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25일(금)부터 11월 6일(수)까지 시네마테크 KOFA(상암동 소재)에서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을 개최한다. 한국영화사의 산 증인인 정일성 촬영감독이 두 차례에 걸쳐 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는 1992년 194점, 2019년 6,643점으로 총 6,837점에 달한다. 영상자료원은 이번 기획전 기간 동안 정일성 촬영감독의 기증품 중 선별된 주요 자료들을 특별 전시하고, <화녀>, <만다라>, <최후의 증인>, <장군의 아들> 등 한국영화사의 정전이자 정일성 촬영감독의 대표작 17편을 4K 복원판과 개봉 당시 35mm 필름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25일 오후,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 개막식 행사에는 원로배우 이해룡, 팽정문 촬영감독협회장, 하명중, 배창호, 김유진, 정지영 감독과 안정숙 이준동 전 영진위 위원장,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홍준 영상자료원장은 “10월 27일은 세계시청각문화유산의 날이다. 영상자료원은 2020년부터 수집, 보존, 복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 진행 중이다. 이번에 자료원 개원 50주년을 맞아 자료보존의 주인공으로 정일성 촬영감독님을 모셨다. 정 감독은 한국영화의 산증인으로 수많은 걸작을 남겼고, 후배 영화인을 위해 수천 점의 수집품을 기증해주셨다.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 해제작업과 구술작업까지 기꺼이 맡아주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별기획전의 주인공인 정일성 촬영감독은 "그동안 138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38명의 감독과 작업했다. 함께 작업한 감독들 대부분이 고인이 되셨고 지금은 몇 분 안 남아 있다. 나도 살아 있는 동안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료들을 기증하게 됐다."면서 "기증해달라는 대학에서도 도서관에서 기증해달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인들도 자료를 통해 또 다른 자기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상자료원에 자료를 건넸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개막작으로 선정된 <만다라>와 관련하여 “이 작품을 선정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제가 교통사고로 대수술을 받았고,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았었다. 그 때 임권택 감독이 이 영화를 찍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송장 치를 일 있냐’는 농담도 있었다. 수술 끝나고 바로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오늘 이런 날이 있게 된 것은 38편의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고, 저를 믿어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1/3이 내 공로이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영화를 지키고 전통을 이어온 촬영감독 선배님의 명복을 빌고, 영화감독들에게 이 공을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1929년생 정일성 촬영감독은 '한국영화'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전부터 한국에서 영화를 독학하고 한국의 풍경을 포착해 온 영화인이다. 김학성 촬영기사의 조수로 도제생활을 거쳐 1957년 <가거라 슬픔이여>로 데뷔한 이후 노필, 박종호, 이성구, 김기영, 김호선, 김수용, 석래명, 강대진, 이원세, 유현목, 하길종, 변장호, 이두용, 박철수, 배창호, 하명중, 장길수 그리고 임권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감독들과 합을 맞추며 그만의 촬영세계를 완성해 갔다. 연출자가 달라지더라도 그의 화면에는 공통적으로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부터 한국전쟁과 분단, 군사독재와 민주화까지 삶으로 몸소 부딪쳐 온 파란의 역사가 담겨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소위 한국영화의 암흑기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대형 교통사고와 암 진단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후회 없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작 <최후의 증인>, <만다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그려갔다.
정일성 촬영감독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자료는 1992년 194점, 2019년 6,643점으로 총 6,837점에 달한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기증 자료는 촬영부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1950년 초부터 50여 년간 총 95편의 촬영 작품(KMDb 기준)을 남기기까지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한국영화사의 카메라 뒤 편 현장을 담고 있다. 전체 기증 목록과 그중에서 선별된 주요 자료들은 기획전 기간 동안 시네마테크KOFA 로비에서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김기영 감독과의 첫 작업으로 도발적인 색채 실험의 결과물인 <화녀>(김기영, 1970), 유현목 감독과의 협업으로 가야금의 섬세한 선율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문>(유현목, 1977), 대담한 카메라 구도로 영화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어도>(김기영, 1977), 임권택 감독과의 첫 작업으로 두 거장의 영화세계 충돌을 엿볼 수 있는 <신궁>(임권택, 1979), 한국영화사의 비극을 장르의 대서사시로 승화시킨 <최후의 증인>(이두용, 1980), 대형 교통사고와 암 진단이라는 생사의 기로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절실한 구도의 길을 영상화한 <만다라>(1981)을 비롯하여 <만추>(김수용, 1981), <안개마을>(임권택, 1982), <길소뜸>(임권택, 1985), <황진이>(배창호, 1986), <태>(하명중, 1986), <아다다>(임권택, 1987), <장군의 아들>(임권택, 1990), <개벽>(임권택, 1991), <서편제>(임권택, 1993), <취화선>(임권택, 2002)까지 총 17편의 대표작을 상영한다. 각 상영작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자문을 바탕으로 완성하여 최초 상영하는 <장군의 아들>을 비롯한 4K 리마스터링 복원판과 개봉 당시 35mm 필름으로 상영된다.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은 촬영감독을 비롯한 영화를 완성해내는 수많은 스태프들에게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상영과 전시뿐 아니라, 정일성 촬영감독과의 대담과 함께 박홍열 촬영감독,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진행하는 강연을 통해 한국영화계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는 부대행사 또한 진행될 예정이다.
자세한 상영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 관객과의 대화
- 10월 25일(금) 16:00 <만다라> 상영 후 ㅣ 참석자: 정일성 촬영감독,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
- 10월 26일(토) 16:00 <최후의 증인> 상영 후 ㅣ 참석자: 정일성 촬영감독, 황민진 프로그래머
- 11월 6일(수) 18:00 <태> 상영 후 ㅣ 참석자: 정일성 촬영감독, 박정훈·김선령 촬영감독
● 강연
- 11월 1일(금) 18:00 <만추> 상영 후 ㅣ 강연자: 박홍열 촬영감독
- 11월 2일(토) 16:00 <취화선> 상영 후 ㅣ 강연자: 정성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