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설경구는 수완 좋은 변호사이고, 동생 장동건은 휴머니스트 의사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이 형제의 자식들이 사고를 친다. 노숙자를 폭행해서 생명이 위태롭다. cctv에 영상이 남았다. 이제, 사회적 책임감을 가졌던 부모들은 ‘자식의 문제’로 도덕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허진호 감독이 세밀하게 관찰한 <보통의 가족>에서 변호사를 연기를 설경구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허진호 감독과는 처음 함께 하는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설경구: “그러게 말이다. 같이 작품 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박하사탕> 때였던가 홍보를 위해 일본에서 갔을 때 길에서 감독님을 마주쳤다. 감독님은 <8월의 크리스마스>로 왔었다. 그날 내 방에 와서 같이 술 마시고, 3일을 한 방에서 지냈었다. 그런 인연에 비하면 작품을 늦게 한 셈이다.”
Q. 대본을 보고 바로 출연을 결심했는지.
▶설경구: “허진호 감독이 아니었다면 안 한다고 했을 것이다. 작품이 감독에 따라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섬세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기에 믿음이 있었다.”
Q.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때랑 지금 달라진 게 있는지.
▶설경구: “이 작품을 작년 토론토영화제에서 처음 볼 때는 조마조마했었다. 제 작품은 볼 때는 항상 그렇다. 지루한 장면일 경우 본인이 등장하면 더 길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에게 ‘저 장면 좀 잘라 달라’고도 했다. 감독님이 그동안 영화제 다니면서 많이 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뀐 모양이다. 느낌으로는 5~6분 정도 편집이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덜 조마조마하더라. 기자시사회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들 반응 살펴보게 되니까. 어디서 한숨 나오지 않을까 해서. 몇 장면이 줄어든 것 간다. 장동건이 아들과 캐치볼 하는 신도. 원래는 6번 정도 던진 것 같은데 어제 보니 좀 줄었더라. 토론토에서 볼 때 속으로 ‘그만 좀 던져.’ 그랬었다.”
Q. 양재완 변호사는 굉장히 냉철한 변호사이다. 어떤 연유로 스탠스가 바뀌었을까.
▶설경구: “두 번째 식사 자리였나? 법정까지 가지 말고 자수해야한다고 말한다. 계속 수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마 형량을 따려봤을 것이다. 후배검사에게도 물어봤을 것 같다. 재완의 심경의 변화라기보다는 나름 조금 일관성이 있지 않았을까. 자기 편한 방향으로. 그런데 혜윤과 시호가 아기 방에서 폰으로 cctv 영상 보는 장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쳤을 것 같다. 저런 모습으로 성장한다면? 저건 아니다 싶었을 것이다.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Q.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서도 학폭가해자 아들의 아버지이자 변호사를 연기하며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설경구: “제3자의 입장이라면 선택은 쉬울 것이다. 자수를 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나의 일이라면 바로 자수를 시킬 수 있을까.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내가 연기를 했지만 실제 부모의 입장, 마음이라면 명쾌한 답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보통의 가족’의 부모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볼 것이다. ‘아무도 모르잖아. 우리밖에 모를 것이야’하면서.”
Q.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부모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설경구 배우의 ‘부모의 입장’이라면.
▶설경구: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한 가지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부모의 책임이라..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잖은가. 아이가 ‘아빠 같은 의사가 되겠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폭력성을 보인 아이가. 그 이야기할 때 무섭더라. 그런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선 꾸준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Q. 재완의 첫 등장 신은 사냥터에서 총 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 성격이 있었을까.
▶설경구: “사격이 취미일 수도 있겠지만. 멧돼지를 보고 한 방 쏜다.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깔끔한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성격이 깔려 있지 않을까. 물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도와주려는 것도 있을 것이다.”
Q. 설경구 부부와 장동건 부부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세 번 있다.
▶설경구: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꽤 길었다. 커트가 꽤 많았다. 호흡이 길었고. 전화 왔을 때, 대사를 받아칠 때. 컷이 나뉘니까. 네 사람이 해야 하니 같은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했다. 네 사람 중 수현씨가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워낙 팽팽하게 대사를 나누고 있으니 치고 들어올 틈이 없다.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기회를 노려야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물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다들 초집중해야한다. 하루 종일.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계속 신선한 텐션을 주기는 힘들다. 계속 반복해야하니. 그 안에서 미묘한 것을 만들어야하니. 김희애 배우가 눈물이 나와야하는데 안 나오더라고 말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 워낙 계속 하다 보니 막상 나와야할 땐 안 나오고. 잘 집중해서 찍어야했다.”
Q. 장동건 배우외의 연기 호흡을 어땠는지.
▶설경구: “모니터 할 때 보니 장동건의 얼굴이 배역과 잘 어울리더라. 그늘도 있어 보이고. 재밌게 맞춰한 것 같다.”
Q. 허진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떤가.
▶설경구: “허감독은 준비를 꼼꼼히 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프리프로덕션을 오래한다. <봄날은 한다>에서 이영애 배우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었다. 이번에 4명이나 되니. 극중에 재완이 피해노숙자의 가족 집을 찾아가 돈 봉투를 창틈으로 밀어 넣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 날 밤이다. 그 장면 여러 번 찍었는데 감독님이 ‘장갑하나 줄까?’하며 허허허 웃더라. 농담하는 줄 알았다. ‘한 번 해볼까요?’ ‘나쁘지 않은데..’ 하더라. 그 어두운 골목에서 허둥지둥 벗어나는 장면에서 재완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야했다. 감독님이 의견을 툭툭 던진다. ‘이건 어떨까?’식으로.”
Q. 그 장면에서 어른들이 반성하는 모습이 들어갔는가.
▶설경구: “돈봉투를 몰래 전해주려고 한 것이 반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졸렬해 보인다. 그런 식으로 마음의 부채를 조금이라도 탕감시켜보려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을 선택한 것도 그렇다. cctv가 있을 것 같아 우산이 필요하고. 봉투를 밀어 넣다가 눈이 마주치는 게 너무나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철저한 계산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을 찾아가는 장면도 마치 범인이 현장에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Q. 재완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았는지.
▶설경구: “감독이 그냥 맡긴 것이다. 저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다. 예전에는 물어보고 그랬다. 이제는 그런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양재규 역이 주어졌다면?) “감독님이 나에게 재완을 맡겨 중심을 잡으려고 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 캐릭터 준 모양이다.”(하하하)
Q. 김희애 배우와는 최근 세 편을 함께 작업했다.
▶설경구: “<더 문>때는 서로 얼굴도 못 봤다. 벽을 쳐다보고 전화를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가족>을 찍었고, 이어 넷플릭스의 <돌풍>을 함께 했다. ‘보통의 가족’을 안했으면 ‘돌풍’도 못 했을 것 같다. 김희애 배우가 <돌풍>에 저를 추천해 준 것이다.”
Q. 김희애 배우와 연기를 한 소감은.
▶설경구: “깐깐한 배우인 줄 알았는데 털털하고 허술한 면이 보여 의외였다. 그게 매력이다. 김희애 배우는 정말 열심히 연기한다. 메인으로 40년 이상 연기를 해온다는 게 쉽지 않다. 한 번은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는데 김희애 씨가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더라. 그런데 그 앞에 카메라 장비가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뭐야?’하고 봤더니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그 짠밥이면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열심이더라.” (이야기는 많이 나눴는지?) “둘 다 샤이한 사람이라 그러진 못했다.”
Q. 아내로 나온 수현의 연기는.
▶설경구: “수현과 저랑은 안 어울리는데, 그런 언밸런스한 게 외적으로 잘 나온 모양이다. 부조리한 연기라고 감독님이 이야기하시더라. 식사 장면에서 보면 긴장감이 넘친다. 클로즈업 할 때는 정말 가족 같아 보이지마 풀 샷으로 보면 다들 말에 가시가 있다. 특히 ‘언니라 하지 말고 동서’라고 부르라고 하는 장면은 보면서 불안불안하고 재밌었다.”
Q. 라스트신은 충격적이다. 동생의 그런 면을 몰랐는가?
▶설경구: “동생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다른 버전도 충격적이다. 토론토에서 관객들이 다 놀라더라. 끝까지, 정점까지 치달은 것이라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완은 그럴 것이라고 전혀 못했을 것이다. 앞에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Q. 딸 혜윤을 연기한 홍예지 배우는?
▶설경구: ”촬영하면서 친해지지는 못했다. 부모 4명이 친해지느라. 아다 그래서 딸이 그렇게 된 모양이다. 촬영이 끝날 때 즈음 슬슬 이야기를 했다. 여기 나오는 애들이 무섭다. 어떤 액션보다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빌런도 어찌할 수 없는 빌런이었다.“
Q. 개봉 후 어떤 반응이 기대되는지.
▶설경구: ”일회성으로 안 끝났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함께 꼭 봤으면. 영화제에서 외국관객들도 자녀랑 꼭 봐야겠다고 하더라. 어떤 자식교육보다 좋을 것이다. 훨씬 느끼는 것이 많다.“
Q.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설경구: ”요즘 작품이 없다. 굳이 작품을 고른다면 감독님이 중요하고, 책(대본)이 재밌어야한다. <보통의 가족>은 애매하게 책이 왔었다. 그런데 감독이 허진호라서 믿음이 컸다. 이 작품은 자칫하면 꽤난 시끄럽기만 한 작품이 된다. 캐릭터의 감정이 과잉되어 시끄럽고, 말이 잘 안 들리는. 이른바 ‘구강액션’이라고 소음으로 들릴 수 있고 집중이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연출일 것이다. 허진호 감독은 미세한 호흡이라도 잡아주는 섬세함이 있다. 충분히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오래 전 허진호 감독을 만나 ‘멜로’를 같이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설경구 배우는 “이렇게 센 걸 주시네요. 그래도 믿음이 있으니, 아무거나 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거듭 밝힌다.
차기작(디즈니+ ‘하이퍼나이프’)에 대해 물어보앗다. “찍기는 다 찍었다. 어제 쫑파티 했다.” (내용은?) “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멘트를 준비 못 했네요.” 답변에서 40년 가까운 연기자의 연륜이 묻어난다.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과 홍예지, 김정철이 열연을 펼치는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10월 16일 개봉한다.
[사진=(주)하이브미디어코프, ㈜마인드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