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의 감성 판타지 무비 <원더랜드>가 개봉되었다. <원더랜드>는 사랑하는 사람(가족, 연인)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개발된 A.I .서비스 '원더랜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영상통화로 떠나간 사람을 다시 만나고, 대화하고,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 서비스가 유효하려면? 김태용 감독이 <만추>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장편 극영화이다. 김태용 감독은 1999년 민규동 감독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데뷔했고, 2006년 <가족의 탄생>을 내놓았다. 정말 장편극영화에 있어서는 과작(寡作)인 셈이다. 오랜 시간 연구실에 갇혀 AI만 파고든 것 같은 김태용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 탕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 사람은 2014년 결혼했다. 제일 궁금한 것, 두 사람은 평소 어떤 말로 대화하는지. "한국어, 중국어, 영어 섞어서 해요. 어느 것 하나 완전하지는 않아요."란다.
Q. 영화팬으로서 오래 기다렸다. 개봉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있는지.
▶김태용 감독: “정말 기다린다는 것이 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이 많다. 보이지 않는 CG작업이 많았다. 각자 따로 찍은 것을 맞추는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했다. 대화할 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관객들이 이 미세한 것을 어떻게 보실지. A.I.가 핫한 지금 개봉되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Q. A.I.(인공지능)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는지.
▶김태용 감독: “아마 2016년 즈음일 것이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통화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아내인) 탕 배우에게 이야기했더니 ‘좋은데....’ 하더니, 며칠 지나 ‘그건 하면 안 될 것 같아’라고 하더라. 아이에게 핸드폰 주는 것처럼 그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 어렵다. 핸드폰이란 것은 우리의 가치판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이용하고 있다. A.I란 것도 우리의 가치판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삶으로 확 들어왔을 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은 확실하다. 핸드폰처럼 AI도 우리의 욕망으로 상품이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과의 대화’는 아마 가장 큰 욕망일 것이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영상통화를 많이 한다. 코로나 때 화상회의도 많이 했고. 그런 만남과 실체적 만남, 가상의 만남이 헷갈린다. 가족의 개념이 확장된 것처럼 다양한 케이스가 있을 것이다.”
Q. <만추>를 찍었던 배우 탕웨이를 지금 다시 연기자로 보니 어떤가.
▶김태용 감독: “촬영장에서만 보던 배우였는데 이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지 옆에서 다 볼 수 있었다. 세트장에서 만나 결과만 보던 배우를 옆에서 과정을 보니 이상하다. 그러면서 탕웨이는 좋은 배우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이야기 하려니 부끄럽네요. 탕 배우는 준비를 많이 한다. 극중 고고학자를 연기하기 위해 ‘그의 방은 이럴 것이다’며 책을 쌓아두고, 프린트한 것들을 벽에 붙여놓는다. 극중 ‘바이리’가 엄마이자 딸이다. 심리적으로 배우들과 어울리려고 같이 지내며 준비하더라. 탕 배우는 질문이 많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도망가면 되지만, 이건 집에서도 같이 있으니. 청소하다가도 ‘이게 무슨 뜻이야?’하고 묻는다.”
Q. 그런 배우와 같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김태용 감독: “정말 ‘원더랜드’ 같은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고 종속되기도 하는 것이니. 거리감이 있을 때 마음의 감정을 지키던 것이 실제 만나면 무너지기도 한다. 핸드폰 같이 말이다. 핸드폰처럼 삶의 방식과 밸런스를 맞추던 것이 이제 훌쩍 뛰어넘어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꾼다. 종속되는 쪽으로. 아, 탕웨이 배우랑 같이 있으면 좋은 거죠. 서로의 일을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니.”
Q. <만추> 이후 영화 말고도 많은 창작 관련 일에 관여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장편 극영화를 만나보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공백이 궁금하다.
▶김태용 감독: “몇 가지 시도했던 게 있었는데 시나리오가 잘 안 풀렸다. 그 사이에 공연을 몇 개 연출했다. 시작을 공연을 했기에 공연에 애착이 있다. 탕웨이 배우도 원래 연극연출을 전공했었다. 중국의 ‘중앙희극학원’에서 연출전공을 했다. 우리나라 한예종 같은 곳이다. 공연 연출하다가 공연배우가 되었고, 지금의 영화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인 공연이야기를 많이 한다. <원더랜드>는 오래 준비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도, 촬영도, 후반작업도. 그래서인지 쉬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 10년 넘게 이것만 했다.”
Q. A.I.를 다루는 SF물이지만 공상과학영화라는 느낌보다는 정서적 멜로드라마의 느낌이 강하다.
▶김태용 감독: “기술의 발전이 무엇을 가져올지 고민을 했었다. ‘터미네이터’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가 금방 올 것 같다. 사람과 그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계속 같이 살게 된다면? 이런 생각은 관념적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와 잘 맞아야한다. 이미 영상통화처럼 일상화되기도 했다.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만난 것 같기도 한 느낌. 이게 땅에 붙은 기술처럼 느끼도록 공부를 많이 했다. 과학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5년, 10년 뒤 현실화될 것 같은 기술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거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데이터’하며 숫자와 문자, 기호가 스크린을 채운다. <매트릭스>처럼. 앞으로의 세계는 데이터가 입자로 표현될 것이다. 입자가 움직이는 파동으로 구현하는 ‘물성’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과학기술이 새로우면서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했다.”
Q. 과학자의 자문을 구했다고 했는데, 실제 영화 속에서는 A.I. 과학들에 대한 설명적 언급은 없다. 배제한 이유가 있는지.
▶김태용 감독: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가올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이뤄졌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지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의 뇌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처럼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로써 A.I를 다룬다. 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저 사람은 왜 이전 같지 않지?’ ‘난, 누굴 좋아했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내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진짜 가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믿음의 문제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렇게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다양한 가족의 케이스를 통해 그런 감정의 태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과학의 신비로움을 비켜갔다. SF로서 과학은 이미 갈만큼 갔다고 한다. 인간의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탕웨이를 비롯하여 호화 캐스팅이다.
▶김태용 감독: “영화에서는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다양한 케이스를 볼 수 있다. 어느 한 쪽이 너무 세면 다른 케이스에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 다 같이 스타이거나 다 같이 그러지 않은 연기자여야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케이스가 존중받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각 케이스마다 파편화된 태도를 보인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거나 영향을 미친다. 서로의 존재감이 비슷한 크기여야한다고 생각했다. 제작자의 욕심과 내 욕심이 합쳐져서 캐스팅이 이뤄진 것이다.
Q. 누군가 죽은 뒤의 세상을 걱정하며 그 대책을 세우는 이야기이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원더랜드’ 말고 다른 제목은 생각해 보았는지.
▶김태용 감독: “어릴 적부터 겁이 많았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들 자기 주변에서 떠나보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꼭두> 공연을 했었다. ‘꼭두’ 상여는 사람이 죽은 뒤 죄와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꼭두는 망자의 어두운 저승길을 함께 하는 존재이다. A.I.라는 기술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하며 기술이 발전하고 상품화 될 것이다. 그 방향은 헤어지지 않고, 두려움을 없애는 방향일 것이다. ‘그런 세계는 원더랜드일 뿐이야’, ‘그 사람은 그곳에 있어!’라고. 그게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아니라 나의 믿음이 중요할 것이다. 그럼 ‘앨리스의 원더랜드’처럼 ‘여기는 진짜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제목도 생각해봤지만 안 떠올랐다.”
Q. 탕준상 배우의 경우는?
▶김태용 감독: “작은 역할이지만 탕준상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가 필요했다. 원래 진구(탕준상)가 그런 친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사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다면 진구는 다른 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피아노가 되었든 자동차가 되었든, 할머니는 손자인 진구가 원하는 대로 다 사준다. AI는 인터렉티브하게 발전할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진화하는 것이다. 스키복 사달라고 했다가 안 되면 반바지. 아니면 보드복 식으로. 에이아이는 사람의 대응에 따라 인터렉션을 하며 발전할 것인데, 결국 우리의 욕망의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결국 에이아이 기술은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Q.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김태용 감독: “시나리오 보고 제작자가 ‘SF판 <가족의 탄생>’ 같다고 하더라. 이게 대안가족 홍보영화는 아니다. 그런 주제를 담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관계가 확장되는 것을 생각한 것 같다. 지금처럼 A.I까지 들어온 세상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농담 삼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로봇청소기가 가족이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나 어렸을 때 키우던 강아지가 죽자 할아버지가 다른 강아지를 사주시는 것이다. 그때는 강아지가 가족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바뀌었다. 지금은 강아지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어쩌면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A.I.에 더 많은 돈을 쓸지도 모른다. 탕준상의 할머니처럼.”
Q. 바이리(탕웨이)라와 성준(공유)이 시장골목에서 만나 춤추는 장면에서 거울이 활용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김태용 감독: “정인(수지)과 태주(박보검)가 처음 마주칠 때 둘은 차례로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친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필터링을 통해 본다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게 유리든 거울이든, 창이든 문이든. 영상통화도 툴을 통해 상대를 보듯이. 맥락이 그렇다. 코로나 때 마스크를 쓰고 상대를 보았다. 이젠 바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 직접 만나는 것보다 전화로, 전화보다는 문자로 보는 것처럼. 탕웨이와 공유가 춤추는 장면은 여러 버전을 찍었는데, 거울로 보이는 게 허상 같아 보이기도 하고 판타지 같기도 하다. 진짜인가 상상인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주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Q. 탕웨이의 극중 이름은 ‘바이리’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리바이)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김태용 감독: “그렇다. 내가 중국 이름을 잘 몰라 탕웨이와 상의하다가 이백 시인 이름에서 가져왔다. 현실과 이상 사이를 넘나드는 시인이다. ‘리바이’를 ‘바이리’로 바꾼 것이다.
Q. 정인(수지)과 태주(박보검)가 서먹한 모습을 보일 때 정인은 ‘너, 왜 막 대해?’라며 조금 거칠게 말한다. 그 사이 시간의 경과가 있었는지?
▶김태용 감독: ”살아 돌아온 사람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계에서는 비약적인 순간이 있다. 어제까지 좋았다가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런 감정적인 비약의 순간을 영화에 나타냈다. 정인이가 왜 그러지? 태주가 아니라 어쩌면 정인의 문제인가? 의사가 하는 말에도 그런 뉘앙스가 묻혀있다. 실제로 태주가 이상한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내가 서운하고 이상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다.“
Q.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 중에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나?
▶김태용 감독: ”하하. 난처한 질문이다. 탕 배우가 나온 작품 다 좋아한다. 진짜로. 로맨틱 코미디에도 나왔고, 아주 신파 드라마에도 나왔었다. <지구최후의 밤>같은 저예산 아트영화도 있다. 다 좋아한다.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볼 때마다 놀란다. <만추>할 때와 지금의 <원더랜드> 연기도 완전히 다르다. 새로운 것을 매 번 보여준다. 최근 <헤어진 결심>도 너무 좋아한다.“
Q. 탕웨이 배우와는 또 작품을 같이 할 것인가.
▶김태용 감독: ”저는 항상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 작품은 제작사가 시켜서 시나리오를 보내 간곡하게 사정해서 한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결국은 배우가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매 번 제안하고 매번 받아들이기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준비 중인 것은 없다. 이게 잘 되길 바랄 뿐이다.“
다음 작품을 또 한참이나 기다려야할 것 같은 김태용 감독의 회심의 역작, 한국 판타지영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SF대작, 할리우드산 챗GPT로는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가 매력적인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지난 5일 개봉되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