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여타의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스토리 전개방식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2000년 한적한 시골의 허름한 모텔을 인수한 윤계상은 비오는 날 찾아온 연쇄살인마 때문에 삶이 망가진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으로 내려온 김윤석은 펜션을 운영하는데 미치광이 여자 고민시가 투숙하면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게 된다. 이곳 파출소의 윤보민(하윤경/이정은)은 두 사건을 유심히 관찰한다.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KBS 피디 출신의 모완일 감독은 JTBC [부부의 세계]로 대박을 쳤고, 이번에 넷플릭스 작품으로 또 한번 연출역량을 과시했다. 모완일 감독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공개 뒤 반응은 어땠는지. 솔직한 심정은.
▶모완일 감독: “많이 떨린다. TV드라마는 시청률표가 딱 나오는데 이건 어느 정도가 잘 된 것인지 모르겠다. 속물적인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만들면서 애정이 컸던 작품이다. 과정 하나하나가 마음에 든다. 그 좋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어떻게 다 모을 수가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선물 같은 작품이다.”
Q. 신인작가(손호영)의 극본이다. 어떻게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모완일 감독: “생각해보면 신기한 케이스이다. 공모전 우수작이다. 작가는 이게 방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한 번도 시리즈물을 써본 적이 없었다. 정통적 관습으로 쓴 게 아니라서, 방송할 생각 없이 쓴 것이라서 이처럼 독특하게 나온 것 같다. 작가님은 작가님의 몫을 다 하신 것이고, 이제부터는 제가 많은 분들과 끝까지 가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방송된다고 했을 때 작가님은 ‘이게 된다고요?’라며 황당해 하더라.”
Q. 아마, 두 개의 사건이 두 개의 시간대에서 펼쳐지는데, 그게 마치 같은 시간대이거나, 한 인물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서 시청자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좀 더 친절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모완일 감독: “그 지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친절하게 만들었다면 딱히 매력 있는 이야기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준(윤계상)의 감정과 영하(김윤석)의 결론이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단순하게, 명확하게, 속도감 있게 만든다면 처음 진입하고 보기엔 편할 수 있겠지만 8부까지 가서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초반에 작가와 ‘이 길로 가자’고 그랬다. 사람들이 끝까지 보면 가슴에 남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Q. 대본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은.
▶모완일 감독: “제가 살면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지만, 보면서 진짜로 감정적으로 제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의 필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힘들고,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의 감정을 잘 표현한 것이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감정이 잘 표현된다면, 이걸 잘 만들면 치유도 될 수 있을 것이다.”
Q. 상준과 영하의 결론이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모완일 감독: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상준과 영하,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정한 한 사람의 개인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게 동일인이라면 걱정이 결국 한쪽에서 쓰러진 나무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둘이 다 쓰러지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려면 이런 식으로 가야한다.”
Q. 제목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영어제목(The Frog/개구리)은 어떻게 지었는지.
▶모완일 감독: “있어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영어 제목은 저와 작가가 이야기하면서 지은 것이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영어로 그대로 옮긴다면 너무 스릴러 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숲속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영어제목 ‘개구리’는 한국인들은 정서적으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 던진 돌멩이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개구리’와 관련하여 그런 느낌이 없다. 작품에서 대화로 설명된다.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단순한 한글제목 번역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다.”
Q. 후반부에 구기호의 액션과 김윤석-고민시의 대결구도는?
▶모완일 감독: “김윤석이 고민시를 몰아내려는 이야기만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물리적으로 제압한다거나, 아니면 경찰력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전영하(김윤석)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성아(고민시)는 뭔가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6부에서 보여주는 기호는 2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성장이 멈춘,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가 자신의 가족을 몰락시킨 대상을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기호의 액션은 비현실적이고 유치할 수 있지만 진심 어린 행동이다. 끝났을 때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Q. 펜션의 구조상 문이 여러 개다. 어떤 효과를 주려고 한 것인지.
▶모완일 감독: “구체적인 솔루션이 있어서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사적인 공간에 침입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계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옛날 집들의 구조는 그런 경계가 없다. 이번 펜션의 경우에는 설계 과정에서 영화적 공간으로서 장치를 많이 했다. 근본적으로 문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적인 공간이 침입자에게 망가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시청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개인의 공간은 소중하다. 상준(윤계상)의 모텔은 오래된 건물이다. 운영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꾸몄다. 그리고 모텔 근처에는 정감 있는 친구(박지환)의 슈퍼가 위치해야 한다. 상준이 자전거로 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숲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선은 그들에게 소중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야 했다.”
Q. 성아(고민시)는 그 공간을 마음대로 꾸민다. 화분을 잔뜩 들여놓고 숲처럼.
▶모완일 감독: “밀림처럼 만들고도 싶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영하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공간을 깨고 부수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내와 함께 꾸민 그 공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단순한 훼손이 아니라 변질이 되어 버린다. 그 공간 자체가 바뀌어버리면 더 데미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고민시의 연기는 굉장하다.
▶모완일 감독: “제일 열심히 하는 배우 같다. 다른 배우도 열심히 하는데 고민시 배우는 충분히 잘했는데 더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이더라. 처음엔 신인이라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본인의 원래 모습이 그랬다. 삶의 방식이 그런 모양이다. 그런 점은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실력은 자연스레 따라온 것 같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말이다.” (같은 시기에 방송된 <서진이네2>에서는 인턴으로 고생한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그야말로 금이야옥이야 귀하게 모셨는데 저기선 험하게 쓰이더라. 고민시 배우는 정말 선물 같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Q. 성아의 패션에 대해서는 어떤 포인트가 있었는지.
▶모완일 감독: “성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자로 살았다. 자신이 명품을 입고 있다는 자각을 안 하는 인물이다. 자기가 뭘 들고, 뭘 입고 있는지 모른다. 신경도 안 썼으면 했다. 명품을 걸쳤어도 절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Q. 윤계상 배우는 후반부를 위해 13킬로를 감량했다고 하는데, 감독님의 반응이 뜻밖이었다는데.
▶모완일 감독: “아주 중요한 신이다. 상준과 영하가 만나는 것은 오랜 빌드업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것이다. 그 세월을 견뎌낸 상준을 보여줘야 한다. 말도 안 되는 감량을 했더라. 사람이 저렇게 살을 뺄 수 있는가 싶었다. 실제 몸을 잡아보니 뼈만 있더라. 그런데 윤계상 배우는 골격이 좋은 분이다. 살을 그렇게 뺐는데 골격이 너무 젊어서.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가 어마어마한 감량의 고생을 한 것은 스태프들이 다 안다.”
Q. 영하가 성아에게 들려준 LP 노래는 바비 블루 브랜드(Bobby Blue Bland)의 < Ain't No Love In The Heart Of The City>이다. 성아가 손에 쥐고 있는 책은 안희연의 시집 <여름언덕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성아가 그리는 그림은 누구 것인지.
▶모완일 감독: “그 노래는 대본에 있던 것이다. 작가님이 우연히 접한 음악인데 영화와 어울리는 감성이 있었다. 영어 가사를 몰라도 듣고 있으면 묘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용했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을 택한 것은 여름에 관련된, 여름 느낌이 나는 책을 원했기 때문이다. 성아는 장문의 소설을 읽는 캐릭터는 아닐 것 같았다. 시집을 읽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단편적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희연 시인은 작가의 지인이다. 그리고 시집의 표지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시집의 내용과 영화 내용이 다이렉트하게 연결되지 않아서 좋았다. 책의 내용과 연결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림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다. 성아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작가들을 검토했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그림이나 너무 리얼한 터치의 그림은 배제했다. 최나무 작가님의 작품이 좋았다. 실제로 나무와 숲을 그리는 분이다. 그 느낌이 좋았다. 만나서 ‘이런 캐릭터가 그릴 그림’을 부탁했다. 전체 작품 중에서 같이 골랐다. 촬영현장에 오셔서 도와주셨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림에 매력이 있다.”
Q.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와 붉은 색 와인은?
▶모완일 감독: “붉은 색 때문에 살인과 연결하거나,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나 그렇게 먹고 마신다. 성아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성아는 소주를 마시고, 비빔밥을 해먹는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그 친구는 성의 없이 만들었으면 했다. 요리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토마토소스 부어서 간단하게 먹었으면 했다. 한식을 준비했으면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성아의 살아온 배경으로 봤을 땐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Q. <부부의 세계>에 이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까지. 감독 필모에서의 의미는.
▶모완일 감독: “그냥 좋은 대본 만나서 행복하다. 작품을 망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망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이번 작품 잘 하면, 다음에도 좋은 대본 오지 않을까. 항상 그런 희망을 가지고 일한다. 내가 엄청난 테크니션이 아니어서 이걸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처음에는 선뜻 하겠다고 못했다. 그래도 계속 생각이 나는 대본이었다. 내가 안하고 누군가가 해버리면, 그게 잘 되는 못 되든, 나중에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놓치면 정말 미련으로 남을 것 같았다. <미스티>와 <부부의 세계>는 이렇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결과를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Q. 다음으로 준비하는 작품이 있는가.
▶모완일 감독: “<내부자들>을 드라마로 만들려고 한다. 벌써 6년 정도 시나리오 작업하고 있다. 윤태호 원작 웹툰과 영화에서 캐릭터만 가져온다. 점점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조만간 구체적 계획이 나올 것 같다.”
"TV드라마는 제한된 시간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면 OTT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 위한 여러 옵션이 있다. 중요한 장면에서 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TV드라마는 시청자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 모완일 감독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