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희와 한해인이 출연하는 독립영화 <폭설>이 내일(23일) 개봉한다. 극중 한소희는 어릴 때부터 아역연기로 스타가 된 설이를 연기하고, 한해인은 연기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수안을 연기한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만난 둘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난다. 파도가 높이 치는 양양의 겨울바다에서 서핑을 하며 그 세월을 반추한다. 개봉을 앞두고 윤수익 감독을 만나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땀을 흘리며 급하게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감독은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오느라...”란다. 어떤 일을 하다 왔는지 궁금해졌다.
Q. <그로기 써머>이후 10년 만의 신작이다. 이건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수익 감독: “좀 오래 되었네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인을 꿈꾸는 고등학생 이야기이다. 물론 독립영화이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그 때만 해도 ‘영화제 출품’이란 것을 잘 몰랐다.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은 배급사가 있어 영화제 소개나 개봉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박인하 배우가 이번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그 분에게는 <그로기 써머>가 두 번째 장편이었다. 그 당시 독립영화 하는 분들과 열심히 작업한 작품이다.”
Q. <그로기 써머> 이후 10년 만에 후속작이 나왔다.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는지.
▶윤수익 감독: “아니다. 꾸준히 다른 작업을 했다. 단편도 찍고,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었다.” (다큐는 어떤 작품인가?) “홍대를 공간으로 접근하는 작품이었다. 원래 홍대가 예술적인 장소, 공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유흥의 이미지가 든다. 그렇게 변해가는 홍대 거리를 꾸준히 촬영해 온 것이다. 아마 영화제든 어디든 공개적으로 상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핸드헬드로 찍은 것인데 인물이 많이 나온다. 요즘은 초상권 같은 게 엄격하니. 너무 많은 얼굴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오니 상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서칭 포 슈가맨>처럼, 큰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지만 자기 나라에 돌아오면 건설노동자로 살아간 것처럼. 나도 그런 꿈을 꾸는 것 같다. 금전적 이익보다는 이 작업을 꾸준히, 매일 4시간씩 하는 게 행복을 느낀다.”
Q. <폭설>의 시나리오는 언제 완성했는지. 여러 차례 보충촬영을 했다고 밝혔는데.
▶윤수익 감독: “시나리오는 2019년 강원영상위원회가 주최한 공모전에 맞춰 완성한 것이다. 그 시나리오와는 많이 달라졌다. 원래 시나리오는 물속에서의 장면이 많은 드라마였다. 겨울바다 특성상 배우들이나 촬영하는 사람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좀 더 수정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이 영화는 서핑 영화가 아니기에. 두 사람의 감정적인 파고를 바다를 통해 드러났으면 했다. 눈이 안 와서 촬영을 한 해 기다리면 보충촬영을 하기도 했다. 편집하면서, 중간에 컨셉을 바꾸기도 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현재의 수안 모습이 훨씬 영화적이었던 것 같다. 한해인 배우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어서 보충촬영도 가능했던 것 같다.”
Q. 캐스팅은 어떤 순으로 이뤄졌나.
▶윤수익 감독: “한해인 배우가 먼저 캐스팅 되었다. 시나리오 초고 쓸 때부터 알고 있던 배우였다. 마음속으로 한해인 배우가 수안 역할로 맡아주었으면 했고 캐스팅을 약속받았다. 한소희는 촬영 한 달 전쯤에 결정되었다. 배우들이 서핑을 배워야했다. 한소희 배우가 지금같이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Q. 그 때에도 한소희의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는지.
▶윤수익 감독: “물론 아우라 같은 게 있었다. 모델 출신인 한소희 배우는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꾸밀 수 있는 면에서 설이라는 인물에 적합할 것으로 보였다. 극중에서는 이미 슈퍼스타 반열에 있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갖고 있는 대중적 아름다움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외면적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면까지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를 바랐다. 사진을 다양하게 찾아봤는데 눈빛이 저항적이고 강렬했다. 화려한 면과 저항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Q. 수안을 연기한 한해인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되었나.
▶윤수익 감독: “인디포럼영화제에 개막작인 <나와 당신>에 나온 배우이다. 처음 볼 때 이 배우는 독창적인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나 눈빛이 안정적이면서 연기할 때 믿음이 갔다. 부드러우면서도 속으로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예전에 단편을 함께 할 때 요구하는 신을 정확하게 연기해 주었다. 설이는 화려하고, 수안은 신비롭다. 그 두 조합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를 기대했다.”
Q. 한해인 배우와 단편을 먼저 찍었었나.
▶윤수익 감독: “그렇다. 제목이 <폭설>이다. 장편 <폭설>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눈이 많이 내린다. 멜로였다. 자신의 꿈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제에는 출품되지 않은 작품이다.”
Q. 촬영은 언제 시작되었나. 첫 촬영은 어떤 장면인가.
▶윤수익 감독: “2019년에서 20년 넘어가는 겨울, 강원도 양양과 강릉 쪽에서 첫 촬영을 했었다. 성인이 된 수안이 아침 드라마를 찍는 장면이다.”
Q. <폭설>은 어떤 이야기인가. 성장 드라마인가, 우정극인가, 퀴어드라마인가.
▶윤수익 감독: “원래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랑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설이라는 인물을 먼저 만들었다. 소설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일상의 광기에 대하여>에 있는 단편이다. 가장 아름다운 외면을 가진 사람인데, 그 아름다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정된 시선으로, 하나의 이미지에 가두려고 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과, 자신의 비뚤어진 내면의 간극 때문에 자멸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극단적 선택한다. 우리가 아름다운 연예인을 봤을 때 그런 시선과 편견을 갖기 쉽다. 그런 것에 대한 질문으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눈이 많이 내리면 그리운 감정도 올 것이다. 그런 그리움을 담은 겨울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캐릭터는 부수적인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오래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난다. 눈 같은 하얀 푸들이다. 떠나보낸 지가 20년이 되지만, 같이 눈밭을 뛰어 놀던 때가 생각한다. 그때 감정도 기억난다. 그 시절이 후회되는 것도 있다. 그때는 왜 더 잘 놀아주지 못했을까. 산책도 해줄걸. 그게 영화의 구조를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되뇌는 구조가 나온 것 같다.”
Q. 서핑을 즐기는지. 영화에 서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윤수익 감독: “양양에 머물며 2년 정도 일도 하고 글도 쓰고 그랬다. 양양의 겨울바다는 굉장히 거칠다. 거친 양양의 파도는 야생적인 면과 아름다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의 감정적 파고를 양양의 겨울바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두 사람 사이의 밀고 당기는, 몸으로 부딪치는 육감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겨울바다의 풍경을 통해 파도와 파고를 통해 두 사람의 주고받는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Q. 서핑을 배우기는 쉬운가.
▶윤수익 감독: “우선 마음이 먼저일 것이다. 자연의 일부가 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물에 대한 공포증만 없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바다가 주는 경이감이 있다. 파도는 인간에게 회복하는 힘을 준다.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반년 정도 꾸준히 가주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서핑 영화 기억에 남는 것은?) “<폭풍 속으로>와 기타노 다케시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근데 기타노 감독 영화는 서핑보드를 들고 다니는 장면은 많지만 실제 스펙터클한 서핑장면을 없다. 오래 되었지만 서핑 영화라는 인상이 깊다.”
Q. 서핑장면 촬영은 어떻게 한 것인가. ‘독립영화’ 레벨은 아닌 것 같다.
▶윤수익 감독: “카메라 리깅 해서 찍는다. 망원렌즈로 찍은 것도 있고. 수중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 찍었다. 바다에서 직접 찍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경험해 보신 것이다. 독립영화 예산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신이다. 그분들에게도 도전이었던 것이다.”
Q. 영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장면은 둘이 백사장에 표류하고 이어지는 신이다.
▶윤수익 감독: “조난당한 상황이다. 두 사람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오직 둘만이 아는 이야기처럼 만들기 위해. 서핑하는 장소도 그렇고, 그 산장도 그렇다.”
Q. 설이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상황인가.
▶윤수익 감독: “아마 설이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결핍이 있을 것이다. 계속 불안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에서는 자멸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자유를 찾기 위해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Q. 계속 추가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완성된 작품에 아쉬움이 있는지.
▶윤수익 감독: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을 3년 했었다. 꾸준히 해왔기에 미련이 없다. 잘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폭설>은 애타게 그리운 감정을 담은 겨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느낌을 잘 봐주시기를 바란다.”
참, 윤수익 감독은 인터뷰 전에 자판기 관리 일을 하고 왔단다. 영화로만 살 수 없으니 하는 생업이요, 부업이란다. 지금도 설치된 자판기를 보면 ‘길목’과 ‘상품’과 ‘마진’을 먼저 떠올린다는 ‘벤딩머신 관리 3년차’ 윤수익 감독의 독립영화 <폭설>은 23일 개봉한다.
[사진=판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