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장/단편, AI/XR 등 모두 25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단편영화의 경우 몇 편씩 묶어 함께 상영한다. [코리안 판타스틱:단편2]로 묶여 소개된 작품 중에 정다희 감독의 단편애니메이션 ‘옷장 속 사람들’이 있다. 작품은 ‘사람’ 대신 ‘옷’으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일상을 담은 ‘듯’하다. 정다희 감독의 <의자 위의 남자>(2014)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되었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크리스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어 <빈 방>(2016)은 히로시마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정다희 감독은 미국 아카데미협회(영화예술 및 과학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정다희 감독을 작업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애니메이션 감독의 꿈은 어떻게 활짝 피어났는지.
▶정다희 감독: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다양한 세부전공이 있는데 그중 영상수업이 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 때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어졌다. 대학 다닐 때 본 게 폴란드 즈비뉴 립친스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탱고>(82)와 스위스 조지 슈비츠게벨의 단편들이었다. 그들의 단편을 보면서 매료되었다. 서사방식이 실험적이다. 고유한 자기만의 내러티브가 독특하고 철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 캐나다의 일러스트레이터 미셀 르미유 감독도 좋아한다.“
정다희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배우려고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퐁트브르 수도원의 애니메이션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작업할 기회를 가진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의자 위의 남자>를 사크루블루 프로덕션과 공동제작하는 기회를 갖는다.
”<옷장 속 사람들>은 안시영화제에서 프로듀서를 만나 성사된 것이다. 나의 전작을 좋아해서 공동제작을 해보자고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 프로덕션을 만들어 그쪽과 작업을 같이 했다.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도 참여했다.“
Q. 영어제목이 ‘Society of Clothes’이다. 뭔가 더 이야기를 해주는 제목인 것 같은데.
▶정다희 감독: ”아, 원래 제목을 그냥 영어로 옮겼더니 그것이 영어로 다른 뜻이 있더라.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를 뜻한다고. 그래서 고민하다 만든 영어제목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회계층이 나오긴 한다. 작품은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다양한 인물을 우선 소개하고, 이어 신발과, 장갑, 모자를 통해 계급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렇게 이어진다.“
Q. 애니메이션, 특히 단편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 호평을 받더라도 팬들이 쉽게 만나볼 수는 없다. 어떻게 봐야하는지.
▶정다희 감독: ”애니메이션 상황만 보자면 업계가 작다. 전 세계가 다 작다고 느낄 정도이다. 애니 페스티벌에 가보면 매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감독 작품을 그곳에서 볼 수 있다. 내 작품은 해외에서 상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 작품은 BIFAN 다음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그리고 네마프에서 상영될 것이다. 그리고 인디애니페스트와 부천애니메니션페스타티벌에서도 상영하고 싶다. 내 작품 중 몇 편은 ‘비메오’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올려두었다.“
Q. 등장인물이 신발(구두)을 신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신기가 쉽지 않다. 장갑도.
▶정다희 감독: ”장갑이나 신발, 그리고 모자 같은 것은 인간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이다. 단계별로 상징하는 게 있다. 신발은 자기 의지로 걷는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아무도 신발을 신은 사람이 없다.“
Q. 그렇게 이야기하니 조금 난해한 작품 같다. 작품 들어갈 때, 제작비 펀딩할 때 어떻게 설명하는가?
▶정다희 감독: ”하하. 프랑스와 캐나다 프로듀서와 작업할 때 그들은 나에게 설명을 하라거나 강요하는 게 없었다. 완전한 자율을 주었다.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나름 서류 열심히 준비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 펀딩 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Q. 그럼 <옷장 속 사람들>을 기획한 계기는?
▶정다희 감독: ”2020년에 애니메이션 감독 말고 다른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그 직장에 갈 때는 다른 옷을 입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옷을 바꿔 입으면 사회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옷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아이 옷 위에 어른 옷을 입고, 누군가는 여자 옷 위에 남자 옷을 입는다. 또 누군가는 화려한 옷 위에 화려한 옷을 덧입고, 어떤 이는 남의 옷을 뺏어 입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옷으로만 존재하는 저 사람들은 뭘 하게 될까.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갈망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옷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장갑, 모자, 구두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을 더 꾸며줄 것들. 권력이나 지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처럼. 그것들을 물건 안에 집어넣었다.“
Q.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다 설명하려고 하는 편인가.
▶정다희 감독: ”작업 방식은 다르지만 다큐를 좋아한다. 다큐를 만들어본 감독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다르덴 형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 압바스 감독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더라. ‘영화의 반은 감독이 만들고, 나머지 반은 관객이 만든다.’고. 작품에 대해 다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Q. 음, 그럼 중간에 등장하는 아이는? 천진난만한 느낌을 준다. 이중섭의 그림에 나오는 아이처럼.
▶정다희 감독: ”아이니까. 그 아이는 자기를 다른 걸로 꾸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순수하다. 마지막에 보면 주인공이 자신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거울을 통해. 그 아이는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른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Q. 이전 작품도 ‘해석의 여지를 두는’ 스타일이었나?
▶정다희 감독: ”<움직임의 사전>은 재밌다. 영화는 여러 가지 속도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엄청 느린 나무, 평범한 속도의 사람, 빠르게 움직이는 개, 뒤로 가는 사람처럼. 인간-식물-동물, 어른-아이-노인처럼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그 차이를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드는 이유가 있는지.
▶정다희 감독: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싶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재밌다. 제작지원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왔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제작비를 받을 수 있었다. 작품을 끝내면 운 좋게 상금으로 생활이 되었다. 제작지원에 의존하지 않으면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 가르친다.“
Q. 감독님은 미국 영화아카데미 회원이다. 해마다 투표하는지?
▶정다희 감독: ”<의자 위의 남자>와 <빈방>이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회원이 되고 나서는 매년 ‘Short Films and Feature Animation’ 분야의 회원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숏리스트와 최종적으로 다섯 편을 뽑을 때. 의외로 최종 다섯 편에 오른 작품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오스카 시즌이면 스튜디오마다 홍보전이 치열할 텐데) ”아카데미 회원카드는 주더라. 그리고 해마다 후보작 DVD를 한국에까지 보내준다. 나는 DVD가 환경오염이라 생각해서 ‘보내지 마세요’를 선택했다. 대신 온라인으로 후보작을 본다.“
(정다희 감독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초대된 것은 2018년으로 그 해 홍상수, 이창동, 배우 하정우, 조진웅, 배두나, 김민희, 이병우 음악감독, 조상경 의상디자이너, 류성희 디자이너, 오정완 프로듀서 등이 새로 회원이 되었다)
Q.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정다희 감독: ”하고 싶은 게 많다.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지방을 다니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 요소가 포함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즐겁게 행복을 느끼며 작업을 하고 싶다. 프랑스와 캐나다와 공동제작한 것도 경험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Q. 바보 같은 질문인데 깐느에서 상 타는 것, 아카데미에서 상 타는 것 중 어느 게 더 좋은가. 상 타는 게 좋은가 흥행에 성공하는 게 좋은가.
▶정다희 감독: “이야기가 중요하고, 티켓 팔리는 건 덜 중요한 것 같다. 하하. 이런 말은 프로듀서가 싫어할 것이다. 장편을 만들 생각도 있다. 관객이 드는 대중성이 있는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Q. <옷장 속 사람들>은 프랑스, 캐나다와의 공동제작이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정다희 감독: “<옷장속의 사람들>은 2D디지털 애니메이션이다. 배경은 수작업으로 그린 것이다. 우리 작품은 1초에 12장을 그려야한다. ‘1분’을 위해 720장을 그려야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애니메이션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이전까지는 ‘하루에 2초’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번엔 한국의 수석애니메이터와 프랑스의 동화 애니메이터가 작업을 함께 했다. 보통의 방식과는 달랐다. 한국에서 ‘원화’를 만들고, 프랑스에서 ‘동화’를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프랑스에서 제작지원을 받으면 그곳에서 써야하니까. 프랑스는 인건비가 비싸지만 공동제작하는 경험을 쌓고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국가가 지원하는 금액이 크다.”
Q. 외국의 사례를 실제 경험해봤으니, 우리나라 정부나 기관에 바라는 것이 있는지.
▶정다희 감독: “이번 작품은 영진위 지원도 받았다. 그게 적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예 못 받은 작품도 많으니. 그런 지원들 때문에 한국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이 줄었다고 한다. 지속적인 지원책이 있어야할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차이는 방송사의 역할 같다. 프랑스에서는 방송사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이 활발하다. 방송사에서 방영권을 선구매를 한다. 그런 식으로 제작주체가 다양하고 활성화되어있다.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어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정다희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과 함께 뮤직비디오 작업도 하고 있단다. 이 날도 ‘윤석철 트리오’의 뮤직비디오 작업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고. “픽실레이션에 2D드로잉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다. 로토스코핑 등 여러 기법이 혼합되어있다.”면서 8월 6일 공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다희 감독의 <옷장 속 사람들>은 6일과 10일, 두 차례 상영되었다. 놓친 분이라면 8월 열리는 네마프(NEMAF)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볼 수 있다. 정다희 감독의 전작은 감독의 비메오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빈 방>과 <의자 위의 남자>가 상당히 재밌다. 유튜브엔 <나무의 시간>도 있다. 보면 매료될 듯하다. 한 번 들어가 보시길.
[사진=정다희 감독 본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