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이 <7년의 밤> 이후 6년 만에 영화에 출연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사람>이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있는 집안’의 어린 자녀들이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패닉에 빠진 그 부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의사’ 장동건과 ‘변호사’ 설경구가 그 주인공이다. 장동건을 만나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나리오 보고 크게 걱정을 안했다. 이런 작품을 해보고 싶었고, 상대 배우가 설경구이고, 허진호 감독이니 마다할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Q. 10월 16일 개봉한다. 소감이 어떤지.
▶ 장동건: “많이 떨린다. 작업하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영화제를 통해 이 작품을 감상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웃음 포인트도 있었고, 공감을 하더라. 이제 한국에서, 한국 관객이, 한국어 대사를 통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뉘앙스까지 잘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Q. 대본을 받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 장동건: “설경구 배우가 먼저 캐스팅되고 내게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대본을 읽어보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이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는 작품이었고, 전형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이렇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이 신선했다. 재규라는 캐릭터를 어쩐지 잘 알 것 같았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이건 허진호 감독이 다루면 재밌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Q. 완성된 작품을 보고 만족하는지.
▶ 장동건: “촬영할 때는 어떻게 편집이 될지 모른다. 영화를 홍보를 할 때는 ‘서스펜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만 촬영할 때는 어떤 장르의 영화로 완성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음악이 들어가고, 편집이 완성되니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외국에서 만든 버전과는 달리 <보통의 가족>은 관객들을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Q. 재규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 장동건: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소아과 의사라면 어느 정도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는 그런 재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되돌아보게 되더라. 여태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 행동이나 선택들,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재규의 내면에 있는 본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있다. 자식 문제로 그것이 조금씩 드러난다. 아마도 비겁함일 것이다. 재규 안에도, 내 안에도. 그런 것을 끄집어냈다. ”
Q. 재규는 아들 문제로 마음이 180도 바뀐다.
▶ 장동건: “재규의 심리 변화를 담은 장면을 찍었다. 아들 시호(김정철)와 캐치볼 하고 나서,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에서는 편집되었지만 방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보는 장면도 있고, 병원 집무실에서 아들이랑 통화하는 장면도 있었다. 다 편집되었다. 재규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관성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 그런 선택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재규가 병원에서 혼자 밥 먹는 신에서 피해자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견해나 의견은 바뀐다. 재규는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명분이 있어 바뀐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병원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중요한 것 같다.
▶ 장동건: “그 장면 테이크를 많이 갔다. 밥을 먹다가 씨~익 웃는 장면도 찍었고, 무표정하게 밥을 먹는 표정도 지었다. 전화를 받고는 희열의 표정인 것도 같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이 재규의 심정변화를 보여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나름 바라던 상황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Q. 그런 재규는 인간의 양면성을 극명히 보여준다.
▶ 장동건: “극중 재규가 어쩌면 저와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약간의 찌질함이나 비겁함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다. 여태 내가 맡았던 역할 중에 나와 가장 비슷한 것 같다. 이전에는 연기를 하면서 외부에서 가져온 것을 붙여서 연기를 했다면, 재규는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연기한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닮아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설경구 배우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둘 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니.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답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실제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Q. 마지막에 그런 감정이 폭발한다.
▶ 장동건: “재규가 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회의 눈물을 보았다. 재규는 아이가 한 번 실수한 것이고, 그 아이는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호가 혜윤(홍예지)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될 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관철시키고 유지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이 컸다. ‘그 정도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라며. 그런데 형(설경구)의 철옹성 같은 말을 듣고는 폭발하는 것이다. 절대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감추고 싶은 것들, 체면과 명예 이런 것 때문에 그런 폭력성이 나온 것이다. 그런 폭력성은 앞에 잠시 나온다. 치매인 엄마와 있을 때도 얼핏 보이고 아들에게 손찌검하는 장면도 있었다. 자기 안에 내재된 것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 성향이 마지막에 극대화된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그처럼 튀어나온다.”
Q. 네 성인 배우의 연기가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특히 세 번의 식사 자리에서 말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어떤 식으로 펼쳤는지.
▶ 장동건: 두 사람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찍을 때는 투 샷도 찍고, 각자 모습을 찍는다. 상대가 연기를 펼칠 때는 카메라 앞에 앉아서 같이 대사를 맞춰주고, 연기를 받아준다. 대본을 보면 상대가 할 연기를 알 수 있다. 상대의 연기 톤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어려운 연기였다. 네 명이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입장, 견해, 생각, 주장이 다르니 대사가 엉킬 수가 있다. 나는 이런 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저런 톤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바꾸든지 누군가가 바꿔야한다. 조율과정에서 만들어진 앙상블 연기가 빛을 발한다. 이런 경우 모든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연기의 물꼬를 튼 것은 김희애이다. 연기할 때 같이 눈물을 흘러주니. 다른 배우들이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
Q. 허진호 감독은 한 장면의 완성을 위해 테이크를 여러 번 갔다고 하는데.
▶ 장동건: “예전에 <위험한 관계>를 찍을 때 허진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경험했었다. 다른 배우는 처음이라 첫 촬영 때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허 감독은 디렉션을 주고 연기를 요구하는 타입이 아니다. 본인 마음속에는 어떤 그림일지 결정이 되어 있겠지만 말을 안 한다. 한 번 테이크를 가서 그걸 토대로 대화가 시작된다. 배우가 연기를 하면 감독이 ‘오케이’ 하든지 ‘다시 한 번 갑시다’ 하는데, ‘이리로 와서 이야기 좀 하자’ 그런다. 그러면 배우가 ‘이게 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조율하는 것이다. 수긍하고 새로운 생각이 나온다. 물론 촬영 초반에는 더디다. 그런데 합의가 정해지면 또 쉽게 나간다. 허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고 배우들 연기의 빌드업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허 감독은 배우가 불편해하는 것을 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미리 물어본다. 배우로서는 중압감을 덜게 된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 배우들 캐스팅이 좋잖은가. 배우들 입장에서는 같이 하고 싶은 감독인 것이다.”
Q. 재규는 어떤 의사인가.
▶ 장동건: “사람에게는 한 가지가 아니라 양면적인 모습이 있다. 재규는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본인 직업에 프라이드가 있다. 그의 생각에 반하는 것이 돈만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열심이고, 사고로 중태에 빠진 아이를 살리려고 애쓴다. 그게 가면을 쓴 모습이라기보다는 자기 안에 내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식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고 본다. ‘형은 돈 버는 것이, 난 사람 살리는 것이 일이야’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다.”
Q. 보다가 웃음을 터뜨리는 부분이 있었다.
▶ 장동건: “웃기기 위한 코믹한 신은 아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가 있다. 상황에 대한 공감, 아이러니에서 오는 웃음 같은 것이다. 서로의 기운을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Q. 허진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당황할 수도 있었다면 12년 전 <위험한 관계>때는 어땠는지. 그동안 바뀐 것이 있다면?
▶ 장동건: “<위험한 관계> 할 때 많이 당황했다. 아침에 모여 장면 이야기하는데 점심때까지 말만 시키는 것이었다. 저는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그런데 결론이 나오면 그날 분량을 다 마치긴 했다. 후반부에 가면 진도가 빨라진다. 장백지나 장쯔이 배우는 저보다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와 허진호 감독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어 작품에 참여를 한 것이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감독님의 방식으로 진행한 점이 있다. 지금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한다. 훨씬 많이 계산하고, 미리 결정을 해서 오는 것 같다. 그게 타협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감독의 주요 역량 중 하나이다. 그때는 그때의 장점이 있었다면 지금은 지금의 방식이 있다. 진화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디렉팅한다.”
Q. 대중들은 장동건 배우하면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린다. 이번 작품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어떻게 남을까.
▶ 장동건: “지금까지 내가 찍은 작품을 보고 만족한 적은 없다. <보통의 가족>을 두 번 봤는데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렇게 해볼 걸,,’하는 부분이 있다. 낯설다. <창궐> 때 분장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엔 자연인 장동건의 모습 같았다. 내 모습을 보고 처음엔 놀랐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이 들었나?‘ 내가 생각한 모습과 달랐다. 김희애 선배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렇구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연기를 하였구나.‘ 새로운 시선으로 내 연기를 보았다. 다행히 시사회 반응이 좋다.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인생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오랜만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감사한 입장이다.”
Q. ‘아버지’ 장동건에 대해.
▶ 장동건: “아이들을 키우면 좋은 것만 가르치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은 똑같겠지만 그게 뜻대로 안 된다. 두 아이(중2아들, 초4딸) 아빠인데 제가 자랄 때와는 다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던 아버지로서의 근엄함, 권위는 사라졌다. 오히려 좋은 것 같다. 아들은 아직 사춘기 접어든 것 같지는 않고 친구 같다. 딸아이는 개그 코드가 있어 농담도 잘 받는다. 내가 어릴 때 생각한 아버지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이 좋다.”
Q. 작품을 대할 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 장동건: “원래 다작은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백기가 더 길었던 것 같다. <아라문의 검> 찍었었고. 촬영을 끝낸 게 있다. <열대야>라고 5월에 태국에서 촬영을 마쳤다. <보통의 가족>을 찍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생겼기에 그런 자신감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예전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찍은 것 가다. 재밌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이날 장동건은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다. 작품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몇 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이해를 부탁했다.
장동건-김희애, 설경구-수현 부부가 아들, 딸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영화 <보통의 가족>은 10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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