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바다 위의 첨단 연구소로 불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6천 톤급 연구선 '탐해 3호'가 제주 탑동 앞바다에 나타났다. 세계 해저 자원 탐사를 위해 1,800억 원을 들여 만든 최첨단 선박. 서해 지질 과학 조사를 위해 부산에서 첫 닻을 올린 '탐해 3호'가 왜 제주에 온 걸까. 바닷속으로 들어가 봤더니 선박을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폐어구. 3톤이 넘는 엄청난 양의 그물과 밧줄이 동력 장치인 스크루를 칭칭 감싸고 있었다. 서해 경계선에서 탐사를 준비하다가 폐어구에 걸려 12시간가량 제주로 이동해 제거 작업을 벌인 것이었다. 4m 높이의 파도에도 안정적으로 탐사가 가능한 최첨단 선박도 바닷속 죽음의 덫을 피할 수 없었다.
어민들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진 지도 오래다. "비양도 서쪽에서 어장을 놓다가 스크루 걸려서 예인해 왔거든요. 1,000만 원 정도 손해를 봅니다. 조업도 못 하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 하면. 예인비는 제주도에서 지원해 주는데 그 이외에 또 수고비를 줘야 하고 잠수부도 불러야 하고." 제주시 한림항에서 배를 몰고 있는 어민 정태유 씨도 여러 차례 부유물 감김 사고로 고초를 겪었다. 정 씨는 '특히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사고가 나면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주 해상에서 발생한 부유물 감김 사고는 370여 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다른 어선의 도움으로 구조돼 보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어구 4개 중 하나는 '죽음의 덫'으로…연간 4,000억 원 피해
지난해 해양수산부의 어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조업하는 연근해 주요 어선의 연간 어구 사용량은 16만 9,000여 톤에 이른다. 유실률은 24.8%. 바다에서 쓰는 어구 4개 중 하나는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정부는 버려진 어구에 해양생물이 걸려 죽는, 이른바 유령어업으로 해마다 4,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안은 없을까. 취재진은 세계 최대 수산물 수출 강국 노르웨이로 향한다.
노르웨이는 어민이 어구를 잃어버리면 신고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민이 직접 수거해야 하지만, 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어구를,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등을 세세하게 신고해야 한다. 가까운 바다에서 잃어버린 어구는 해안경비대나 봉사자들에 의해 수거되고, 먼바다는 처리 전문 선박을 띄워 수거한다. 북유럽에서 처음으로 유실 어구를 수거해 온 노르웨이는 1980년대부터 40년 넘게 2만 6천여 개가 넘는 어구를 수거해왔다.
어디에 어떤 어구가 버려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난 십 년간 수천억 원의 예산이 쓰였지만 여전히 폐어구로 고통받고 있는 대한민국 바다. 제작진은 중국 어선이 설치한 불법 어구 수거 현장과 해상 안전을 위협하는 부유물 감김 사고, 양식 어구 문제 등 죽음의 덫이 도사린 바닷속 실태를 들춰보고 대안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