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사관학교’를 수석졸업하고 민간항공사 파일럿으로 잘 나가던 조정석이 시대착오적 말실수로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다. 영화 <파일럿>에서의 조정석이다. ‘남자가 안 되면 여자로!’ 그래서 여자로 분장하여 제2의 스카이라이프를 개척한다. <파일럿> 흥행성공에 한껏 기세가 오른 조정석이 이번엔 1979년의 군사법정에 나선다. 무려 대통령 시해(암살)사건의 종범을 변호하기 위해. 서슬 퍼런 전두환의 기세보다 그를 더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가 변호해야할 ‘군인’ 박흥주 대령이다. 박 대령은 ‘명령에 따라 총을 쐈을 뿐’이란다. 조정석은 어떻게 변론을 펼칠까. 화려한 변호쇼를 기대했던 그가 점차 ‘그 군인의 마음’속에 빠져들게 된다. 개봉을 앞두고 조정석을 만나 변호사가 된 소감, 군인을 연기한 이선균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들어보았다. 조정석 배우는 인터뷰 자리에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기자에게 좀 큐티하게 보이려고요~”란다. 한바탕 웃음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Q. <파일럿>이 좋아요, <행복의 나라>가 좋아요?
▶조정석: “하하하. 곤란한 질문이다.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같은 것이다. 그래서 둘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한 일이죠.”
Q. <파일럿>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정석: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놀랐다. 나에게 이런 역할을 주시다니. 그동안 유쾌한 작품들,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가 많았다. 이런 작품은 새로운 기회이고 도전이었다. 너무나 해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촬영할 때부터 좋았다. 유쾌한 기조를 조금 들어내고, 영화의 톤앤매너에를 맞추면서 저도 모르는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사회에서 처음 볼 때 저의 연기를 볼 수가 없었다. 영화 자체를 보게 되더라. 영화가 너무 좋았다.”
Q. 조정석이 연기한 정인후 변호사는 박태주(이선균)를 변호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인물이다.
▶조정석: “박태주를 대할 때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를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어찌 될지 모르는 최악의 정치재판, 졸속재판에 뛰어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 박태주의 어린 딸들이 빈소에 와서는 그에게 귤 하나를 건네준다. 그 순간 그 아이들의 심정에 미러링이 되는 것 같았다. 아빠의 마음. 그런 것들이 디테일하게 살아나면서 박태주를 꼭 살리고 싶다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 같다. 정인후를 연기하면서 그런 면을 신경 썼다.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이 많았다. 그걸 잘 분배하는 것이 제 연기의 숙제였다.“
Q. 정인후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고민이 없었는지.
▶조정석: “고민이 하나도 없었다. 이 작품에 끌린 것에는 골프장 장면이 꽤 큰 지분을 차지한다. 난 판타지를 좋아한다. <행복의 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가공의 인물이 길잡이가 되는 영화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골프장이 나오는 장면이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일개 변호사가 그런 권력자에게 일갈하는 것은 정말 통쾌하다.”
Q. 이선균 배우와의 연기에 대해서.
▶조정석: “항상 그립다. 시사회 간담회에서 유재명 배우가 그랬듯이 영화자체로 보고 싶었다. 선균이 형에 대한 마음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정인후와 박태주가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에서 무너졌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서로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찍을 때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번 영화 찍으면서 모든 배우들의 관계가 끈끈했다. 회상해보면 이 영화처럼 좋았던 현장이 좋았던 영화가 있었나 싶다. 그 중심에는 이선균 배우가 있었다.” (이선균 배우가 조정석 배우에게 연기를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아니, 제가 많이 배웠죠. 슛 들어가면 이선균 배우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 제가 맡은 역할은 대사가 많다. 그럴 경우 받아주는 상대 역할이 중요하다. 이선균 배우는 그런 역할을 잘 해주었다. 이선균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다.”
Q. 레퍼런스 삼은 인물이나 캐릭터가 있는지.
▶조정석: “특별히 없었다. 법정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이 <변호인>이 떠올랐다. 1979년의 변호사는 이런 말투를 할 것이라는 들의 생각은 다 버리고, 그 법정 신의 목적에 맞는 연기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연기한 것 같다.”
Q. 정인후 변호사는 처음에는 브로커 같은 이미지였다가 나중에는 민주화 인권변호사가 되어 간다.
▶조정석: “그 대목이 감독님이 절 캐스팅한 이유일 것 같다. 처음부터 정의로운 변호사로 비치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재판이란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와는 거리가 먼 변호사였다. 자기만의 가족 전사도 있고. 그런 것들로 동질감을 느끼고 정의롭게 성장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Q. 시대극이다. 외형적인 면에 신경을 쓴 게 있는지.
▶조정석: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흙감자처럼 나왔다. 정말이지 막 캐낸 흙감자. 그렇게 그려져서 너무 좋았다.”
Q. 추창민 감독의 디렉팅은 어땠는지.
▶조정석: “감독님은 차분하시고, 악착스러운 면이 있다. 게다가 섬세하다. 저랑은 잘 맞는 것 같다. 저도 계속 끈질기게 하는 스타일이라서.” (감독은 골프 해저드의 물이 얼어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하 그 때가 12월이었다. 입김이 나야하는데 <타이타닉>처럼. 그런데 그 효과가 너무 안 나는 것 같았다. 재명이 형이 좀 부러웠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겠더라. 골프장 신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자조하면서, 읊조리면서, 조소하듯이, 울분을 토해내듯이, 일갈하는 톤으로. 결국 영화에 나온 그 테이크가 좋았다.”
Q. 정인후가 전상두(전두환/유재명)를 처음 마주치는 장면도 긴장감이 꽉 찬다.
▶조정석: “첫 대면신이라 중요했다. 유재명 배우가 풍기는 분위기, 눈빛, 아우라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어떻게 보면 제가 약자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명)형이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다. 촬영 전에는 전상두가 정인후에 호통 치고, 소리 지를 것이라고 혼자 상상을 했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완전 새로운 느낌이었다.”
Q. 시대적 배경에 대해 따로 공부했는지. (조정석은 1980년생이다)
▶조정석: “시나리오를 보면서 제가 알지 못하는 인물이 제 눈에 들어오는 순간 흥미로웠다. 그 인물에 대해 검색했고, 관련 재판에 대해 찾아봤다. 내가 태어나기 1년 전 일어났던 일이지만 학창시절부터 1026과 1212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태주의 모티브가 된 ‘박흥주’라는 인물에 흥미를 느꼈고, 많이 찾아보았다.”
Q. 본인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순간이 있다면?
▶조정석: “법정 장면에서 그런 얼굴이 나타났다. 마지막 최종진술 장면. 롱테이크로 찍은 게 있다. 카메라를 넓게 잡는데 제 얼굴에 새로운 모습이 담겼다. 울분은 울분인데,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고, 이렇게 될 것만 같은 억울한 현실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영화에 사용되지 않았다.”
Q. 정인후가 박태주, 전상두와 연기하면 긴장될 수밖에 없다. 진기주와는 웃으면서 연기한 것 같다.
▶조정석: “진기주 배우는 촬영 전부터 좋았다. 선택도 잘하는 똑똑한 배우인 것 같다. 재밌게 찍었다. 진기주 배우는 좋은 작품을 잘 선택하는 것 같다. 그건 배우가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가장 많이 찍었던 장면은 어느 장면인가.
▶조정석: “‘이럴 거면 재판을 왜 하는 겁니까?’하다가 끌려 나가고, 변호사 사무실로 연결되는 신. 우현 선배에게 혼나는 장면, 퇴장하는 것까지 롱테이크로 찍었다. 모두 26번 찍었다. 롱테이크다보니 정말 많이 시도해야했다. 배우들의 합, 카메라 합까지 맞아야하니. 배우들도 그 장면에 욕심이 났었다.”
Q. 조정석 배우가 생각하는 명장면은?
▶조정석: “마지막 장면. 그 엔딩 장면이 너무 좋았다. 이선균 배우가 연기하는 박태주가 마지막으로 진술하는 모습. 그리고 정인후와 박태주가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장면. 제일 좋아해요.”
Q. 얼마 후 또 다른 작품, 넷플릭스 <신인가수 조정석입니다>가 공개된다. 부담감이 클 것 같다.
▶조정석: “부담감 있다. <파일럿> 개봉하기 전에 친구 하나가 농담으로 그러더라. ‘파일럿. 행복의 나라, 신인가수 세 개 나와서, 세 개 다 안 되면 어떡하냐?’고. 그 친구 명치를 확~. (하하하) 부담감이 날로 높아진다.” (그럼 세 작품 중 어느 게 좋아요?) “이건 엄마아빠할머니가 다 나왔다. 다 잘 되면 좋겠다. 욕심인 것 같지만 세 작품 다 다른 회사 작품이니 다 잘 되어야한다.”
Q. 드라마, 예능, 영화에서 다 찾는 연기자이다. 마음가짐은?
▶조정석: “아주 오래 전에 공연 열심히 할 때 인터뷰하면서 ‘쓰임새가 많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고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조정석이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저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Q. 조정석에게 ‘행복의 나라’는?
▶조정석: “기준이 다를 것이다. 제 기준으로 보자면 가족인 것 같다.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면 된다. 그것 자체가 행복의 나라이다. 지금 행복하다.”
이미 연기 잘하는 팔방미인 조정석이 자신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라고 말한 영화 <행복의 나라>는 오늘(14일) 개봉한다.
[사진=잼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