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보이스], [튼튼이의 모험], [습도 다소 높음]. 영화제목들 이다. 극장에서도 개봉된 영화들이다. 이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었던 고봉수 감독이 3년 만에 신작 [빚가리]로 돌아왔다. (세종시) 조치원을 배경으로 눈물겨운 소시민, 소상공인, 일반인의 ‘경제 시련극’이 펼쳐진다. 여전히 고봉수 스타일을 유지하며, 로컬리티를 높인 소시민 드라마를 만든 고봉수 감독에게 [빚가리]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의 전작들은 OTT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빚가리]는 어제(16일)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Q. 코로나 시기에 개봉된 [습도 다소 높음]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고봉수 감독: “<빚가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을 중심으로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는 단체인 ‘시네마다방’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시네마다방의 시혜지 대표는 영화 <반칙왕>에 나오는 ‘연기복싱체육관’이 있는 조치원을 방문했었는데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이 없어 다양성 문화를 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전용상영관 설립을 목표로 이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활동 중 하나가 영화 제작이었다. 영화를 만들어줄 사람을 찾다 저에게 연락을 주신 것이다. 처음엔 부담이 되어 거절했었다. ‘시네마다방’의 의미 있는 활동과 100여 명의 주민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여 ‘조치원’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를 듣고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고군분투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되었다.”
“조치원에서 활동하는 ‘시네마다방’의 제의로 시작되었기에 제목도 충청도 느낌이 났으면 했다. '빚가리'는 ‘빚을 갚는 일’을 의미하는 충청도 사투리이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사업과 세종메세나협회의 도움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Q. 이른바 '고봉수사단'이라 불리는 익숙한 얼굴이 안보여서 아쉬웠다.
▶고봉수 감독: “정말 기쁘게도 저희 사단 배우들이 정말 바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영화 찍을 당시에도 배우들이 다른 작품 촬영 중이었다. 아쉽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함께 할 수 없었다. 이번에 함께한 문용일, 승형배 배우는 그간 작업했던 배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분들이다. 꼭 한 번 더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들을 모셨다.”
Q. 주인공 고성완 배우는 친척이고, 서울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다가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여 화제를 모았다.
▶고봉수 감독: “작은 아버지 고성완 배우는 지금도 여전히 시내버스 회사에 근무 중이다. 삼촌은 제가 처음 단편을 만들 때부터 주인공이었고 지금도 가장 열렬히 지지해주는 분이시다. ‘봉수가 만드는 영화에는 힘닿는 데까지 출연하겠다’고 하셨다.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제 마음속 캐스팅 0순위이다.”
Q. 극중에 등장하는 '돌뼈나무' 콘셉트는 개인적 경험담인가.
▶고봉수 감독: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시혜지 대표에게 소개 받은 단체가 ‘PAL문화유산센터’라는 곳이다. 실제로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오래된 것들을 현대의 놀거리로 복원하는 문화유산 콘텐츠 회사이다. 대표인 장동우 씨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주의적 단체생활을 하는 홍민이 캐릭터가 그려졌다. 고고학 마니아로서 테드 강연도 하신 달변가 장동우 대표를 영화에 캐스팅 하면 완벽할거라 생각했다. 대복, 홍민, 원창 역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은 전부 일반인이다. 돌뼈나무 멤버들도.”
Q. 영화에서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부분이 있는지.
▶고봉수 감독: “영화를 만들 때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늘 후회하고 자책했다. 주성치가 옛 연인(나혜연)을 그리워하며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나는 주성치가 영화를 만들면서 참회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서유항마편>(서유기-모험의 시작)을 끝으로 더 이상 나혜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는 그 영화로 모든 것을 쏟아내며 후회를 떨쳐버린 것 같다. 저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후회만 남는다. 아버지 이야기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면 좋겠다.”
Q. 극중에 ‘돌뼈나무’ 사람들이 코피리를 부는 장면이 있다. 넷플릭스 <더 에이트쇼> 박정민 연기가 떠올랐다.
▶고봉수 감독: “장동우 대표는 코코더 장인이라는 유튜브 영상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2개의 리코더를 가지고 현란하게 연주를 잘 하시는 분이다. 따로 연습하지는 않았다. <빚가리>는 22년도에 찍었었다. 나중에 <더 에이트쇼>에 코코더 장면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었다.”
Q. 홍민의 누나로 등장하는 시혜지가 신스틸러였다.
▶고봉수 감독: “시혜지 배우는 [시네마다방]을 운영하는 대표이다. 일반인으로서 출연을 꺼릴 법도 한데, 평소 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출연을 자청하기도 했고, 누나 이미지로 너무 좋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결정한 것이다.”
Q. 고봉수 감독은 ‘불굴의 제작비’가 항상 화제이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완성시켰는지.
▶고봉수 감독: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소정의 연출료를 받고 참여한 것이다. 시네마다방에서 세종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투자 및 지원을 받았다. 정확한 제작비는 모른다.”
Q. 각본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인지. 배우들의 연기는 애드리브가 있는지.
▶고봉수 감독: “대복, 홍민, 원창 등 세 명의 주연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는 전부 세종시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비전문 배우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유도하기 위해, 주요 대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황으로 알려 드린 후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촬영 일정이 매우 타이트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운 장면들이 있지만 그래도 조치원 시민들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주었기에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전작 [습도 다소 높음]이 개봉된 후 받은 가장 인상적인 평가가 있다면?
▶고봉수 감독: “‘습도 높은 여름이 지나야 결실의 가을을 만날 수 있다’는 평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 영화를 응원하시는 분들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있지만 저희 팀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조언해주시는 경우도 많다. 저와 배우들이 습도 높은 여름을 지나 결실을 맺기를 기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Q. 계속해서 고봉수감독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고봉수 감독: “두 가지인 것 같다. 저희들의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의 응원과 관심,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영화를 만들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빚가리]가 드디어 개봉하는데 예비 관객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고봉수 감독: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등록된 전용 상영관은 아직 조치원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2022년 12월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으로 개관한 세종시 유일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시네마다방' 에서 <빚가리>를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세종시 주민이 함께 만든 영화를 상영할 영화관이 세종시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빚가리>가 계속해서 다음 단계를 위한 힘이 되길 바랍니다. 지역주민들의 작은 힘을 모아 만든 이 작은 영화에 많은 관심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극장을 나가실 때 가슴이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면 좋겠습니다.”
[사진=시네마다방/필름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