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2000)와 ‘무뢰한’(2015)의 오승욱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오승욱 감독은 충무로에서 ‘이 쪽’ 장르에서는 조예가 아주 깊다. 또한 놀랍게도 오승욱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기도 하다. 프랑스 장 피에르 멜빌 감독과 홍콩 쇼브러더스의 양강(陽剛)미학을, 이두용 감독 작품과 함께 버물러 거뜬히 장광설을 펼칠 사람이다.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리볼버>는 ‘경찰비리’를 혼자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다녀온 전도연이 ‘약속한 돈과 아파트’를 기어이 받아내기 위해 ‘리볼버’ 권총을 드는 느와르 영화이다. 오승욱 감독을 만나 ‘악인의 신의’와 ‘여자의 집념’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시사회 반응은 어땠는지.
▶오승욱 감독: “영화하는 분들은 이 영화가 대체로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오승욱영화’를 만든 것 같다니 기분이 좋았다.”
Q. 작품을 만나보기 너무 힘들다. <리볼버> 처음 기획할 때와 지금 완성된 것 사이에서 달라진 것이 있는지. 설정이나 캐릭터가.
▶오승욱 감독: “없는 것 같다. 시나리오 초고에서 완성될 때까지. 끝냈을 때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대사에서 완성도를 높인 부분 말고는 처음 생각한 대로이다. ‘이 정도 하자’하고 달려왔다.”
Q. 이른바 ‘오승욱표 영화’라면 어떤 것일까.
▶오승욱 감독: “글쎄요. 스태프에게 말할 때도 난감한 게 있다. ‘킬리만자로’와 ‘무뢰한’을 하면서 보여준 스타일을 말한 것이다. 장르를 가져오면서 조금 비틀어버린다. 인물을 표현할 때도 조금 더 비틀어서 박자를 빨리 한다거나, 예상하지 못한 이상한 말을 내뱉게 해서 모서리가 있게 한다. 이번에 촬영할 때 전도연의 모습에서 그런 게 잘 드러난다. 전도연이 앤디를 때리고 차에 탈 때 배우의 얼굴은 포커스가 나가고, 피가 묻은 손바닥을 보여준다. 임지연이 ‘언니, 술이나 한 잔 해요’라고 말할 때 그제서야 전도연의 옆얼굴이 나온다. 차 안에서 얼굴이 잘 안 보인다. 실루엣만 보여준다거나 뒷모습만 보여주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찍었다. 그런 게 오승욱다운 특징이라고 봐주신다면 고맙겠다.”
Q. <무뢰한>의 평가도 좋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있다면.
▶오승욱 감독: “준비하던 게 잘 안되면 새로운 것 준비하느라 1년, 2년을 휙휙 지나간다. 어느 순간 막혀버리기도 하고.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더라. 다시 전도연 만나서 이 작업한 게 4년 정도 된 것 같다.”
Q. 액션 측면에서 봤을 때 ‘검도’가 많이 활용된다.
▶오승욱 감독: “경찰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 액션이 필요하다. 어떤 격투술을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검도이다. 우리나라 경찰은 유도나 검도를 한다. 유도를 영화에서 집어넣을 경우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없었다. 검도는 재밌는 것이 나올 것 같았다. 하수영의 경찰 선배로 민기영(정재영)의 괴팍함을 표현하기엔 검도가 어울린다. 검객에 대한 이미지가 있잖은가. ‘청렴결백함’, ‘꼿꼿함’ 같은. 이런 분이 시한부라면 많은 어떤 그림이 나올까. 이전에 작품 하면서 ‘삼단봉’이 등장하는 것이 마음에 되었다. 매료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검도와 삼단봉 나오는 동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Q. 엔딩에 대해서. 전작의 영향인지 마지막에 대반전이라도 있을 것 같았는데.
▶오승욱 감독: “엔딩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정해진 대로이다. 이 영화는 하수영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담는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존재감이 전혀 없는 투명인간이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돈도 없고, 집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 마지막에 가서 이제 하수영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나야!’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걸 위해 끝까지 가는 영화이다. 전도연 배우와는 이야기를 많이 안 나눴다. 전 배우가 처음 시나리오 다 읽고 나서는 ‘술 마시고 싶다. 꽁치와 소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전도연 배우면 다 된 것이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연기는 자연스레 할 것이라고 믿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한 것들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된다. 촬영할 때 느꼈다. 시나리오는 환상이고, 그림일 뿐이다. 그런데 <무뢰한>에서 전도연이 걸어 나오는 장면을 찍으면서 ‘아, 내가 이걸 찍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의 연기에서도 그런 걸 느꼈다. 유영길 촬영감독님에게 ‘전 생선의 뼈다귀 하나만 그렸는데 배우들의 연기로 피가 통하기 시작하고, 근육이 돋고, 소름이 돋네요’ 그랬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선 제가 방해만 안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Q. 정 마담을 연기한 임지연 배우에 대해서는.
▶오승욱 감독: “<글로리>때 눈여겨봤었다. 아니다. <인간중독>때부터 좋게 보았었다. 임 배우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나보니 바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DC코믹스의 로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로빈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인간인지. ‘배트맨과 로빈’의 로빈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좌충우돌하며 배트맨을 힘들게 하는 캐릭터이다. 작품에서 로빈이 죽으면서 배트맨에게 큰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라고 말해주었다. 임지연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재밌어했다. 워낙 연기를 잘하니 날아다녔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할 때, 차문을 열고나올 때 하늘이 도와서 바람에 머리가 휘날린다. 그 장면에서부터 기분이 좋았다.”
Q. 느와르는 분위기로 말한다. 그런데 초반에 대사로 진행하는 부분에 대해서.
▶오승욱 감독: “초반에 관객이 다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다. 여기까지 가려면 기초를 쌓아나가야 한다. 액션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다. 결국은 배우들이 대사를 전달하는 연기, 분위기로 가져가야했다. 엄청난 작품인 <차이나타운>(로만 폴란스키 감독,1974)을 볼 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사실 보기힘들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이두용 감독,1980)도 그렇다. 그 영화는 어마어마하게 이상한 지역들과 이상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몇 군데만 가는 것이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속으로 큰일 났다 싶어서 들어내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도 이렇게 관객을 만나는 게 두렵지만 그런 식으로 빌드업을 안 하면 끝까지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Q. 시사회 때 웃음이 많이 나왔다.
▶오승욱 감독: “사실 코믹한 상황을 제가 좋아한다. <킬리만자로>때는 너무 잔혹하니 웃어야하나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엔 좀 더 가벼워졌으니 관객들이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코미디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악당 같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강남 술집에서 놀던 사람이 강원도 산속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휠체어를 제대로 밀지를 못해 쩔쩔 맨다. 그런 상황이 웃겼으며, 황당했으면 했다.”
Q. 결말이 희망적인가.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트랜드에 맞추려고 한 것인가.
▶오승욱 감독: “이 영화를 찍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전도연이 주인공이고, 라스트를 쓰면서 이 영화는 결국 ‘하수영의 트라이엄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뭉치의 돈과 한 뼘의 방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한 것이다. 하지만 쟁취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판타지 같이 끝난다. 전에 쓴 것은 끔찍하다. 킬러 들어오는 버전도 써봤는데 아니었다. 인간들이 다 모여서, 그들의 ‘가오’가 박살나 버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들(지창욱)이 잡혀있는데 킬러를 보내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이 사람들은 서울에서는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가오가 박살난다는 것은 전혜진의 구두, 하이힐에서 알 수 있다. 파쇄석이 깔린 산사에서 하이힐이 계속 빠지다가 결국 찢어진다. 피디가 그걸 보고, ‘저건 찍어야해!’했다. 그 장면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자주 가던 깊은 산속 절에서 머물 때 봤던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전국 돌며 찾아낸 곳이다.”
Q. 앤디를 연기한 지창욱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이 인물도 다층적이다.
▶오승욱 감독: “앤디가 강남 술집이나 사람들 많이 모이는 회의실에 있으면 어마어마한 전문가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팔다리를 잘린 셈이다. 권력을 잃고, 신뢰가 없으니. 돈이 없으니 이 사람도 투명인간 비슷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뭘 해보려다보니 자승자박이 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일단 돈이 없으니 무시 당하고, 가오가 떨어진다. 하수영에게 얻어터지고.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괜히 깡패들을 불러다가 하수영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 게네들만 해도 강남 뒷골목에서 싸움 좀 했겠지만 강원도 산골짜기 숲속에서 무얼 하겠는가. 핸드폰 불빛으로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게임을 많이 해서 배터리도 없고. 글을 쓰면서 그때 느낌이 왔었다.”
“지창욱의 얼굴과 몸집이 들어오면서 원래 생각한 시나리오에서의 비중보다 확 뛰어올랐다. 연기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산속 장면에서 처음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다리를 떨면서 이렇게 한 번 움직여주는데 그때 너무 좋았다. 감독으로서 지창욱과 합이 좋았던 것 같다. 모든 게 좋았다. 다리 맞고서 ‘활처럼 휘어지는 걸’ 원했는데 음악까지 기막히게 좋았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지창욱 배우랑 좋았다. 현장에서 ‘여기서 속초앞바다까지 업고 가겠다’고 그랬다니깐. 지창욱 배우가 들어오면서 시나리오에 더 추가된 것은 없다. 시나리오대로 하면 존재감이 약할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지창욱 배우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빛을 발한다.”
Q. <무뢰한>이후 무척 오랜만에 전도연 배우를 만났다.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었는지.
▶오승욱 감독: “9년만이다. 너그러워지고 좀 더 넉넉해진 게 있다. 최근 출연한 드라마(일타 스캔들)에서 좋은 기분을 가져왔다. 배우가 마음껏, 자유롭게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다. 힘들게 자신을 몰아세우며 연기하는 것에서 벗어난 게 좋았다. 전도연 배우는 현장에서 선장 같았다. 모든 스태프가 전도연 배우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힘들 때는 귀엽게 ‘파이팅~’하면서 스태프의 편이 되었다.”
Q. ‘하수영의 품위’에 대해 말하자면? 비리경찰이고, 일종의 복수를 꿈꾸는데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오승욱 감독: “하수영의 과거 장면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전도연 배우와 이야기하면서 수영이란 인물은 경찰현장보다는 강남의 기업체같은 클럽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이 타락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염치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런 곳에 있다 보니 무뎌진 사람이다. 경찰에 있을 때도 (사내) 아나운서를 하며 화장도 짙게 했을 것이다. 전 배우가 캐릭터에 대한 설정을 좀 더 했다. 그런 사람이 어는 순간 교도소에 가게 된 것이다. 품격이란 것이 그렇다. 교도소 안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고 많이 변했을 것이다. 나가면 약속한 돈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진 않는 것이다. 아마 그 순간부터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인자는 되지 않으려고 마음 먹는 것이다. 정재영이 총을 줄 때도 자기는 죽어도 안 쓰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총을 받아들면서 돌아서자마자 삼단봉을 보고는 ‘이제 이거 안 쓰죠?’하며 챙기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총 대신 이걸로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숲에서도 총을 안 쓴다. 결국 총을 사용해야할 때 고민을 많이 한다. 살인자까지는 되지 않으려고, 지옥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의 품격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맨 마지막에 산 속, 절에서 하수영이 보이는 태도가 있다. 격을 지키는 것이다. 전도연 배우는 그것에 대해 잘 이해해 주었다.”
Q. 이정재 특별출연에 대해 .
▶오승욱 감독: “이 영화가 날 수 있는 날개가 달아준 것. 이정재 배우와의 친분은 오래 되었는데 이제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정재 배우가 감독이기도 하니 찍으면서 ‘형은 어떻게 이걸 생각했어?’하며 감독으로서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감독의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이다. 이정재 배우를 처음 만난 것은 <킬리만자로>로 대종상에서 상 받을 때다. 아, 참 그 전에 <이재수의 난> 찍을 때 비행기에서 봤었다. 같이 밥도 먹고 그랬는데. 항상 팬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있네.”
Q.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지창욱)가 모자관계이다.
▶오승욱 감독: “그리스의 비극이죠. 그레이스는 한국에서 어린 나이에 애를 낳았고, 둘은 그 것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된 것이라고 서로 생각한다. 그레이스는 중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다고 말하는데 할머니에게 앤디를 맡기고 중국에 간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레이스는 그렇게 자기 비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중에 앤디를 중국에 불러들였는데 이지메 당하고, 왕따 당하고 그랬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생존경쟁이었다고 말하잖은가. 그런데 앤디는 한국에 들어와서도 따돌림 당한다. 그가 살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돈으로 자기의 왕국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옆길로만 간다. 그레이스는 그레이스대로 내 인생을 망친 아이이고 앤디는 앤디대로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생각하는 것이다.”
“후반부 휠체어 장면이 중요하다. ‘행복하세요’라고 말하고 휠체어를 밀려고 할 때 정말 안 밀리더라. 촬영할 때 밑에 발판 깔고 겨우 촬영할 수 있었다. 그때 그레이스가 ‘애는 항상 이런 식이야. 무얼 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런 상황이 이전에도, 중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앤디에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레이스 역의 전혜진 배우는?
▶오승욱 감독: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 연출부할 때 처음 봤었다. 전혜진 배우가 데뷔한 작품이다. 그때 아직도 기억나는 게 선풍기 바람에 치마가 살랑거리고 방안을 가로지는 장면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배우가 나왔네라고 생각했었다. 전혜진 배우가 그레이스에 잘 어울리고 나름대로 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출연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죠.”
Q. 극중에서 마시는 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오승욱 감독: “임석용은 위스키를 마신다. 자기만의 특별한 격을 지키려고. 아마 비리경찰이기에 더했을 것이다. 위스키도, 와인도 특정 제품만 마시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중요한 것은 아니어서 설명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임석용은 ’메를로‘를 좋아하는데 신 형사는 다른 것을 시키는 식으로. 그 때문에 ’따라하려면 제대로 하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임석용은 ’맥켈란‘을 좋아한 것 같다. 하수영에게 보낸 것이 17년산이다. 한정판으로 나온 것인데 엄청나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한정판이란 게 중요하다. 임석용이 죽기 전에 어떻게든 구해준 것이다. 아마 이전에 둘이서 좋아한 술이었을 것이다. 정마담(임지연)의 행동이 중요한데 그 술을 보자마자 그냥 따서는 물통에 대강 섞어서 폭탄주처럼 마신다. 임석용이 봤을 때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주도일 것이다. ‘이렇게 마셔도 괜찮죠?’하며 둘이서는 임석용의 그림자를 확 뭉개버리는 셈이다. ‘옛날이야기 하지마라 술맛 떨어진다’고. 그러면서 ‘대게 웃긴다. 불륜녀 둘 엮어주고~’하면서 술을 마신다. 그렇게 그들의 방패막, 스승이었을 임석용의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다.”
Q. 범죄영화인데 ‘믿음과 신뢰’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오승욱 감독: “아마도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어릴 적에 본 책들 때문인 듯하다. <레미제라블>, 조세프 콘라드의 <로드 짐>, 그리고 일본 망가 <타이어 마스크>나 <내일의 조> 같은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죄 지은 인간들이 더 이상 죄를 안 짓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 죄를 저지를 때 제일 먼저 파괴되는 것이 신의, 믿음이다. 나는<레미제라블>에서 한 부분을 유독 좋아한다. 그 이야기를 <무뢰한>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번엔 조금 입장이 바뀐 것이다. 다음 영화에는 조금 더 잘하고 싶다. 범죄영화를 만들 때의 야망이다. 인간에 대해 설득력 있게 다루고 싶다. 남이 안 해본 것을 그리고 싶다. 다음에는 더 재밌게 표현하고 싶다. “
”구상 중인 다음 작품은 아직 없다. <리볼버>가 잘 되기를 바란다.“
<리볼버>를 보고서 소주에 꽁치를 찾든, 와인에 육회를 찾든 오승욱 감독의 미각을 따라가며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편일 듯하다. 전도연, 임지연, 김준한과 이정재, 정재영이 출연하는 오승욱 감독의 <리볼버>는 7일 극장에 내걸린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