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연말에 개봉되어 4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2: 정상회담>으로 돌아왔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한반도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관객들에게 내보일 예정이다. 개봉을 앞두고 지난 27일, 양우석 감독을 만나 <강철비2:정상회담>과 작금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물어보았다.
<강철비2>는 북한 땅에서 어렵게 열린 남북미 정상회담 중에 북한 강경파가 일으킨 쿠데타로 한꺼번에 핵무기가 탑재된 북한의 신형잠수함에 납치된다. 독도 앞바다의 잠수함 안과 밖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극한 대치가 이어진다. 정우성이 남한 대통령을, 유연석이 북한 지도자를, 곽도원이 쿠데타 주동인물을, 그리고 앵거스 맥페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출연한다.
“1편이 개봉된 2017년 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상황까지 몰렸었다. <강철비>는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의견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극화한 것이다.”라고 양우석 감독은 말문을 열었다.
양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부터 세계 석학들이 주창한 ‘한반도를 둘러싼 4개의 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소개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서 한반도의 운명은 4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남과 북의 전쟁, 북의 내부붕괴, 평화적인 비핵화 진행, 한국도 핵을 가지고 핵 균형에 의한 평화이다.”
이어 “냉전이 끝난 뒤 서방 관측가들은 공산주의 국가는 다 무너지는데 북한만이 혼자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UN의 강력한 제재가 계속된다면 북은 핵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철비>(1편)는 전쟁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끝나자마자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했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평화체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이야기와 함께 북한 정권붕괴 가능성을 보여준다.”
양우석 감독은 계속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핵무기의 효용성,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까지 이야기하며 ‘영화 속 시나리오’를 열심히 설명했다.
“북한정권의 붕괴를 대비해서 중국은 국경지대에는 수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를 조성하려고 했다. 쿠데타든 자연재해이든, 북쪽 최고지도자의 유고상태가 불러올 북한붕괴는 속수무책일 수 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감독은 1993년의 위기를 언급한 YS회고록 내용부터 에드워드 스노든의 파일까지 줄줄이 언급하며 한반도 정세의 위중함을 말한다. 듣고 있으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준비하며 리서치한 것만큼 열심히 파고든 느낌이 든다.
“20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데이터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 마지막에 한경재 대통령의 연설이 인상적이다. ‘통일을 바라십니까’라는.
“관객에게, 우리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각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을 완수하는 데는 6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예스’라고 답을 했든, ‘노’라고 답을 했든 평화롭게 살자는 의견은 같을 것이다. 그럼 북한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 전편에서 곽도원이 연기한 청와대 안보실장이 대학에서 특강을 하며 국내정세를 설파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연설이나, 훈시조의 장면이 있다. 감독은 혹시 역사를 모르는 젊은 층에게 뭔가를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인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넣었다. 그들의 짧은 연설을 통해 배경을 전하고 싶었다. 일본의 국수주의자 모리 신조의 연설장면이 있다. 그는 단순하게 나쁜 빌런이 아니고, 일본 정치체제 내의 한 축이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 남과 북, 그리고 한반도 정세
- 유연석이 연기한 북한지도자 조선사라는 캐릭터는 어떤가.
“우리가 갖고 있는 북한지도자의 캐릭터를 두 사람에게 나눴다. 하나는 유연석이 연기하는 그들의 지도자인 조선사, 또 한 사람은 곽도원이 연기하는 호전적인 호위총국장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분배한 것이다. 지난 세월동안 평화에 대한 열망은 우리보다 오히려 북한 주민이 더할 것이다. 그런 북한 주민의 열망이 압축적으로 투사된 것이 조선사 위원장이고, 북한의 기득권, 강경파, 못된 역할은 호위총국장에게 투영된다.”
(다시 정세 이야기!)
“1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분단은 우리 스스로 한 게 아니다. 분단을 만든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원칙적으로 평화체제로 갈지, 전쟁으로 갈지의 문제는 냉혹한 국제질서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 남과 북의 상황이 완벽히 바뀌어도, 남북한 간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번 영화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장치를 하였나.
“캐릭터를 통해서 보여준다. 1편에서의 남북 주인공이 뒤바뀐다. 대신 중국과 미국 측 인물은 그대로이다. 김명곤은 중국의국가안전부 요원에서 주한중국대사로, 크리스튼 댈턴은 CIA한국지부장에서 미국 부통령으로 나온다. 중국과 미국은 그대로 두고 남과 북의 인물(배우)을 바꿔본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 남북미 정상을 납치하여 잠수함으로 몰아넣었다. 잠수함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쉽게 생각해서 가장 찾기 어려운 곳을 골랐다. 육지의 어디라면, 미국 특공대가 순식간에 날아와서 작전을 펼칠 것이다. 그래서 바다 속 깊은 곳에 숨는 잠수함이 적합했다고 본다. 그리고 잠수함 내부 사정도 지금의 한반도 상황처럼 그리고 싶었다. 분단되고, 전쟁 중이고, 총질하고, 대치하는 모습들. 그런 현실의 압축판이 잠수함 안에서 펼쳐진다.”
● 잠수함은 한반도상황의 압축판이다
- 잠수함에서 펼쳐지는 액션씬이 아주 인상적이다.
“충무로에서도 오래 전에 잠수함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다.(유령,1999) 잠수함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가 않다. 촬영하기도 힘들고, 심해 속 모습을 제대로 연출하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생각한대로 화면에서 완성시켰다.”
감독은 리얼한 잠수함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전 조사를 많이 했다. 잠수함 내부는 정말 좁다. 장보고급 잠수함의 경우 장비, 무기 등의 공간을 빼면 승조원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 안 된다. 그 안에 수십 명의 남자가 뒤엉켜있다. 그것보다 좀 더 큰 손원일급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 앵거스 맥페이든이 연기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스무트’라고 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 이름은 1930년대 미국 보호주의 무역을 강화한 미국의 국회의원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30년에 미국에서는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하원의원 윌리스 홀리(Willis C. Hawley)가 농민들을 보호하겠다고 농산물 관세를 크게 인상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지금 미국은 다시 고립주의를 추구하고, 보호주의 무역을 강화하고 있다.”
- 정우성의 한경재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유연석이 연기한 북한 지도자의 이름은?
“조선사는 그냥 조선의 역사이다. 북핵 사태가 터진 뒤, 지난 30년 동안 북한주민이 가진 염원을 압축한 것이다.”
- 김명곤의 연기한 조선족 주한중국대사의 이름이 이홍장이다. 조금 유별난 작명이다.
“19세기 중국, 청나라가 서구 제국주의 개방 요구에 직면했을 때 이를 대처한 인물이 이홍장이다. 이후 급락하는 청 제국의 마지막 희망으로 양무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우리 역사와 관련해서는 위안스카이(원세개)를 보내 조선 지배를 조종한 인물이다.”
(다시, 강연!)
“지금도 강대국들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키려 한다. 미중갈등이 악화될수록 한반도는 그 가운데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자기나라 지도를 그릴 때 곧잘 닭의 형상을 그린단다. 그런데 한국이 그 닭의 벼슬에 위치하고 있다. 닭의 벼슬을 잡으면 그 닭은 꼼짝도 못한단다. 그런 지리학적 운명이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가 쓴 <예정된 전쟁>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패권 경쟁의 와중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당연히 한반도는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 전쟁이 나면? <강철비> 같이 진행되나.
“상상력으로 조합한 것이다. <강철비>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미국, 중국, 일본이 이런 시뮬레이션을 안 할 리가 없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신의 안방에서 벌어진 테러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얻은 교훈이 있었다. ‘상상력의 실패’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CIA가 경고했지만 실제 그런 공격을 받을지 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국력인 셈이다.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야 한다.”
- 전편이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상황이 여의치 않다. <강철비2>의 흥행전망은 어떤가? 시뮬레이션은 해봤는지.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데이터가 전무하다 보니....”
- 시사회 때 최인훈의 <광장>을 언급하셨다. 남북 분단을 다룬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강철비’도 분단문학인 셈이다. 분단문학 속 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살하거나, 전쟁에서 죽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냉전이 터지고, 양측이 총부리를 겨누면서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다. 왜 우리가 싸워야지 답을 못 낸다. <강철비>시리즈는 분단을 다루면서도 스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1편에서 주인공을 죽는다. 분단을 대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인정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 강철비를 두 편 내놓은 소감은
“늦은 나이에 감독 데뷔를 했다. 은퇴할 나이에 말이다. 한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변호인>때 받은 애정을 돌려드리고 싶다. 영화라는 것도 싫든 좋든 언론의 역할을 한다. 어떤 현상을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남북한 문제, 북핵 문제, 평화체제 이야기인 것 같다.”
- 다음 작품은? 3편이 만들어지나?
“손익분기점(395만명)을 넘겨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긴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의 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심각한 문제이다. 그 점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를 위한 올바른 생각, 가족의 형태, 가족 구성원에 대한 드라마틱한 변화를 영화에 담고 싶다.”
핵과 남북문제, 강철비를 이야기 하다가 ‘가족 영화’를 언급해서 살짝 놀랐다. 그래서 감독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물어보았다. 얼굴을 붉히며 “아직 미혼입니다”란다.
- 한경재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
“영화에서 보이는 대통령의 모습을 무능하다고 말할 순 없다. 어느 대통령처럼 과격하게, 함부로 말하기는 쉽다. ‘다 쓸어버려~’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지도자보다는 가능성이 없더라도, 인내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자세의 지도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 길을 명확하게 알고, 끝없이 인내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모습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진정한 강자의 모습은 이럴 것이다.”
- 극장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감은
“극장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하기조차 죄송스럽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스크 꼭 쓰시기 바란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극장이 우려스러웠지만 극장에서 전염된 케이스는 없다고 하더라. 극장 측에서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우고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혹시 오시면 마스크를 꼭 하시고 생활방역을 철저히 지켜주시기를 바란다.”
‘강철비2: 정상회담’은 29일 개봉되었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 양우석 감독- 영화 스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