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하면 떠오르는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하지만 트레킹 좀 다녀 본 사람이 꿈꾸는 성지는 바로 여기, 무스탕이다. 척박한 땅을 황금빛 보리로 물들인 탕게, 고대 무스탕의 역사를 간직한 로(Lo) 왕국의 수도 로만탕, 전통 결혼식부터 야르퉁(Yartung) 축제를 만날 수 있는 차랑, 무채색 황무지 속 붉게 타오르는 절벽이 있는 닥마르, 그리고 흥겨운 무스탕의 여름 축제 속으로 가미를 간다. 한해 오직 1,000명만 발을 들일 수 있는 금단의 땅 ‘무스탕’으로 여행 크리에이터 김웅진과 함께 떠나본다.
1부. 무스탕으로 가는 길 – 9월 2일 (월)
600여 년 동안 네팔 중북부 고원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오지 중에 오지 무스탕! 신비의 땅으로 향하는 길은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포카라(Pokhara)에서 어퍼 무스탕의 관문, 카크베니(Kagbeni)로 가는 길,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도로에 바위가 떨어져 차가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큐레이터와 장정 여럿이 힘을 모아 바위와 씨름한다. 고생 끝에 장장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크베니(Kagbeni). 칼리간다키강(Kali Gandaki river)과 종강(Jhong river)의 합류 지점으로 이곳을 기준으로 북쪽이 어퍼(Upper) 무스탕, 남쪽이 로어(Lower) 무스탕으로 나뉜다.
어퍼 무스탕은 한해 1,000명으로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어퍼 무스탕 트레킹 코스는 보통 서쪽에서 시작해 로만탕(Lo Manthang)을 경유해 동쪽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탕게(Tange)에서 보리 수확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어퍼 무스탕을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는 탕게로 가기 위해서는 칼리간다키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 강폭이 가장 좁은 차랑(Charang)으로 향한다. 우기를 맞아 불어난 물 때문에 차로는 건널 수 없는 상황, 마을에서 트랙터를 빌린다. 트랙터를 타고 다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탕게(Tange). 며칠 전 수확한 보리를 널어둔 마을은 온통 황금빛이다. 이른 아침부터 도리깨질부터 키질까지 농사일로 분주한 주민들의 일손을 돕는다. 고단하지만 넉넉한 여유가 넘치는 주민들. 농사일 끝에 맛보는 전통주, 창(Chhaang)은 그야말로 꿀맛! 짧은 시간 깊은 정을 나눈 탕게를 떠나 다음 목적지로 걸음을 옮긴다. 두 발로 만나는 무스탕, 앞으로 이 길에서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2부. 마지막 왕국, 로만탕 – 9월 3일 (화)
보리 수확의 기쁨을 함께한 탕게(Tange)를 떠나 디(Dhi)로 향하는 길. 마을을 떠나자마자 초목 하나 없는 황량하고 척박한 무스탕의 진면목을 마주한다. 짐을 옮기는 말도 멈추어 숨을 고르는 비탈길. 광야를 떠오르게 하는 적막한 땅을 장장 다섯 시간 동안 걸어 기착지에 도착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떠나는 길. 주변은 절벽으로 꼭대기는 평지로 이루어져 이른바 ‘활주로 평원’이라 부르는 지형을 찾는다.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절벽 위를 걸어 마침내 디(Dhi)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 들어서자 떠들썩한 잔치 소리가 들려온다. 평생 한 번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무스탕 사람들. 그곳에서 환갑을 맞은 할아버님께 감사와 행복을 축원하는 흰색 천, 카다(Khada)를 걸어드리며 잔치를 함께한다.
이제 야크 방목지로 유명한 춤중(Chumjung)으로 이동한다. 해발 4,170m에 위치한 춤중 마을은 야크 방목지로 유명하다. 야크는 고산 지대 무스탕 사람들에겐 가장 소중한 가축 중 하나. 야크의 젖, 고기, 가죽, 털, 심지어 똥까지 활용한다. 야크와 함께하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무스탕 사람들이 아침에 주로 먹는다는 바(Ba)와 버터차(Butter Tea)를 함께 한다. 춤중 근처에 고향 집이 있다는 가이드 소남 씨의 말에 길을 나선다. 11년 만에 고향 남도(Nyamdo)를 찾은 그와 함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네팔식 수제비, 텐툭(Thenthuk) 한 그릇을 먹으며 고향의 정을 느낀다. 몸과 마음의 온기를 채워준 남도를 떠나 은둔의 왕국, 로만탕(Lo Manthang)으로 향한다. 로만탕은 티베트 왕족의 후손 아메 팔(Ame pal)왕이 14세기에 세운 로 왕국의 수도로 6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2008년 군주제가 폐지되며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주민들에겐 상징적인 존재로 여전히 존경받고 있다. 27대손이 운영하는 로얄 무스탕 리조트(Royal Mustang Resort)을 찾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로 왕국의 이야기를 듣는다.
3부. 무스탕 사람들 – 9월 4일 (수)
무스탕의 옛 왕조, 로(Lo) 왕국의 600년 역사를 간직한 땅, 로만탕(Lo Manthang). 무스탕에서 손에 꼽히는 큰 마을인 만큼 이곳에는 다른 마을에는 없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티베트 의사, 암치(Amchi)다. 릭센왕걀 씨는 로만탕에서 4대째 암치 일을 이어오고 있다. 아픈 이가 있으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가는 것이 암치의 일상. 이웃 마을 팅가르(Thinggar)에서 온 연락에 왕진을 나가는 암치를 따라가 본다. 환자를 만나자 맥을 짚고 혀를 살핀다. 아픈 곳을 묻고 이에 맞는 약을 건네는 암치. 병원이 없는 마을이 많은 무스탕에선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어퍼 무스탕의 반환점인 로만탕을 나와 차랑(Charang)으로 향한다. 마을은 결혼식 준비로 분주하다. 결혼 의식은 신랑, 신부에 대한 라마(Lama)의 기도로 시작된다. 초를 밝히고 반지를 주고받은 신랑, 신부는 하객들과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한다. 귀한 야크 고기를 담긴 음식을 먹고, 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부르는 노래와 춤을 함께 즐긴다. 다음 날 아침, 무스탕의 대표 여름 축제인 야르퉁 축제(Yartung Horse Festival)에 참가하는 마을 주민을 따라간다. 3일간 이어지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말을 타고 달리며 똘마(Torma)를 맞추는 것! 말 모양 반죽, 야크 뼈, 빵 등 다양한 표적이 등장한다. 기수가 던지는 돌에 하나둘 깨지는 표적을 보며 함께 환호한다.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말에 가르곰파(Ghar Gompa)로 향한다. 불경을 읊는 소리와 악기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를 밝히고 카다를 바치며 나쁜 기운을 씻고 신의 가호를 비는 무스탕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이들의 삶을 지탱해 준 종교의 힘을 만난다.
4부. 무스탕의 여름 나기 – 9월 5일 (목)
결혼식부터 여름 말 축제, 야르퉁 축제를 즐긴 차랑(Charang)을 떠나 닥마르(Dhakmar)로 트레킹을 떠난다. 걸음마다 달라지는 무스탕의 절경을 감상하며 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부터 붉은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다. 닥마르(Dhakmar)다. 붉은 벽을 의미하는 마을의 이름처럼 타오르는 듯한 붉은 절벽은 가히 압도적이다. 절벽 가까이 다가가면 정확한 형성 시기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굴 안에 앉아 한눈에 들어오는 무스탕의 전경을 감상하며 동굴 안에서의 삶과 수행을 했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다음 날, 풀을 찾아 떠나는 염소 떼와 목동을 따라간다. 초지에 도착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들. 먼발치에서 늑대가 출연해 긴장감이 감돌지만, 노련한 목동의 돌팔매질로 위기를 벗어난다.
닥마르(Dhakmar)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가미(Ghami)로 향한다. 수확을 앞두고 지나는 여름을 즐기는 주민들. 줄다리기와 공놀이를 함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가 명상을 했다고 알려져 무스탕의 성지로 손꼽히는 충시곰파(Chungsi Gompa). 근처에 신성한 의미가 있다는 약수터에 들러 물을 맛본다. 그리고 곰파를 찾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종유석 불상과 무스탕 이들의 불심을 마주한다. 충시곰파에서 내려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무스탕의 절경.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 오아시스처럼 푸른 사마르(Samar)를 만난다. 나무를 만나기 어려운 어퍼 무스탕에서 드물게 나무가 많은 마을이다. 대부분 향불을 만들 때 쓰는 향나무라고 한다. 말려둔 향나무 잎으로 만든 향불을 피우며, 거칠고 황량한 땅에서 다채로운 색을 더하며 살아가는 무스탕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