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촬영현장은 언제나 수많은 스태프들로 북적댄다. 그런데 그 스태프들 중에는 ‘드라마BM’이란 직책을 가진 자가 있다. ‘BM’은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Business Manager‘의 약자이다. KBS드라마국의 BM은 도대체 뭘 매니징할까. 아마도 ‘드라마사업의 고수’일 것 같다. KBS BM 유건식 팀장(드라마국)을 만나 BM과 KBS드라마, 그리고 미국드라마와 한국드라마의 제작환경 차이에 대해서 물어봤다. 왜냐하면 유 팀장은 최근 <<미드와 한드,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한 권 저술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추석 전에 여의도 KBS별관 6층 드라마국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았던 KBS드라마 포스터들이 벽에 가득 붙어있고 책상마다 드라마 대본과 기획안이 잔뜩 쌓여있다.
KBS에서 BM이란 직책을 만든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드라마 제작여건이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사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2007년 8월 1일, 유건식BM은 그렇게 KBS내에서 ‘BM 1호’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물론 시작은 개척자의 몫이었다. 당시 구체적인 업무형태는 정해진 게 아예 없었다. 당시 KBS에서는 제작비로 드라마를 만드는 부서와 만들어진 콘텐츠로 그 권리를 다루는 부서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버젯이 커지고 유통과정이 글로벌해지면서 효율적 협상과 융통성 있는 ‘관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그래서 그에 합당한 롤과 포스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연간 수백 억 원에 이르는 드라마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의 권리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BM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건식 BM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드라마 외주제작관련 토론회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언론매체에서 거론하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문제는 사실 산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문제가 있다. 방송사의 문제라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방송사의 외주제작 의무비율을 도입한 것이 1991년이니 이미 20년이 더 된 문제이다. 건전한 외주제작 활성화를 목표로 만든 법인데 그동안 외주제작사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도토리 키 재기처럼 외주제작사가 난립하여 문제를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유건식 BM의 책에도 이 문제가 언급된다. 현재 외주제작사는 수백 개에 이르지만 제작여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는 업체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미국의 프로덕션과 동일한 역할을 하려면 제작비 전액을 부담할 수 있는 자금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 초록뱀미디어(128억 원), 삼화네트웍스(75억 원), 팬 엔터테인먼트(33억 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주제작사들은 자본금이 1억 원에도 못 미치는 영세업체란 것이다.
유 BM은 드라마 현장에서 느낀 한국드라마 제작의 또 하나의 문제로 개런티를 거론했다. “제작현업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톱스타에 대한 고액 개런티이다. 유명 배우나 작가의 출연료는 편당 억대를 넘어선다. 20회 가까운 미니시리즈의 경우 그들에게 지출되는 제작비는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보통 기본적으로 이들 스타급에게는 먼저 50%를 선급금으로 지급한다. 그러니 영세 드라마제작업체로서는 시작부터 엄청난 제작비 고갈에 시달리는 구조이다. 톱스타 작가의 경우도 그렇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법에 따라 외주제작사를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야하고, 허술한 외주제작사는 거액의 개런티를 스타에게 지급하고, 남은 돈으로 겨우겨우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드라마방송이 끝난 지가 한참 지나도록 배우들의 출연료가 정산이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외주제작사와 효과적인 합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 ‘문전사’(문화산업전문회사)라고 설명했다. KBS가 우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KGCS(KBS Global Contents Syndication·KBS 글로벌 콘텐츠 신디케이션)를 만들었다. 그리고 KGCS가 투자하여 별도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외부제작사도 투자자로 참여하여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수익을 쉐어할 수도 있다. “KBS는 문전사를 적절히 활용하여 좋은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바람의 나라’ ‘아이리스’, ‘추노’ ‘공주의 남자’ ‘학교2013’ 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칼과 꽃’을 제외하고는 성공한 드라마로 기록된다. 새로 방송되는 수목드라마 ‘비밀’도 문전사 방식으로 제작된다.
물론 BM의 임무 중에는 협찬을 따오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에는 협찬과 간접광고에 대한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 BM은 드라마 성격에 맞게 적절한 업체, 혹은 지자체의 협찬을 끌어오는 것이다. 이는 빠듯한 방송사 제작실정에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을 찍는 감독(연출피디)과 BM이 서로 도와가며 일해야 한다. 협찬금액의 규모에 따라 대응하는 수준이 있으니까.”라고 설명한다.
유 BM은 2003년에 미국에서 드라마제작에 관한 연수를 받을 기회를 가졌다. 3개월 단기코스였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고. 그래서 더욱 한국드라마에 대한 분석에 뛰어들었고 2010년에는 ‘드라마 킬러콘텐츠 생산’과 관련된 주제로 다시 한 번 미국행을 이룬다. 할리우드의 UCLA에서 익스텐션 과정에서 드라마제작 프로세스와 그 관리를 배웠다. 함께 수업 받은 사람들은 모두 배우, 모델, 작가, 프로듀서, 회계업무자 등 실제 미국드라마제작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유BM은 이들 틈에서 미국 드라마가 제작되는 현장을 몸소 체험했다. 그때 그가 수업 받으며 써내려간 노트와 하나둘씩 모은 자료가 이번에 책 ‘미드와 한드, 무엇이 다른가’로 집대성한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 제작환경의 차이에서부터 시장, 유통과정 등에 대해 위키피디아와 구글이 울고갈 정도로 잘 정리되어있다. 앞으로 미국드라마와 한국드라마를 언급할 논문작성자들은 이 책에서 일차적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BM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살짝 들어보았다. “이쪽 동네도 거의 비슷하다. 다른 방송사에서진행이 되다가 KBS에서 편성되는 경우가 있다. 운이란 게 때가 있는 모양이다. <성균관 스캔들>의 경우가 그렇다. 지금이야 출연배우들이 톱 대우를 받지만 당시에는 그 출연진 때문에 방송사가 선뜻 집어 들기가 어려웠다. KBS를 통해 각본이 기사회생했고 대박드라마가 된 것이다.”
한국드라마를 만드는 최일선에서 일하는 유BM이 재미있게 본 미국 드라마가 무엇일까? “‘24’. 구성을 어떻게 그렇게 숨 막히게 하는지. 보는 내내 어디 가지도 못하게 전개되더라..”고 소감을 말했다.
드라마BM으로서 현재의 한국드라마 해외수출에 대한 우려도 털어놓았다.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가장 큰 효자노릇을 하는 것은 일본시장이다. 드라마 수출액도 일본이 가장 높다. 요즘 일본시장이 어렵다.” 그러면서 ‘각시탈’ 이야기를 덧붙인다. “각시탈은 기본적으로 일본에 수출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본시장’을 아예 포기한 ‘각시탈’이 그만큼 성공한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워낙 시청률과 부가판권(VOD)이 잘 팔려 다행이었다.”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유건식BM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에서 드라마 제작 공부를 할 때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하나씩 정리해두니 이렇게 책으로 묶인다. 내가 이만큼 펼쳐놓았으니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얻게 되기를 바란다.”
<<미드와 한드, 무엇이 다른가>>는 미국과 한국의 드라마제작현황, 드라마방송환경, 드라마제작시스템, 드라마사업 등을 비교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미국의 인기 드라마 순위, 미국의 시즌제 드라마 연도별 방송현황, 한국의 인기드라마순위(시청률순위) 등이 수록되어있다. 그리고 혹시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 UCLA익스텐션 과정을 소개해주고 있다. 유BM이 공부할 때 정리한 ‘할리우드 용어사전’은 따로 복사해서 활용해도 될 정도로 충실하다. (한울출판사,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