체를 다 즐기는 소비자로서 크게 상관을 않는다. 물론, 극장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 GV나 무대인사로 소통을 계속 하고 싶다. <전,란>을 부산에서 보면서 이 영화는 오히려 극장에서 상영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니터로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Q. 자기가 나왔던 작품은 다시 돌려보는 편인가.
▶박정민: “저는 제가 나온 영화는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 마음만 아프다. 내가 못한 것만 보이니. <전,란>을 부산에서 봤을 때 이게 내가 찍은 게 맞나 싶었다. 편집, 속도감, 음악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난 내가 나온 장면만 알지 다른 연기자가 어떻게 찍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자신의 작품은?) “이제 막 보기 시작한 게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정도인 것 같다. 이건 옛날 것이니, 내가 어려서 그렇다고 자기합리화 하는 것이다.”
Q. 책을 내고, 출판사도 한다. 이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는지.
▶박정민: “이런 것 하면 재밌지 않을까. 충동적으로 생각하다가 진행한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게 된다. 출판사는 저를 믿고 글을 주신 분이 있으니 책임감이 생기게 된다. 책이란 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글만으로는 이뤄지는 것이 아니더라. 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아이디어와 출판사의 노고가 들어간다. 원고가 좋을 때, 그 책을 내기 위해 서치하는 과정, 아이디어 과정이 좋았다. 배우는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 뭔가를 해야한다. 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또 다른 과정인 것 같다. 그런 과정이 매력적이고, 만들 때 행복해지더라. 아마 김상만 감독님도 강동원 배우가 캐스팅되었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출판사는 설립 이래 적자를 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Q. 시나리오 볼 때 예상한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 구현된 장면이 있는지.
▶박정민: “미장센이이 달랐다. 카메라 무빙이나 화면 구성, 색깔 이런 것들은 대본에 잘 나오지 않는다. 소설 같다고 한 것은 묘사들이 문학적이어서 아름답지만 카메라의 이동이나 음악, 색감이 적혀있지 않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생각지도 못한 구도가 나오고, 생각보다 웅장한 장면이 나왔다. 내가 찍었지만 ‘이렇게 나온다고?’ 싶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 경험 안에서만 상상한다는 것을 느꼈다.”
Q. 왓챠가 진행한 ‘언프레임드 프로젝트’의 단편 <반장선거>의 연출과 각본을 맡았었다. 또 연출을 할 계획은?
▶박정민: “당장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예산 측면에서 부담이 적은 선에서는 상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연출해야지 하는 생각은 ㅇ벗다. 그런 능력은 안 되는 것 같다. 단편 시나리오만 써놓았다.”
Q. 연륜이 쌓이며 배우로서의 마인드는 어떻게 변하는지.
▶박정민: “책임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이 저에게 주는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고, 롤이 커지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모니터를 보며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나보다 어린 배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선배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게 다 책임감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넷플릭스 영화 <전,란>을 막 공개한 박정민 배우는 영화 <하얼빈>과 <1승>으로 곧 다시 만난다. 드라마 <유토피아> 촬영을 끝냈고, 연상호 감독의 <얼굴>을 찍고 있단다. 그리고 <휴민트>도 대기 중이란다. 박정민의 바쁘다. 연기하느라.
[사진=샘컴퍼니/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