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미디어 특파원들이 특정 국가에 상주하면서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위치에서 세밀하게 관찰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니, 그 나라의 상황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된다. KBS에서는 보도국 기자(특파원)와 함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PD들이 PD특파원이라는 타이틀로 해외에 상주하며 특별한 취재활동을 펼친다. <추적60분>, <소비자고발>, <명견만리>, < KBS 스페셜 > 등을 만들던 강윤기 피디가 그러하다.
KBS 강윤기 피디는 2020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KBS 뉴욕PD특파원으로 근무했다. 기자들이 데일리 중심의 시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단련(혹은 특화)된 PD특파원은 <다큐 인사이트>나 <특파원보고-세계는 지금> 같은 프로그램, 혹은 KBS의 다양한 특집프로그램을 통해 기자의 리포트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현지 상황을 전해주는 아이템을 제작했다. < ON AIR, 미국은 내전 중> (부제: PD특파원, 미국의 진실을 생중계하다)은 그가 3년의 미국 취재경험을 책으로 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미국 특파원 부임 시기가 코로나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는 것이다. 그 열악한 취재환경에서 ‘트럼프’라는 희대의 정치인이 만들어낸 ‘미국 사회분열’의 모습을 최일선에서 목도한 것이다. 지난 5월 출간된 <미국은 내전 중>은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미국이야기인 셈이다.
지금 미국은 한국만큼 뜨겁고 숨 가쁘게, 미래를 저당 잡힌 채 돌진하고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토론회가 뜻밖의 결과를 내놓은 데 이어 미 연방대법원에서는 트럼프에게 아주 유리한 결정을 내린다. (2020년 대선결과 뒤집기 시도혐의에 대해 ‘전직 대통령 면책특권’을 결정함) 전 세계가 우려하던 지옥문의 빗장이 하나 벗겨진 것 같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와 향후 경제전망이 불가측의 영역으로 휩쓸려간다. 푸틴의 우크라이나(침공)와 이스라엘의 가자 사태, 그리고 중국 이슈까지 세계의 질서와 안정, 평화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는 고사하고, 정작 자기들 나라의 안정과 균형조차 유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강윤기 피디는 미국의 정치판을 우선 들여다본다. 올 연말, 11월 5일 치러질 제47대 미국 대통령선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돌아온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그 우려는 현실로 달려가고 있다. 강 피디는 다양한 취재원과 사건의 현장에서 그 가능성에 대해 취재했다. ‘올드보이’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 결과에 따라 미국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것이 뒤바뀔 것이니. 강 피디는 각계각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사회 저변의 움직임을 확인히고 그 진도를 예측한다. 미국 의사당을 난입했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트럼프에 대한 불가측성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 3부, ‘미국의 현재, 절망에 빠지다’에서 전해주는 주는 이야기는 또 다른 충격이다. 현재 미국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강윤기 피디가 차를 몰고 달려간 곳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 미시시피 잭슨이다. 곳곳에 싱크홀과 패인 곳으로 운전이 힘들다는 도로를 달려 찾아간 곳은 수도가 끊기고, 전기도 나간 동네이다. 토네이도로 전기가 끊긴 이 동네 한 주민과 나눈 대화. “전기서비스는 민영화되었어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매달 180달러가 꼬박꼬박 나가고 있어요. 돈을 안내면 정전에 대한 보수도 못 받고, 아예 전기가 차단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요금을 내고 있어요.”란다. 매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줄고 있는 잭슨시. 14만 인구 중 83%가 흑인이란다. 저소득층, 이민자들만 남은 동네는 세수 감소가 계속되고, 주거환경은 더울 열악해진다.
미국 사회에는 유행처럼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가 번지고 있다. 물론, 한국계도 그 대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 심해진 ‘다짜고짜 행패’와 ‘묻지마 테러’는 이들 비주류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트럼프 1기 집권이후 중남미 난민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도 증가한다. 난민문제는 이스라엘 가자지구나 유럽의 문제만이 아니다.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 미국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 남부지역 중에 온 이들은 (공화당 주지사에 의해) 버스에 태워져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뉴욕으로 내보내진다. 난민의 도래는 기존 사회를 뒤흔든다. 노동시장조차 변화된다. 이들 이민자가 없으면 서비스가 멈춘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이제는 IT업계에까지 이민자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것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온 ‘용광로’와는 또 다른 사회변화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챕터는 <일상화된 공포>이다. 강윤기 피디는 샌프란시스코 도심 공영주차장에 잠깐 주차해 놓은 차량이 털리는 경험을 했다. 노숙인이 늘면서 마약과 범죄가 급격하게 는다. 그리고 ‘펜타닐’이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미국의 마약위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의 ‘좀비’거리 취재담은 마치 종군기자의 취재담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 펜타닐보다 더 강한 ‘자일라진’이 확산하고 있단다.
미국사화이 불안감을 이야기할 때는 총기사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면 한국의 시청자들은 당연히 ‘미국에서 총기규제론이 힘을 얻겠지’라고 생각하는데, 미국 풀뿌리 시민들이 사고방식은 또 다르다. ‘자기 (가족)의 안전은 자기가 지킨다!’는 서부시대 이후의 굳은 신조를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도 의외이다. 이런 학교폭력은 SNS와도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강윤기 피디는 뉴욕 맨허튼 지하철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 미국이 왜 그렇게 위험한 사회인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왜 트럼프 같은 사람이 각광받게 되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면 미국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할 동안 세계는? 더 평화로워지고, 다원적 안정성이 완성될까.
‘미국은 내전 중’이다. 강윤기 피디가 에필로그에서 말했지만 ‘미국만의 전쟁’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유튜브와 SNS로 진영화 논란에 빠져 사회 전체가 허덕거린다. 정치적 양극화, 사회분열 앞에서 ‘정의’의 문제가 다시 논의되고, ‘뉴스’의 개념이 새로워지고 있다.
미국 대선 전에, 그리고 다음 번 한국 대선 전에 이 책을 읽어보고, 사회문제의 심각성, 극단의 동조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할 듯하다.
▶ON AIR, 미국은 내전 중 - PD특파원, 미국의 진실을 생중계하다 ▶지은이: 강윤기 ▶출판사:혜화동 ▶2024년 5월 15일/ 218쪽
[사진=강윤기PD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