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초등학교 교사 수현(손수현)은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넘친다. 그런데, 비 오던 어느 날 우산도 쓰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 요한(오한결)을 보게 된다. 가족에게서 학대받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집으로 데려와서 빵과 우유도 주고 관심을 보이지만 아이가 뜻밖의 행동을 한다. 담임교사 수현은 이제 난처한 상황에 몰린다. 편견과 오해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교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학교문제와 가정폭력이 뒤엉킨 사회고발극 <양치기>이다. 단편 <방과 후>를 거쳐 <양치기>로 장편영화감독 데뷔를 한 손경원 감독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 <양치기>는 12일(수) 개봉한다.
Q. 사실 이 영화를 똑바로 보기에 불편한 구석이 많다. 인간의 잔인한 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여러 번 봤을 텐데.
▶손경원 감독: “각본, 감독에 편집까지 하면서 수도 없이 봤다. 영화관에서는 10번 정도 본 것 같다. 개봉에 앞서 영화제에서 몇 차례 상영되었다. 영화제 참가 후 수정을 조금씩 했다. 개봉을 앞두고도 다시 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여전히 이런 것도 찍었어야했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Q. 단편 <방과 후>의 연장선에서 작업한 것 같은데, 단편 찍을 때부터 장편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가. 단편에서 ‘수현’과 ‘요한’ 역의 배우는 바뀌었다.
▶손경원 감독: “<방과 후>를 찍을 당시는 장편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단편을 다시 보면서 아쉬움이 컸다. 내가 하려고 한 이야기가 안 보이더라.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적절하게 인물의 환경, 상황 등을 수정했다. <방과 후>에서는 수현이 ‘방과후 교사’인데 <양치기>에서는 정규 교사로 바꾸었고, 각자의 상황을 면밀하게 보여주려고 살을 더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려고 했다. 다른 주변인물도 늘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맞닿게 하려고 스토리를 확장시켰다. 단편에서의 배우도 좋았는데 아역 배우가 그 사이에 너무 커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오한결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키 등을 고려해서 손수현 배우를 찾았던 것 같다.”
Q. 원래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나?
▶손경원 감독: “학창시절에는 꿈이 없던 아이였던 것 같다. 정도가 심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너무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힘들어하고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영화를 한 편 봤었다. 가슴 뛰는 영화였다. <레옹>이었다.”
Q. 하하. <레옹> 때문에 영화의 꿈을 키운 것인가?
▶손경원 감독: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영화를 배우고 싶은데 근처에 동서대 영화과(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영화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다니며 흥미를 많이 느끼게 되었다. 시나리오 가져가면 수정을 하는 과정이 있다. 이야기 쓰는 것도 재밌고, 연출하는 방식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학교생활 열심히 하며, 졸업하고 나서 내 영화를 찍으려고 매달렸던 것 같다. 지금은 다시 대학원(한예종 전문사) 진학해서 공부하고 있다. 영화를 더 깊게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다.”
Q. 동서대 영화과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열리는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건물? 영화제에게 많이 갔었겠다.
▶손경원 감독: “학교 다닐 때 부산국제영화제 많이 다녔다. 시네필 뱃지 받고, 밤새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원하는 영화 보겠다고 그리 설쳤는데 막상 영화 보면서 안 졸릴 리가 있겠는가. 에너지음료 마시며 영화 본 기억이 남아있다.”
Q. 단편 ‘가족사진’(2017), ‘남매 보존의 법칙’(2018), ‘36.5’(2019), ‘방과후’(2020) 제목과 시놉시스만 보니 주제나 소재에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손경원 감독: “그런가? 그 때 그 때 내가 관심이 있던 소재에 집중한 것 같다. 저는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불편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 걸 다뤄보려고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시나리오를 써서 선발되면 연출을 할 수 있었다. 2학년에는 떨어져서 촬영을 했었다. 졸업할 때 연출이 되면 연출전공이 되는 것이다. 시나리오 뽑히기 위해 열심히, 필사적으로 글을 써야했다.”
Q. 단편들의 성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고 그랬나?
▶손경원 감독: “하하 그러진 못했다. 엄청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큰 영화제 말고 작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었다. <방과 후>는 커뮤니티비프에서도 상영했고, 아시아대학생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Q. 손수현 배우가 연기하는 수현은 초등학교 정규교사이다.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교육문제이자, 사회문제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리서치는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손경원 감독: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에 아동학대 사건이 너무 많았다. 왜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까. 그런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형식으로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그만 두신다고 하더라. 요즘 아이가 무서워서 관둔다는 것이었다. 교사와 아이가 나오는 이야기를 개발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다. 영화 <양치기>는 허구이다.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은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부산교육청의 협조도 있던데) “학교 촬영에 협조를 받았다. 폐교에서 찍은 것이다. 좌성초등학교인데 많이 도와주셨다.”
Q. 수현은 4년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보육원에서 봉사활동도 하는 인물로 나온다.
▶손경원 감독: “수현 캐릭터를 처음 생각했을 때는 보편적인 인간을 구상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수현은 교사로서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나을 것 같았다. 보육원을 가서 아이들을 챙기는 사명감을 가진 친구이다. 그런데 자기 반 아이를 때렸다는 누명을 받게 되었으니 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보육원 장면에서 수현이가 선하게 보이기 바랐다.”
Q. 캐릭터를 뜯어보면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된다. 요한의 경우에도. 분명 집에서 사랑을 못 받고, 학교에서는 친구에게 따돌림 받는 아이이다. 이분법으로 보자면 착한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 선생님과의 일련의 사건에서 그런 모습이 도드라진다.
▶손경원 감독: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편견이 생기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요한이의 집의 환경도 보여줬고,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심상치 않은 지점이 느껴지게 했다. 다음에 이런 장면이 나올 때 생기는 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요한이는 (선생님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한 게 있다.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보여주려고 했다.”
Q. 영화 제목을 <양치기>라고 한 이유는? 거짓말쟁이를 말하는 ‘양치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손경원 감독: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이 많았다. 기획할 때부터 정하지 않았다. ‘양치기소년’이 직관적인 키워드라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소년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년’을 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양치기’는 양을 몰고 가는 것이잖은가. 우리가 이리저리 선동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제목을 ‘양치기’로 한 것이다.” (영어제목은?) “‘어 굿 보이.’ 제가 지은 것인데 영어제목이 더 좋은 것 같다.”
Q. 어찌 보면 요한의 상황에 대해, 수현의 상황에 대해 다들 무관심한 것 같다. 동료교사나 경찰이나, 가족들이 모두.
▶손경원 감독: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선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야 피해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주변인물이 능동적이진 않지만, 수현의 편에서 속단하지 않으려고 했다. 수현은 자신이 몰리는 상황이 되니 억울한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게 인간에겐 엄청난 동력이 된다. 그래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수현은 자기가 한 거짓말에 발목이 잡히고, 주변인물이 돌아서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Q. 수현의 거짓말은 어떤 것인가. 그것 때문에 요한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게 되나.
▶손경원 감독: “동병상련보다는. 결혼을 앞둔 수현은 시댁이 될 가족에게 자신의 부모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자신은 선(善)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거짓말의 형태라는 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Q. 배우 캐스팅. 손수현 배우의 연기에 대해.
▶손경원 감독: “수현 역으로 많은 배우들을 만나봤는데 손수현 배우가 맞을 것 같았다. 선한인상을 가졌고, 또한 예민해 보일 수 있는 구석이 있어서 제가 상상한 이미지랑 잘 맞았다. 수현 배우는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해 본적이 없다. 폭주하는 연기를 내 영화에서 처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사실, 육체적 폭력만큼이나 언어적 폭력이 충격적이었다. 요한이 수현에게 한 욕이나, 수현이 보육원에서 한 욕설이나 충격적이다.
▶손경원 감독: “일단, 수현이가 먼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선생으로서 요한의 엄마(금해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누가 먼저 잘못 했는가가아니다. 요한은 매일 같이 엄마에게서 그런 욕을 들었을 것이다. 수현이는 자신의 입장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요한은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요한이가 엄마를 미워하더라도 참을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험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욕은 금기시된다고 본다.”
“그리고 후반부에 수현이가 욕을 하는 것은 요한을 만나기 전 시점이다. 수현이가 이성의 끈이 풀리는 순간이다. 수현은 욕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약혼자도 자기를 안 믿어주고, 엄마도 자신을 위로하는 듯하면서 사건을 캐묻는 것이다. 요한의 엄마로부터 심한 욕을 듣고, 이성의 끈이 끊어지면서 그런 행동을 한다.”
Q. 요한의 ‘아빠’(김윤배)는 누가 민 것일까. 술 때문일 수도 있고, 요한이가 민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손경원 감독: “저였으면 밀었을 것이다.(하하)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사고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밀었을 수도 있다.” (집주인 할머니도 유력하다) “집주인 할머니는 요한이가 사는 꼴을, 집안 환경을 가까이서 보았을 것이다. 잘 알 텐데 그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인간의 면을 비판하려고 했다. 마지막에 보이는 행동이 속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요한이의 범행의 흔적일지도 모르는 비닐을 태우는 것이. 그간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일 것이다. 할머니는 요한이가 밀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 찾아온 수현에게는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수현이의 상황도 알고 있다. 집으로 몇 차례 찾아와서 했던 이야기도 있으니. 수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에는 엮이지 말라는 마음일 것이다.”
Q. 수현이 마지막 집을 나설 때 골목길에서 아이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 않고, ‘어른으로서’ 끼어들려고 한다.
▶손경원 감독: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현이는 교사로서 투철한 사명을 갖고 있다. 초반에 학교선생님들 회식 끝나고 골목에서 그런 상황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 있었다. 신경을 안 쓴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요한이 환경을 못 본 채 하다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수현은 ‘신경을 쓰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Q. 마지막 보육원 장면. 불안하지 않나요? 요한이를 믿어야 하나요?
▶손경원 감독: “수현의 질문(너가 그랬니?)에 요한은 정확하게 대답을 안 하는 걸로 결정했다. 그 대답을 관객 분한테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 엔딩에서 요한이를 은지와 함께 둔 것이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도 나처럼 비슷한 누명을 쓴 적도 있으니. 그 옆에 요한이 있다는 게 공포스러울 것이다. 동시에 요한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수현이가 제일 잘 알잖은가. 요한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제는 이 안전한 공간에서 바뀌는 것인가라는 생각할 것이다. 그런 딜레마에 빠진 수현의 얼굴이 담긴 것 같다. 저는 요한이가 앞으로 행복하게 크기를 바라죠. 그게 어떻게 될지는 바라보는 수현처럼, 우리 어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양치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지 저의 고민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시고 저와 함께 이런 고민을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개봉을 앞둔 손경원 감독이 예비 관객에게 부탁했다.
손수현, 오한결, 금해나, 김윤배, 조경창, 남미정 등이 출연하는 손경원 감독의 데뷔작 <양치기>는 12일(금) 개봉한다.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