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1,2와 <귀공자>, 그리고 <낙원의 밤>까지. 박훈정 감독이 그리는 한국형 슈퍼히어로(!) 액션 무비의 신작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14일, 4부작이 한꺼번에 공개된 <폭군>이다. 이른바 ‘슈퍼아미’ 양성 메디컬 프로젝트인 ‘폭군’ 프로그램의 샘플을 둘러싼 국가비밀조직의 회수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는데, 차승원이 연기하는 전직 국정원 요원 임상도 그 한 축을 담당한다. 맡은 바 임무를 기어이 완수해내는 ‘괴물’같은 전직요원 임상을 연기한 차승원에게 ‘폭군’의 비밀과 ‘박훈정 감독’의 비밀프로젝트 후속작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전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말복날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이다.
Q. 원래 영화로 기획되었다가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다. 소감은?
▶차승원: “본의 아니게 디플에 가게 되었다. 시장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 변화에 따라 기회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극장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무대인사 하니까 좋더라. 극장에서 하면 그런 나름의 맛이 있긴 하다. 이건 영화로 시작된 것이다. 다 찍고 나서, 시리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게 4부작 드라마로 충분할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실 것이다.”
Q. 영화로 만든 것을 4부작으로 나눈 것에 대해, 이야기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보는지. 초반부 전개가 느리다는 반응도 있다.
▶차승원: “시나리오에는 서사가 있다. 전반부에 설명해야할 게 있다. 내가 맡은 임상은 드라마 시작해서 일이 터지고 나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배우입장에서도 느리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 하지만 설명해야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리즈로 공개한 것에 대해선 디즈니도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Q. 임상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독특한 해결사이다. 때로는 웃음, 또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차승원: “그런 게 모두 의도한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텐션이 아주 높다. 모두가 시리어스하다. 임상은 그런 인물들 가운데 쉼표 역할을 한다. 폴(김강우)이 임상을 두고 ‘괴물 아저씨’라고 한다. 그 괴물아저씨를 어떻게 괴물스럽게 표현해야할까. 차별점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마 일을 의뢰받으면 콤마 없이(쉬지 않고) 바로 해결하려는 민첩성이 있을 것이다. 대신 일상생활에서는 조금 주눅 든 스타일이다. 한 풀 꺾인 채로 밸런스를 유지한다. 그런 게 좋았다. 임상 캐릭터로 공을 들인 부분은 기차 카페 신이다. 원래는 더 잔인하게 찍었다. 수위가 높다. 그 장면 보면 뒤에 고문에 쓰이는 도구가 많다. 그걸 다 사용한다. 그러면서 ‘좀 쉬었다하자’면서 물도 주고 그런다. 이런 것들을 보면 ‘저거 뭐야?’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보면 고등학생들에게 끌려가는 장면도 있다. 어떻게 될까. 바로 전 장면에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데 말이다. 그런 밸런스가 있다.”
Q. 그런 잔인한 임상이 항상 존댓말을 쓴다.
▶차승원: “존댓말은 시나리오에도 나와 있다. 그것보다 더 극존칭을 사용하려고 했다. 상사에게 이야기할 때처럼. 심지어는 고등학생에게 말할 때도 그런다. ‘고려해보시죠.’, ‘기분 나쁘면 안 되시는데..’처럼. ‘마음에서부터 하죠’,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시라니까’식으로. 애드립을 넣기도 했다.”
Q. 해결사, 킬러에게 왜 그런 말투가 배었을까. 최국장과의 관계는?
▶차승원: “공무원 생활을 오래해서 그럴 것이다. 최국장(김선호)보다는 10년 정도 선배일 것이다. 최국장이 들어왔을 때 이미 전설적인 요원이었다. 김선호가 (조직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친구는 이 비밀조직을 떠안고 가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극중에서 최국장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후배라고 해서 ‘야!’이러는 사람은 아니다. 아마 둘은 그런 관계일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임상은 가족도 없다. 하지만 임무 수행능력이나 기밀유지 수준은 최고이다. 그런 임상에게 일이 생기면 떠안고 갈 사람이 최국장이라고 본 것이다. 자신보다 최국장이 더 국가와 민족을 위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Q. 안경 쓴 모습, 폴더폰 사용 등은 또 다른 차승원 스타일을 보여준다.
▶차승원: “안경을 한번 써보자고 했다. 저도 노안이라서 집에 돋보기가 예닐곱 개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도구가 임상을 말해주는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총, 안경, 바바리코트 등. 한창 잘 나가던 때의 임상의 모습인데, 그것이 고스란히 묻어난 소품이라고 본다. 참,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타는 차는 국산차량인 줄 알았는데 재규어더라. 풍운아 같은 인물이다. 80년대 할리우드 영화 보면 그런 인물 있다. 자기 일을 다 하고 앤티크한 물품에 빠져 사는. 임상도 그렇다. 은퇴한 뒤 기차 카페를 열고 경양식 레스토랑이라도 하려는 인물이다. 보면 기차도 한 량(輛)이다. 허허벌판에 있다. 그것도 그에 대한 메타포가 아닐까. 질주하던 임상이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한 것이다.”
Q. 박훈정 감독의 마녀세계관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까지 이야기가 확장되는가.
▶차승원: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임상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강물 속으로 빠져든다. 죽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확 빨려가며 끝난다. 뭔가가 낚아채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최국장은?) “최국장은 죽은 게 확실하다.”
** 이날 차승원 배우는 박훈정 아디이어에 대한 많은 생각을 밝혔다. 입이 무거운 ‘임상’ 같지 않게 말이다. 확실히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다. **
Q. 임상 캐릭터는 사이코패스 같기도 하다.
▶차승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 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보이길 원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인물로 비치길 원했다. ‘이 사람은 뭐지?’하는 마음이 들게. 폐쇄적인 조직에 오래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쇼생크탈출>처럼 몇 십 년을 한정된 공간에 있다가 모범수처럼 세상에 탁 나오니 ‘어?’하는 그런 사람 느낌이 들도록.”
Q. 경마장 신에서 요구르트를 다섯 개 빨대로 마시는 장면은?
▶차승원: “감독님 그렇게 시켰다. ‘다섯 개 꽂아 드세요. 임상은 그럴 것 같으니까요’라고 했다. 임상은 그렇게 마시면서 상대만 쳐다보고 있다. 이 먹는 모습도 중의적이다. 아마 먹는 행위가 더 무서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상대마저 먹어치울 것처럼. 그런 걸 의도한 것 아닐까.”
Q. 그래서 임상은 능글맞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차승원의 연기가 다 그런 것 같다.
▶차승원: “위트라고 본다. 어떤 장르에서, 어떤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위트는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 인물을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극중에서 어떤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어도 관객이 볼 때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웃음기를 완전히 빼더라도 보는 사람이 ‘허’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 순간 텐션이 아예 없어지는 것 같다. 이중적인 얼굴, 이중적인 몸놀림으로 그런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런 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사악한 해결사인데도 어쩌면 내 옆에 있는 사람같이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작하면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다.”
Q. 연기자 차승원이 자신 있어 하는, 혹은 좋아하는 장르는?
▶차승원: “예전에 출연한 <장미와 콩나물>(98)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김혜자, 최진실이 나오는 드라마다. 그 작품에 나오는 모습이 좋다, 아주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도 그래서 좋다. 코드화, 양식화된 것도 좋아하지만 그런 작품 찍으면 뿌듯하다. 포만감이 느껴진다.”
Q. 차승원의 일상은.
▶차승원: “운동하는 것부터가 저와의 약속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건강하게 일을 하기 위한 저의 루틴이다. 특별하게 운동을 좋아해서거나, 몸을 유지해야하는 강박이 있는 것은 없다. 건강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려는 루틴일 뿐이다. 요즘도 하루 한 끼만 먹는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건강상태는?) “몸이 안 좋다고 느껴서 검사를 받아봤는데 아주 건강하더라. 눈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멀리 있는 건 다 보여도, 이건 안 보여요. 나이든 거예요. 11시 전에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일어나면 강아지 우유 먹이고. 운동하고 그런다.”
Q. ‘하루 한 끼’ 뭘 먹는지.
▶차승원: “될 수 있으면 많이 먹으려 한다. 육류 종류로. 흰쌀밥은 안 먹고. 라면은 한 달에 한두 번만.” (‘삼시 세 끼’ 촬영은 어쩌나?) “어쩔 수 없지. 다 먹어도 살이 빠진다. 요즘 너무 더워서. 역시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다.”
Q. 그렇게 관리를 잘하니, 이제 중년의 절절한 로맨스 할 때 되지 않았나?
▶차승원: “그래요? 그럼 내년에 한번 해 보죠. 들어오면! 더 늙기 전에. 징그럽지 않은 수준에서 잘 해 보겠습니다. 보시는 분이 ‘안 보고 싶어’하지 않은 선에서.”(하하)
Q. 유해진의 <달짝지근해:7510> 같은 건?
▶차승원: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 로맨스는 유해진 씨 말고 누가 할 수 있겠는가.”
Q. 유해진과 <삼시 세 끼> 또 한다.
▶차승원: “<삼시 세 끼> 촬영했는데 하루 있어보니 일 년은 산 사람 같은 포스가 자연스레 나오더라. 진짜 희한하더라. 그냥 앉아있는 모습이 그곳에 1년 산 사람 같았다. 이런 게 ‘짠밥’이지 않을까. 게스트로 오시는 분은 나갈 때까지 ‘게스트’로 보인다. 신기하더라. 각자 루틴이 있다. 해진씨는 일어나서 뛰어야하고, 저는 일어나자마자 씻는다. 그리곤 해진씨가 불을 피우고, 전 준비한다. 아귀가 딱딱 맞더라. 둘이서 자연스레 중간에 있고, 스텝들이 둘러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 <트루먼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Q. 요즘 영화계 제작상황이 안 좋은데.
▶차승원: “저 같은 경우는 감사하게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어떤 감독이랑 그런 이야기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될 것 같다고. 한 번 더 의심하고, 두들겨보고, 필터링해야할 것 같다고. 나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차승원이 임진왜란의 선조로 출연하는 <전, 란>은 하반기에 공개되고, 박찬욱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다른 드라마 <돼지우리>도 기다리고 있고, tvN예능 <삼시 세 끼>는 평창에서 한 차례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넷플릭스 <광장>에도 특별출연했다고 한다.
차승원과 함께 김선호, 김강우, 조윤수가 출연하는 디즈니플러스 4부작 드라마 <폭군>은 14일 공개되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