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군 감나무골. 한 동네 위 아랫집 친했던 두 아버지가 맺어줬다는 스물한 살 총각과 열아홉 처자는 연애가 뭔고, 손도 안 잡아보고 부부의 연을 맺었단다. 그렇게 75년을 해로한 박철순(96) 할아버지와 김옥윤(94) 할머니. 슬하에 사이좋게 딸 넷, 아들 넷을 두었다. 총각 시절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8남매가 복작대며 살았지만, 지금은 부부만이 느릿느릿, 풍경처럼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부부의 집 앞에는 단정한 채마밭이 펼쳐져 있다. 매일 둘러보는 텃밭에는 자식들 주려고 심은 콩, 고구마, 가지, 호박이 주렁주렁, 알차게 자라고 있다. 아흔여섯 할아버지는 귀만 좀 어두울 뿐, 20킬로그램 소금 자루도 번쩍번쩍 들어 이웃집 배달까지 해주고, 예초기를 둘러메고 부모님 산소의 벌초도 손수 하신다.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짱짱한 일상, 그런 할아버지에겐 아들이 사준 애마, 세 발 오토바이가 있다. 할머니가 챙겨주는 헬멧을 쓰고 버스정류장으로 딸 마중을 나간다. 아흔넷 옥윤 할머니는 젊어서 농사지으며 온 동네 길쌈을 다 했더니, 어깨 연골이 다 닳아버렸단다. 그럼에도 여전히 살림을 직접 하신다. 무엇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흔여섯 남편이 넘어지기라도 할까 할아버지 뒤를 따라다닌다.
부부만 사는 조용한 고향집, 시도 때도 없이 8남매의 안부 전화가 걸려 온다. ‘뜨거운 데 밭에서 일하지 마시라, 가만히 집에만 계셔라’ 당부에 또 당부. 그러나 당치도 않다. 철마다 자라는 먹을거리는 저절로 나겠는가, 밭에 약 치고 풀을 뽑고 왔지만, 자식들에겐 절대 일 안 한다고 시치미를 뚝 떼신다. 하지만 부모님 성정을 모를까, 8남매는 무시로 고향집 부모님을 찾아오는데, 그런 날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매불망 동구 밖만 내려다본다. 시집가기 전까지 부모님과 농사를 지었다는 셋째 미자(69) 씨, 돌아가시고 후회한들 다 부질없는 일이라며, 한 번이라도 더 내려와 식사를 챙겨드리고, 연꽃 나들이를 모셔 가고, 저녁이면 말벗이 돼드린다. 인천 사는 여섯째 상준 씨는 벌초 가시는 아흔여섯 아버지를 살뜰히 모신다. 팔 남매가 모두 효녀 효자요, 동기간 우애는 말할 것도 없다. 자식 모두 귀하지만 특히나 막내 아들은 ‘두 번 사는 아들’이라는데... 15년 전 생사의 기로에서, 스무 살 조카의 간을 이식받았단다. 그때를 떠올리면 백발의 노모는 가슴이 먹먹한데, 생때같은 아들이 삼촌을 위해 내린 결정에, 큰며느리는 오죽했을까...
철순 할아버지와 옥윤 할머니의 '인간극장'은 9월 30일(월) ~ 10월 5일(금) 오전 7시 50분 KBS 1TV [인간극장]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