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가 등장하는 영화는 흥미롭다. 멀리 보자면 오드리 헵번의 <파계>나 줄리 앤드류스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고전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수녀를 만날 수 있고, 요즘 호러에서는 수녀원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공포의 히로인으로 자주 만나게 된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소개된 단편 <종의 소리>는 ‘수녀’가 등장하는 작품 중 기억할만한 작품이다. 29분 동안 펼쳐지는 <종의 소리>는 성스러운 종교의 길에 들어서는 한 예비수녀를 통해 인간적인 고뇌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경건하다. 한 수녀가 높다란 종탑의 줄을 당긴다. 종소리와 함께 적막한 수녀원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비수녀 수잔나 자매가 4년의 수련기간을 거친 뒤 이곳으로 온다. 수녀원장은 사흘 뒤 열린 서원식 동안 데레사 수녀와 함께 지내라고 말한다. ‘데레사 수녀’라는 말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만난 데레사 수녀. 휠체어에 앉아있다. 이제 곧 요양원으로 갈 것이란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니랑 자랐어요.”라고 말하는 수잔나. 수잔나는 할머니와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할까. 새벽에 종을 울리는 데레사는 환상인지, 환각인지, 원죄인지 모를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만난다.영화는 끝에 가서야 수잔나 자매의 영혼을 붙잡는 고통을 알려준다. “Deo Gratias.”
황지은 감독의 단편 <종의 소리>는 종교적 영화이다. 가톨릭 수녀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답게 모차르트의 장엄한 성가곡이 울려 퍼지고, 오래된 종탑의 은은한 종소리가 관객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순수하고, 순결하고, 기꺼이 하느님의 종이 될 것 같은 수잔나에 대해서는 어떤 과거와 고통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초반에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괴팍한 테레사 수녀나 까칠한 수녀원장을 통해 그 고통의 과거가 드러날지 모른다.
이 영화는 결국 성스러운 종교적 문제를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고뇌와 연결된다. ‘치매’와 가족부양의 끈이다. 숨기고 싶은, 잊고 싶은 과거를 가진 수산나 역의 오우리 배우의 영혼을 위탁한 듯한 연기와 이주실, 남기애 두 베테랑 배우의 연기는 안 그래도 으스스하고 고독할 것 같은 수녀원의 분위기를 더욱 단단하게 옭아맨다.
황지은 감독은 전작 <아무것도 아니지만>(2018)에서 정교하게 다듬으며 쌓아올린 팽팽한 긴장감의 끝에 노래 한 곡을 들려준다. 서투른 노래지만 관객은 그제야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음에 놀라면서, 인간의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감정에 감동받게 된다. 이 영화 <종의 소리>도 수녀원의 공포심의 근저에는 오래 전 세속의 기억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새 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남명렬 배우는 마지막에 잠깐 등장한다. 신부님인 "주님의 종으로서 서약하시겠습니까?" 물을 때 수산나가 대답할 듯 말 듯 하며 영화는 끝난다. 종의 울림만큼 깊이 각인될 영화이다.
▶종의 소리 (영어제목: SOUND OF THE DIVINE BELL) ▶감독: 황지은 ▶출연: 오우리(수산나), 이주실(테레사수녀/할머니), 남기애(원장수녀), 남명렬(신부)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 2’ 상영작 ▶런닝타임:29분서>(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