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하는 영화 [더 킬러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The Killers’(1927)를 모티브로 김종관, 노덕, 장항준, 이명세 등 네 명의 감독의 서로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살인극을 담은 시네마 앤솔로지‘이다. 김종관(변신), 노덕(업자들), 장항준(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이명세(무성영화) 심은경 배우는 이 모든 작품에 출연한다. 일본에서의 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심은경 배우를 만나 ’킬러의 연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Q. 네 편의 옴니버스에 모두 출연한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심은경: “이명세 감독의 신작 프로젝트라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이후 다른 감독님들도 요청을 주셨다. 작품은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이 베이스가 되었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바 세트로 이용된다. 유기적인 흐름이 잡혀있어서 전체 에피소드에 출연하게 되었다.”
Q. 유기적으로 이어진 것 같으면서도 겹쳐 보이는 느낌이 없다.
▶심은경: “네 개의 이야기가 달라 보인다고 평해주시니 고맙다. 달라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변신]에서는 뱀파이어 특성을 살려 킬러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업자들]에서는 인질 역할이지만 3명의 업자들을 잡아먹는 킬러를 나름 생각했었다. 세 번째 작품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에서는 사진으로만 나온다. 장항준 감독말로는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무성영화]는 킬러들이 나온다. 헤밍웨이 소설을 베이스로 한 작품이다. 내가 맡은 선샤인은 킬러들을 죽이는 킬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게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었다.”
Q.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지.
▶심은경: “공개된 4편 말고, 두 편이 더 있다. 모두 6편이다. 연기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너무 재밌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는데 이렇게 한 번에 만날 수 있었다. 뱀파이어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변신]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번쯤은 퇴폐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피분장도 해보고 싶었다. 김종관 감독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시했었다. 노덕 감독의 [업자들]에서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감정의 밸런스를 맞춰야했다. 그 역할이 가장 어려웠다. 환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인 캐릭터이니. 톤앤매너를 잘 잡아야했다. [무성영화]는 제가 경험한 것을 뒤집는 현장이어다. 연기를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깨뜨려주었다.”
“아직 공개 안 된 것은 마음속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 모여 유령을 물리치는 이야기와 먼 미래의 우주에 고립된 남자에게 다가가는 이야기이다. 처음 해보는 SF이다.”
Q. 이명세 감독이 팬이었다고 밝혔는데, [무성영화] 작업은 어땠는지.
▶심은경: “처음 본 게 이명세 감독님의 (2007)이다. 어렵게 다가왔지만 뭔가 새로운 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감히 말씀드리자면 한국최고의 컬트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과 작품을 찍어보고 싶었다. 감독님은 리허설을 중요시한다. 완벽한 동선을 짜야한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버려야했다. 예전대로라면 ‘선샤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성격이지 않을까요,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라고 감독과 절충했었다면 이번엔 감독님의 세계관 안에 들어가서 그 옷을 입고, 감독님의 디렉션에 맞춰 투영시키려고 했다. 현장에서의 내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가 의구심이 가질 때 이 작품을 만난 것이다. 리허설 하면서 ‘연습만이 살 길이다’는 것을 크게 절감했다.”
Q. 한국영화로서는 무척 오랜만에 관객을 맞는다.
▶심은경: “배우로서 연기는 계속 했었다. 이전에 찍어 놓은 작품도 있고, <별빛이 내린다>도 찍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짧게 나온 것도 있다. 최근 <낮과 밤은 서로에게>라는 옴니버스도 끝냈다. 작년에 찍은 <더 킬러스>가 이 시기에 개봉한다는 게 감회가 새롭다.”
Q. 첫 번째 이야기 <변신>과 관련하여 김종관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심은경: “이런 역할을 맡아 신이 나서 제안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샤이닝>에서의 잭 니콜슨 모습이었다. 환각 상태에서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는 신이다. 연우진이 바에서 눈을 떴을 때 그게 환각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내가 뱀파이어인지 아닌지 모르게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놓인 존재였으면 했다. 연기를 할 때 음악을 들으면 톤앤매너를 잡기가 쉽다. 그 때 들은 게 프랭크(Franck)의 바이올린 소나타 1악장이다. 감독님이 그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사용했다고 하더라.”
Q. 사용된 피는?
▶심은경: “분장할 때 쓰는 가짜 피가 있다. 물엿에 색소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피 분장을 하거나 입에 머금고 있다고 내뿜기도 한다. <부산행>때 해봐서 익숙하다. 테이크를 많이 갔었는데 사래가 걸리기도 했다. 나중엔 토마토 쥬스를 조금 섞어 마시기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Q.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가 꿈에 대한 영화라고 했는데.
▶심은경: “선샤인 역을 맡고 나서 감독님이 추천해 주신 영화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카비리아의 밤>(1957)이었다. 마지막 여자주인공 표정을 보라고 하셨다. 선샤인과 닮아있다고. 굴곡 많은 삶을 탄 여자(줄리에타 마시나)의 모습이다. 서커스단에서 힘든 삶은 다 겪어내고 걸어갈 때 그녀의 주위에 사람이 모여든다. 그때 눈물을 머금고 웃는다. 명장면이다. 선샤인의 모습은 이런 느낌 아닐까 하신 것이다. 선샤인의 감정에 참조했다. 내레이션은 빌리 와일드 감독의 <이중배상>에서의 남자 주인공의 방식을 참조했다. 후시녹음은 세 번 했다. 대사가 바뀐 것도 있다. <무성영화>는 대중 앞에 선보이고 싶었던 실험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가 공개되어 기쁘다.”
Q. OTT시대의 영화에 대한 고민은.
▶심은경: “이명세 감독은 지속가능한 무언가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무성영화>는 뚜렷한 내러티브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내러티브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중시해서도 안 된다. 본질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영화란 게 무엇인가. 극장상황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관객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감독님 스스로에게도.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다양한 관점의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Q. 고전영화를 많이 언급했다. ‘뱀파이어’를 위해선 어떤 영화를 참조했는지.
▶심은경: “물론 <노스페라투>(1922)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이 동기가 되었다. 인터뷰가 긴장되어 어제 극장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동경이야기>와 <동경의 황혼>을 이어 봤다.” (자막은 보는지?) “하하, 옛날 영화는 자막 없이 보긴 어렵다. <라쇼몽>을 볼 때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일본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그들도 그 영화는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더라.”
Q. 잔인한 질문인데 ‘더 킬러스’ 에피소드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심은경: “다 좋다. 모든 사람이 다 즐길 수는 없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성영화> 같은 것도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레이어가 이으니 각자 만족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Q. 헤밍웨이의 원작소설과 비교하자면.
▶심은경: “소설에서는 결정적인 사건을 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감자 으깬 돼지고기 요리 관련된 대사가 계속 나오고, 사람을 기다려서 죽이려고 하는데, 죽이지도 않는다. 소설 자체가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독자들이 채워나가는 부분이 있다. 이명세 감독님은 원작소설이 미국의 허무주의를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도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관객들이 보고 자신의 공간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공통점이지 않을까.”
Q. 배우 심은경에 대해.
▶심은경: “배우로서의 강점이 없어서 더 노력하는 것 같다. 어릴 땐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서 뭐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게 발목을 잡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글렌 굴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절망감에 빠진 적도 있다. 연기란 것은 연습을 계속해야 표현이 된다. 그것이 완성이 아니라 단지 한 발자국 나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노력을 해야 뭔가 나온다.”
[사진=스튜디오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