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배우 손현주와 김명민이 드라마 '유어 아너'를 통해 ‘명품연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손현주는 지난달 12일 첫 방송된 지니TV/ENA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판사 송판호를 연기한다. 어느 날 아들이 뺑소니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피해자는 절대 악인 김강헌(김명민 분)의 아들이었다. 이제 판사의 권능으로, 복수에 나서는 김강헌과 처절한 대결을 펼친다. 파멸을 향해! 손현주 배우는 <유어 아너>를 한창 촬영하던 지난 6월, 형제상을 당했다. 인터뷰 도중 형에 대한 애달픈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체 10부작 중 8부까지 방송된 상태에서,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손현주 배우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연기본좌' 손현주, 김명민 배우가 만났다.
▶손현주: “김명민 배우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이전부터 꼭 만나고 싶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 인지도가 없었다. 앞으로 제가 이순신, 김명민이 원균을 맡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김명민은 친구처럼, 동료 같은 배우이다. 소중한 인연이 한명 더 늘었다. 김명민 배우는 진중한 사람이다. 다시 한 번 더 작품에서 꼭 만나고 싶다.”
Q. <유어 아너>를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손현주: “대본, 책이 재밌었다. 표민수 감독과 미팅을 했고, 유종선 감독과의 작업도 재미가 있었다. 10년 이상 같이 일한 매니저가 저한테 ‘선배는 고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10년 쯤 전에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2012)를 할 때 고생을 많이 했었다. 영화도 그렇지만 쉬운 게 안 들어온다. 심정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본 배우가 많다. 백주희, 정애연 배우는 처음 만났는데 신선했다. 김명민의 딸로 나오는 그 배우(박세현)도 신선했다. 모두가 성실하게 다들 자기 역할을 했다.”
Q. 이스라엘 원작드라마가 있고, 미드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었다. 그 작품은 봤는지. 한국판의 차이가 있자면?
▶손현주: “두 작품 다 못 봤다. 매니저가 미드의 한 장면을 캡쳐 해서 보내줬는데 그게 어떤 장면인지는 모르겠지만 ‘송판호’ 역할의 배우가 거의 노숙자 차림의 허름한 모습이었다. 그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 버전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것이라서 다르다. 이걸 봐야 하는지 표민수 감독에게도 물어봤었는데 안 봐도 된다고 하더라. 다른 드라마라고. 아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때로는 아들이 밉기고 하고. 내 방식대로 연기하려고 했다.”
Q. 아들 때문에 송판호의 심리는 복잡해진다. 연기할 때 어려운 점은?
▶손현주: “김명민 배우도 그랬겠지만 심리적 표현은 많이 힘들다. 세트가 연천에 있었는데. 촬영할 때 집에 잘 안 들어갔다. 숙소에서 제 나름대로 정리할 게 있었다. 스케줄에 따라 촬영에 매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대본이 잘 보인다. 작품에서는 감춰야할 게 많은 인물이다. 어떻게 숨겨야 잘 숨기는 것일까. 연천 세트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을 많이 찍었다.”
“그날, 6월 18일에도 연천에 있었다. 형이 이렇게 (인터뷰 취재현장)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지병도 없었던 형인데 말이다. 발인 끝내고 바로 세트에 돌아와야 했다. 일정을 끝내야하니. 요즘 들어 형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작품 잘 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90년대 초, 대학로에서 연극하다가 방송 쪽에 들어올 때부터 형은 저의 팬이었다. 이 방송 끝나면 형한테 가볼 생각이다. 어떻게 잘 봤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라가면 또 같이 사진 찍을 것이다.”
** 손현주 배우의 형 손흥주는 씨네21에서 오랫동안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었다. 지난 6월 18일 향년 61세로 사망했다 **
Q. 송판호가 김강헌(김명민)에게 처음 끌려가는 장면에서는 진심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 같다.
▶손현주: “실제로 그런 촬영에 들어가면 무섭다. 진짜로 죽을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든다. 배우라면 연기에 멋을 내거나 표현을 고급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장에 가면, 세트에 있으면 그런 무서운 생각이 절로 든다. 무섭지만 견뎌보자고, 두렵지만 해보자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다. 그 때 ‘티랍’을 죽이면 안 되었다. 가지 말아야할 길,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해서 일이 그렇게 커진 것이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명민이 들어오는 장면에서 대단히 무서웠다. 시나리오에는 손에 권총을 들고 덜덜 뜬다고 나와 있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티랍을 쏘아 죽일 것인가? 아들 호영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영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방아쇠를 당긴다. 두려우면 두려워하고, 무서우며 무서워하고, 나가기 싫지만 개처럼 끌려 나가고, 그렇게 판사석에 앉아있는 것이다. 범죄자인 나를 숨겨야하는 복잡미묘한 심정이다.”
Q. 송판호의 눈이 유달리 충혈되어 있다.
▶손현주: “언젠가부터 연기를 할 때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한다.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되도록. 그러다보니 충혈 되고 눈이 아프다. 복잡한 감정 같다. 눈이 빨개진다. 울고 싶은 신에서는 울고 싶다. 이럴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 연기적인 호흡이 필요하다. 배우에게는 호흡이 없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저도 제 눈이 맑았으면 좋겠다.”
Q. 손현주 배우는 초창기에는 소시민 이미지가 많았는데, 이제는 권력자도 자연스레 연기한다.
▶손현주: “내가 유쾌하게 나온 드라마에서는 눈이 맑다.(하하) 언제부터인가 무거운 작품을 하게 되었다. <추적자> 이후인 것 같다. 이전엔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다. ‘저, 2집 가수입니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소시민 역할이 많았던 것 같다. 커피자판기 관리하는 사람, 직업이 거의 없는 사람, 처갓집에 얹혀살면서 정신 못 차리는 사람. 그런 역을 맡으면 마음이 많이 풀어진다. 다시 그런 편한 것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요즘 세대는 제가 코미디한 것을 모를 수도 있다. 다시 코미디하고 싶다. 요즘 많이 힘들잖아요. 저 나름대로 웃음을 드리고 싶다.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을 했지만 도망 다녀야했다. <트레이서>에서는 심리적으로 몰리다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작년엔 <세작>하면서 유배도 갔었다. 영화 <숨바꼭질>에서 문정희 씨가 그렇게 잘 달릴 줄 몰랐다. 이번 추석에 EBS에서 그 영화 방송된다더라. 내겐 편한 역을 주지 않는 것 같다.”
Q. 아들로 출연한 김도훈과의 연기는 어땠는지.
▶손현주: “처음엔 도훈과 대화를 별로 안 했다. 4~5회 대본을 봤을 땐 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더라. 메소드 연기는 아니지만. 보통 아버지와 아들이 얘기를 많이 나누지 않는다. 그냥 한국인의 속정이 있었을 것이다. 7~8회쯤 가서 도훈을 진심으로 안아준 적이 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뜨거움이 왔고 그 친구도 그런 뜨거움이 받았다. 김도훈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현장에서 밝다. 그러다 촬영에 들어가면 달라진다. 가끔 당황스럽다. 저 친구가 나한테 소리 지르지 않을 거 같은데 소리도 지른다. 난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편이다.”
Q. 송판호는 아들 송호영의 잘못을 덮기 위해 죽을 고생을 다한다. 이런 부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손현주: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자수할 것이다. 자수해서 일을 쉽게 풀어야한다. 잘못된 길을 가서 몸이 그렇게 고생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엔 4회에서 티랍이 아니라 김강헌을 쐈더라면 편했을 것 같다. 그때 그랬다면 4부작으로 끝날 수 있었을 텐데. 잘못된 부성애로 그렇게 가서는 안 되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또 열심히 하겠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드라마이다. 해결책은 걷는 것 밖에 없다. 산에 가거나. 머리를 편하게 해서, 송판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지워야겠죠.”
Q. 제작발표회 때는 표민수 피디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한다고 했는데, 공동연출로 나온다. 역할 분담은 어떤 식이었는지.
▶손현주: “1부에서 4부까지는 유종선 감독이 다 찍었고, 뒤에는 둘이 같이 찍었다. 굳이 퍼센티지를 나누자면 ‘7:3’이나 ‘6;4’ 정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이 찍을 때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두 사람은 결이 많이 다르다. 같이 움직이는 촬영감독의 결도 다르다. 그 결을 맞춰 가는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유종선 감독은 놓치고 싶지 않은 패기가 있었다. 시즌2가 되면 달라지겠죠.”
Q. 시즌2가 정말 나올까. 결말이 어떤 식인가.
▶손현주: “결말은 열려 있다. 보시면서 ‘결말이 왜 이래?’. 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결말에 선악은 없다. 아마 진행형으로 끝날 것 같다. 송판호는 이제 판사 직은 못할 것이다. 강소연 검사(정은채)는 끝까지 김강헌을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시즌2를 한다면, 이제는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건 김재환 작가에게 할 말 같다. 송판호와 김강헌이 이 사회에 어떤 반성을 할 것인가. 그런데 시즌2는 제가 말씀 드릴 사항은 아닌 것 같다. 나오기 쉽지 않다. 만약 진행이 된다면 저도, 김명민 배우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배우들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요즘은 다 맞춰요. 욕심 안 부리면. 개런티도 낮출 수 있어요.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손현주가 출연하는 드라마 '유어 아너'는 10일(화) 10화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사진] 스튜디오 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