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예의바른, 무결점의 훈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배우 박보검이 인간의 감성에 완벽 싱크로된 A.I.로 변신, 사람의 정(情을) 확인시켜줄 예정이다. 5일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 <원더랜드>를 통해서이다.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이다. 박보검이 연기하는 태주는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후 연인 정인(수지)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럽다. 개봉을 앞두고 지난 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박보검을 만나 ’원더랜드‘ 속의 태주와 정인에 대한 감정의 두께에 대해 물어보았다.
기자들이 자리를 잡자 박보검은 마치 출석체크를 하듯 참석한 사람들을 한 사람씩 확인한다. “10년 전 명함을 받은 기자 분들도 있네요. 군 제대 후 처음 갖는 이런 자리 갖게 되어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렇게 서로 안부 묻고 인사하면서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면 다음에 만나면 더 반가울 것 같습니다.”며 인트로부터 호감도를 확 끌어올린 박보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박보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그리운 사람을 다시 본다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원더랜드’를 통해 만날 수 있다니. 이런 기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시기가 온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런 서비스를 신청하고 싶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극중 해리(정유미)처럼 건강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자(탕준상)를 생각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할머니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를 보면 다양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각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좀 더 풍부한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Q. A.I.태주와 실제 (인간) 태주의 표정은 다른 듯 같아 보인다. 우울한 태주에서 극단적으로 밝은 태주까지, 연기를 할 때 고민한 부분이 있는지.
▶박보검: “A.I. 태주는 행복하게 기억된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최대한 밝고 건강한 인물로 보이는 것은 정인(수지)의 입장에서 기억된 활기차고 이상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밝고 활기찬 모습의 태주로 보여야 세상에 남겨진 사람(정인)에게 좋을 것이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같이 울거나, 같이 (감정이) 다운된다면 더 슬퍼질 것이다. 천국에서는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모두가 행복하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되었다. 감독님은 현실로 돌아온 태주가 이상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정인의 말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A.I. 태주가 진짜야?’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걸 잘 표현하고 싶었다. 밝고, 건강한 모습과 함께 그렇지 않은 태주의 모습을 연기할 때 관객이 작은 것이라도 캐치할 수 있게 조금 더 미세하게 연기를 하고 싶었다.”
Q. 극중에 등장하는 ‘A.I’ 중에 자신을 본 사람은 태주가 유일하다. (영상통화)
▶박보검: “만약 실제로 AI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혼란스러우면서도 질투가 날 것 같다. 이런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온기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고간 자리에는 온기가 있어야한다. 영화를 보니 해리의 모습에서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AI세상의 부모님과 화상으로 밥을 먹고, ‘내 꿈 꿔요’하고는 서비스를 종료한 뒤 식탁에 쓸쓸하게 앉아 테이블을 쓰다듬는 듯하다. A.I. 기술이 발전해서 인간의 마음을 채워준다고 하지만,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은 여전하지 않을까.”
Q. 우주에서의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박보검: “처음 해보는 장면이었다. 크레인에 와이어만 달고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 들게 찍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우주선 안에서 찍은 장면은 의자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엉덩이만 대고 촬영한 것이다. 그 노력 때문에 우주 신은 잘 나온 것 같다. 물방울을 탁구 치듯 하는 장면도 기억난다. 나중에 CG로 입혀질 것인데 보이지 않는 물방울에 시선을 맞춰 연기를 잘 한 것 같다.”
Q. 정인을 연기한 수지와의 케미는 어땠는지. 노래 장면도 화제다.
▶박보검: “백상예술대상 진행자로 합을 맞추던 수지를 작품으로 만나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기로는 처음 만나 재밌게 작업했다. 시나리오에는 정인과 태주의 서사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둘의 서사에 대해 연구했다.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감정을 표현했을까. 아마도 태주는 정인을 예뻐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을 것 같았다. 리딩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우리끼리 서사를 만든 것이다. <원더랜드>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둘의 관계성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우리가 설정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만을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Q. 태주가 돌아온 뒤 정인의 감정이 흔들린다. 태주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박보검: “태주는 단면적으로 본다. 아픈 태주가 돌아왔을 때도 ‘같이 밥을 먹고 파티하자’고 하니 친구를 불러 모은다. 그런 기억만 봤을 때 태주의 신경은 온통 정인에게 맞춰져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람을 데려온 것만으로 정인을 기뻐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정인은 그렇지 않다. ‘너 몸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넌 왜 사람을 불러 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태주는 배신감보다는 ’아니. 왜 화를 내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Q. 집에 불이 났을 때는?
▶박보검: “(기자에게) 태주가 불을 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불을 지른 게 아니고 누전되어 불이 난 것이라고. 태주는 반응이 느리고, 인지부조화 상태이다. ‘불이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태주가 cctv 카메라 쪽을 보며 ’어떻게 해야하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느낌으로 연기한 것이다. 이후 정인이가 형사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횡단보도를 건너며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그 때 태주는 ’돌아온 나보다 AI 태주가 더 좋은가 보다’ 생각할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태주가 어떻게 보면 더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안아주지 않았나. 그 장면이 중요한 것 같다.”
Q. 두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박보검: “촬영 전날 감독님이 그냥 찍기가 아쉽다며 노래를 하면 어떨까 했다. 방준혁 음악감독이 ‘G선상의 아리아’를 편곡해서 노래를 만들었다. 가사를 조금 수정해도 좋다고 해서 가사를 썼다. <원더랜드>를 만든 사람과 남겨진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아서. 수지씨에게 들려주니 너무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 제목도 제가 지은 것이다. ‘위시’라고. ‘원더랜드 이즈 히어’(Wonerland IS Here). 보고 싶은 사람, 그 서비스가 여기 있다는 의미이자,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 말고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Q. 마지막에 장면(운동장 신)에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듯한 태주의 장면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박보검: “그 장면은, 감독님은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어!’라는 이야기를 썼다가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영화를 보니 제가 정인이 손을 꽉 붙잡더라고요. 그 장면 찍을 때 ‘그래. 나는 누구지? 내가 진짜 나인지, 에이아이가 나인지?’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내가 떠나는 것이 정인을 건강하게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운동장에서 헤어졌지만 정인이가 다시 마음을 바꾸고 달려와서 안아준다. 그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아~고맙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존재인데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을 테니. 내가 너를 항상 향하고 있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을 찌르는(해치는) 행동일지도 몰라 미안해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Q. 태주 말고 다른 역할을 한다면.
▶박보검: “선배님들이 잘 표현해 주셨다.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면 누군가의 아들 역할을 해보고 싶다. 손자, 아빠, 부모님처럼 가족의 이야기이니. 내가 누군가의 아들로 나온다면 어떨까.”
Q. 박보검 배우하면 ‘착하다’ ‘순하다’ 같은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의도적으로라도 악역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박보검: “그런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내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이번에 개봉 앞두고 지인들을 초대해서 시사회를 가졌었다. 영화사의 배려로 극장 한 관을 온전히 저의 손님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동안 작품을 함께 한 감독, 배우들과 지인들, 학교 친구, 뮤지컬 관계자들 모두를 초청 했다. 그 분들이 다 와 주신 거예요. 뒤풀이도 했다. 영화를 보고 생각을 해보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저도 그런 생각이다.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제대 후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다보니 하고 싶은 작품이 더 많아지더라. 다 하고 싶다. 액션도 저에겐 도전이다. 해보지 못한 역할이 많으니. 저도 잘 모르는 저의 어떤 능력을 만나보고 싶다.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색다른 연기를 하고 싶다.”
Q. 박보검씨는 화를 언제 내는지.
▶박보검: “하하. 화를 낼 일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린다.” (스트레스는 없는가?) “있죠. 그런데 빨리 잊어버린다. 그게 장점인지는 모르겠다.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한숨 쉬다가, 나중엔 ‘그럴 수도 있지’하는 타입이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 적은 별로 없다.”
Q. 이번에 <원더랜드> 때문에 수지씨와의 열애설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기사에 화가 나지 않는지.
▶박보검: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일동 웃음)
Q. 뮤지컬 무대에 선 소감은.
▶박보검: “이것저것 도전하고 싶다. 하나 끝내면 다른 프로젝트 참여하고 싶고. 앨범도 내고 싶고. 흥미로운 것들을 배우고 싶다. 뮤지컬이 재밌었다. 무대 연극도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라이브 연기를 하는 게 처음이었다.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느껴졌다. 그 때 희열을 느꼈다. 내가 말하는 것, 내 몸짓 하나하나에 관객들의 시선이 다 느껴진다. 연기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Q. <원더랜드>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박보검: “‘원더랜드’는 이상하면서도 이상적인 서비스이다. 행복했던 현장이었다. 정말이지 햇살같이 따듯한 현장이었다. 감독님부터,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춘 수지씨도 좋았고, 탕웨이 선배님도 좋았다. 극중 탕웨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가 <응답하라 1988>을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 정말이지 한국작품이 세계로 뻗어간다.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좋은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더라. 그럴 때마다 느끼지만 그들에게 추천해주고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다.”
Q. 해외진출 계획은?
▶박보검: “마음속에 항상 있다. 천천히. 아시아부터. 한국에서도 할 것이 많다. 점점 넓혀나고 싶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보검과 함께 탕웨이, 수지, 정유미, 최우식 등이 출연한 영화 <원더랜드>는 2024년 6월 5일 개봉되었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더블랙레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