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열리고 있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는 모두 253편의 영화(장편112편, 단편 97편, AI 15편 XR29편)의 영화/콘텐츠가 소개되고 있다. 그중 [코리안판타스틱:단편] 섹션에 소개된 <당신의 기쁨>이라는 30분짜리 단편이 있다. ‘좀비’재난시대가 끝나갈 무렵, ‘바이러스에 전염된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해서는 안 될 끔찍할 짓을 하는 누나 ‘기쁨’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성경책을 든 교회오빠가 찾아온다. 과연 남동생은 치유되고, 누나는 회개하고, 세상은 평화로워질까. 부천을 찾은 장채원 감독을 (서울의 카페에서) 만나 ‘단편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다.
Q. <당신의 기쁨>은 '펜데믹 무비'이다.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려고 했는지.
▶장채원 감독: “코로나 때 세상이 혼란스러웠고 저도 힘들었다. 그런 재난이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니 받아들일 수밖에. 그때 이래선 안 되겠다. 다른 어느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신을 원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 오만하고 발칙한 생각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졸업작품으로 준비하던 것이었는데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피디를 맡기로 한 친구가 다리를 다치고, 촬영 들어가기로 한 날 태풍이 와서 일정이 밀리고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니 온 우주가 이 영화 찍지 말라고 말리는 것 같았다.”
Q. 펜데믹 상황과 좀비의 결합이 흥미롭다. 이런 혼성 호러물을 좋아하는지.
▶장채원 감독: “‘정통’이라는 수식어 붙는 것, ‘정통 멜로’, ‘정통 호러’ 이런 것은 정말로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여러 장르를 섞은 영화가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Q.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장채원 감독: “다른 단편들 찾아보고, 유튜브 올라온 영상보고, 주위의 추천받고 그랬다. ‘기쁨’ 역의 범도하 배우는 유튜브를 통해 알고 있었다. 팬심 반으로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부탁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눴는데 흔쾌히 받아주었다. 요셉(여동윤) 배우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키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동윤 배우는 요즘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작가로.”
Q. 촬영 장소는?
▶장채원 감독: “주 무대가 되는 시골집을 우리 할머니집이다. 경북 영천에 있다. 교회장면은 청주에서 찍었고, 인트로에 등장하는 공장신은 대전에서 찍은 것이다. 할머니집은 한쪽은 기와, 한 쪽은 컨테이너 구조의 기묘한 공간이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이곳을 택한 것이다. 어떻게든 적은 제작비로 찍어야하니. 로케비 아끼고 미술비를 많이 쓰려고 했다. 제작비는 전부 내 돈으로 조달했다. 쉽지가 않았다.”
Q. 동생은 갇혀서 족쇄가 채워진 상태이다. 이 공간에서 상당히 고어한 장면이 많다. 특수효과는 어떻게 준비하였다.
▶장채원 감독: “특수분장은 우리끼리 해결이 안 되어 외부의 전문가를 모셔왔다. 욕심을 부릴수록 더 좋은 퀄리티가 나오지만 제작비 문제로 적당히 타협해야했다. 신체의 장기(臟器)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욕심을 내었다. 더 많이 나왔으면 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 초반의 좀비 몹신은?) “학교에서 춤 동아리 하는 친구가 있다. 그 댄스팀을 데리고 하루 동안 찍었다. 어떻게든 그 장면을 찍고 싶었다.”
Q. 극중 ‘구원교회’의 요셉의 성격은 무엇인가. 영화 중간에 기쁨이가 요셉 앞에서 성경책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있다.
▶장채원 감독: “영화는 기쁨이가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교회’로 했다. 흔한 이름이지만 적당했다. 기쁨이는 요셉을 훤히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데려와서 죽이는 것이다. 유혹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순진무구한 교회청년을 유혹하는 손길인 셈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랩핑 장면도?) “의도적이었다. 보면서 ‘아, 야한 장면인가? 아니네~’하게 만들고 싶었다. 배우들은 진지하게 찍었는데 스탭 친구들이 ‘너 취향 이상해’라고 하더라. 난 스릴러를 좋아한다. 사랑이야기를 하더라도 망한 사랑,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관심이 있다.”
Q. 제일 기이했던 장면은 기쁨이 동생에게 '사람'을 던져주고, 안방에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현수야 꼭꼭 씹어 먹어라!"고 말한다. 남동생이 있는가?
▶장채원 감독: “남동생이 있긴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보호하는, 그런 닭살스러운 사이는 아니다. 그 장면은 재미있으라고 넣은 것이다. 김치찌개는 일상적인 음식이지만 그 장면에서는 ‘역한 느낌’을 준다. 굳이 의미를 주자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은 같은 걸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사는 보는 사람은 재밌는데 기쁨에겐 절망적인 상황이다.”
Q. 마지막에 요셉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고서 "이게 뭐에요?"라고 말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장채원 감독: “각자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저의 의도는 진심으로 기쁨이는 요셉을 믿었던 것이다. 용서받고, 구원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정말 이 사람은 다를 거야. 믿을 수 있어.’ 그랬는데 다른 사람이랑 똑같구나. 그런 슬픈 감정이었을 것이다.”
Q. 촬영은 시나리오대로 되었는가. 찍으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장채원 감독: “촬영 들어가기 전에 찍을 것을 확실히 정했다. 영화에서는 요셉은 바닥에 떨어진 ‘목걸이’로 자신의 동생도 (기쁨이에게) 희생당한 것을 알게 되는데 시나리오에서는 ‘동생의 팔’이었다. 그런데 제작비 때문에 찍을 수가 없었다. 시나리오대로 찍기는 했는데 편집에서 잘라낸 부분도 많다. 처음엔 런닝타임이 1시간이 넘더라. 신을 많이 드러냈다. 기쁨이가 자기의 팔뚝을 자르려고 고민하는 장면도 있고, 한밤에 경찰이 찾아오는 신도 있다. 편집에서 잘려나갔다.”
Q. 제목 ‘당신의 기쁨’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장채원 감독: “신이다. ‘신의 기쁨’이다.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신은 그런 초월적인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관객일 수도 있다. 기쁨이를 가엽게 생각하고. 용서해 줄 수 있기를.”
Q.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꾸었는지. 보통 어떤 영화를 보고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하는데.
▶장채원 감독: “나의 경우는 영화를 해야겠다하고 나서 인생영화가 생겼다. 확신이 없는 경우였다. [올드보이]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영화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Q.영화의 꿈은 어떻게 싹텄나?
▶장채원 감독: “충남 삼성고를 다녔다. 자사고이다. 학교 가니 공부 잘하는 친구가 많았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 절망감을 느끼며, 내가 잘 하는 것을 찾아보았다. 학교에서 예체능 수업이 있는데 ‘영화창작과 표현’ 이런 것도 있었다. 영화, 다큐, 뮤비 영상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성적표에서 1등을 해봤다. 재밌었다. 그 뒤로는 영화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홍익대 영상애니메이션학과 19학번이다.”
Q. 대학 가서 학교에서 영화 찍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장채원 감독:“처음 학교 들어가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끼리 찍어야하니까 힘들었다. 한 번은 로케이션 답사를 간 적이 있다. 후배 차를 타고 피디랑 현장을 둘러봤다. 비 오는 날 저수지 근처였는데 차바퀴가 하나 빠져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었다. 다들 멘붕이었다. 다들 들러붙어 차를 뺐던 기억이 난다. 차를 운전한 사람이 이번 영화 조연출을 맡은 후배 송지윤이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이 영화 못했을 수도 있다.”
Q. 장채원 감독의 첫 작품은 언제 찍은 것인가?
▶장채원 감독: “고등학교 때 찍은 것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자기 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엄마의 등쌀에 못 견디는 딸이 나온다. 그 영화로 상도 받았다. 대전독립영화제 청소년부분상.”
Q. <당신의 기쁨>은 제작비가 2천 만원 이랬는데. 집에서 안 도와주던가?
▶장채원 감독: “하하. 소소하게 갖다 쓴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 힘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학비도 많이 대주셨는데 손 내밀기가. 졸업작품은 내가 하고 싶었다. 알바를 열심히 해서 번 돈으로 찍었다.” (무슨 알바를 했는가?) “메가박스 조치원에서 1년 가까이 일했다.”
Q.가족은 영화일을 지지해 주는가?
▶장채원 감독: “저를 믿어주신다. ‘하고 싶으면 해라’고 하셨다. 영화감독 하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영화를 보셨는지, 좀비 나오는데..) “부모님은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걸 알아서. 재밌게 봤다고 해주었다. 부천영화제에서 말고 졸업작품 상영회에서 보셨다. 내 작품이 제일 재밌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부모님 마음이 그런가보다.”
“지금은 시나리오 쓰고 있다. 장편으로. 스크립터도 했다. 이번에 부천에서 상영되는 영화 <둠벙>에서 스크립터를 맡았다. 충무로에서 연출부 생활도 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멈췄지만. 만들고 싶은 것은 스릴러이기는 한데 로맨스가 첨가된 것을 생각 중이다. 순수하게 이뤄지는 사랑보다는 ‘많이많이’ 힘들어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