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막식을 가진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은 로즈 글래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원제:LOVE LIES BLEEDING)이다. 1989년 미국 중서부 한적한 동네의 한 체육관(GYM)을 배경으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이 파괴적 사랑이야기를 펼친다. 이 작품에서 안나 바리시니코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흠모하고, 추앙하는 시골소녀 데이지를 연기한다. 안나 바리시니코프는 <맨체스터 바이 더 시>(2016)로 데뷔했고, 애플TV+의 <디킨슨>에서 에밀리의 동생 라비니아 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나는 세계적인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딸이다. 영화제 기간에 부천을 찾은 안나 바리시니코프를 만나 <러브 라이즈 블리딩>과 창조적인 일을 하는 가족이야기를 잠깐 물어보았다.
Q. 아버지가 미하엘 바리니시코프이다. 아주 오래 전 <백야>(White Night ,1985)를 봤었다. 이렇게 따님을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만나보게 되어 아주 기쁘다. 아버님은 이 영화를 보셨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안나 바리시니코프: “아, 아버지 영화를 보셨군요.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다행히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좋은 말을 해주셨다. 아버지도 도전, 모험을 감행한 것이니.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저의 도전과 모험에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아마 아버지니까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Q. 처음 배우의 길은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예술가 집안의 영향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사가 더 강했는지.
▶안나 바리시니코프: “사실 부모님을 다른 걸 했으면 하셨다. 이 길이 얼마나 불안과 고통이 따르는지 잘 아시니까.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저 자신의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 물론, 부모님의 존재와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자원이 무엇보다 소중한 창조성의 원천이다. 자식 중에는 변호사나 의사가 있었으면 했을 것이다.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가족 안에서 자라며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예술이 저에겐 첫 번째 언어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예술가인가? 변호사와 의사는?) “다들 예술과 관련된 직업을 하긴 한다. 저와 언니가 직접적인 연기자이고. 여자 조카는 서커스 예술가이다. 가족의 피에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 변호사나 의사와 결혼하지 않을까. 하하.”
Q.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어떻게 캐스팅이 되었는지.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안나 바리시니코프: “여태 받아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디션을 통해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오디션을 잘 봤고, 콜백을 받았다. 감독님은 작품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로즈 감독님 유머가 풍부하고, 꽤나 지적이다. 작품을 하면서 의지가 되었다.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
Q. 작품을 하면서 감독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데이지라는 캐릭터에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안나 바리시니코프: “데이지 캐릭터에 대해서는 대본에 다 있었다. 착색된 이(齒), 우유를 마시는 취향, 전형적인 이름. 아이 같은 측면이 있다. 그게 대본에 잘 나와 있었다. 루에게 집착하고,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예측불가의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데이지라는 인물에 대한 로드맵이 있었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한 모습을 준비해서 현장에서 보여주었다. 감독의 반응이 좋았다. 놀라게 하는 피드백이라도 작품에 맞춰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로즈 감독과 잘 맞았다.”
Q. 데이지의 연기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안나 바리시니코프: “가장 어렵게 생각하고, 신경을 썼던 부분은 관객들이 데이지를 보고 납득할 수 있게 보여야했다. ‘데이지는 왜 루를 저렇게까지 사랑할까’를 잘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 보기만 해도 데이지는 절망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처럼 느끼게. 그래서 데이지의 삶의 중심에는 루가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했다. 데이지는 자라면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齒) 상태를 보더라도. 어쩌면 학대를 당했을 수도 있다. 루가 꿈꾸는 인생의 다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셈이다. 또한 이 영화는 힘,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어떤 힘을 갖고 싶어 하고 그 힘을 가진다. 그런데 절박한 상황에서 그 힘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런 인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Q.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9년이다. 헤어스타일과 패션이 올드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데이지의 모습은 조금 수수한 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안나 바리시니코프: “사실 그렇다. 데이지는 다른 인물과는 스타일이나 톤이 다를 수 있다. 영화에는 1980년대를 지배했던 시대의 흐름이 있다. 겉모양을 꾸미려는 극단적인 집착들이 있다. 보디빌딩을 한다거나 머리를 엄청나게 세우는 것처럼. 외모를 과장되게 꾸미는 트랜드가 있었다. 그런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이 재키이고, 그런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것이 데이지이다. 대조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님이 원하는 것은 그 당시 흐름을 그리면서도, 이 영화가 그런 시대를 초월하는 측면도 이야기가 되기를 원했다. 루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측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데이지의 수수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Q. 마지막 들판에 유기 당하는 장면은 더미(모형)인가, 죽는 장면 연기에 대해서. ‘JJ’(데이브 프랑코)의 마지막 모습은 고어하다. 이에 비해 데이지의 죽음(의 순간)은 어쩌면 얌전하다.
▶안나 바리시니코프: “그 장면은 더미를 이용한 것이다. 일단 카메라가 제 얼굴을 가까이 찍었고, 목 조르는 부분부터 끌고 가는 장면은 ‘더미’를 사용했다. 영화를 보면서 편집을 어떻게 했기에 정말로 제가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꽤 충격을 받았다. JJ와의 경우와는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JJ는 그래픽적으로 과장되게 보여준다. 재키가 어디까지 힘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 장면이다. 그래서 가장 고어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반면 데이지는 재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루와 깊은 관련이 있다. 루는 영화 내내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했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상대적으로 무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데이지의 목숨을 빼앗는다. 결국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런 죽음이 모습을 통해 힘의 관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Q. 루와 재키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 배우에 대해서.
▶안나 바리시니코프: “정말 두 분 다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훌륭한 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이번 작품이 최고의 연기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둘의 케미는 훌륭했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테니스 코트에서의 두 사람의 신이다. 그 순간, 두 분의 감정이 순수하게 드러나고, 장르 영화의 재미까지 연결된다. 이 영화는 두 캐릭터의 케미스트리를 믿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다. 최고의 합을 보여줬다.”
(테니스코트는 둘의 관계, 그리고 루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재키가 갑자기 거인으로 변신한다!)
Q. 배우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책이나 넷플릭스, 혹은 낯선 도시로의 여정 같은.
▶안나 바리시니코프: “제 습관 중 하나가 배역을 맡으면 그에 어울릴 만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것이다. 캐릭터 구축하는데 영감을 얻는다. 결국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영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관계인 듯하다.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이루는 조금씩 도움이 된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안나 바리시니코프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티 오브라이언, 그리고 에드 해리스가 열연을 펼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부천국제영화제 기간에 세 차례 상영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10일 극장개봉된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스튜디오 디에이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