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이 자전 <수인> 이후 3년 만에, <해질 무렵>이후 5년 만에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내놓았다.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그린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루며 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꿰뚫는다.
황석영 작가는 사료와 옛이야기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원고지 2천매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해낸다.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필생의 역작을 앞에 두고, 취재진을 만났다. 황 작가는 지난 주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소설 같은’ 실수로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출판사는 서둘러 다시 자리를 마련했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이다.
“전날 (518관련) 광주 행사에 갔다가 막걸리를 한 잔 했었다. 조선술이 은근 끈기가 센 지 술이 안 깨더라.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어. 죄송합니다. 펑크를 내는 바람에 책 홍보가 더 됐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수인>을 쓸 때 간이나 쓸개 같은 게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처럼 하루 8~10시간 앉아서 썼는데, 확실히 기운이 달린다. 주인공 이름도 헷갈려서 고생했다.”며 신작의 산고를 전했다.
소설은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현재 발전소 굴뚝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인 공장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천만 노동자 시대에 한국문학에 산업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없었다는 게 놀라웠다. 중요한 부분을 빠트린 만큼 이 소설로 채워 넣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철도원 삼대>를 집필한 계기를 밝혔다.
이진오가 굴뚝에 올라간 것과 관련하여 황 작가는 “굴뚝은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 지점이다. 일상이 멈춰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상상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며 “삼대의 이야기를 4대 후손인 이진오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염상섭 작가가 ‘삼대’(1931)를 통해 식민지 부르주아를 다뤘다면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산업노동자를 다룬다. 한국 문학사에서 연결되는 두 작품이다”고 덧붙였다.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작금의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지금의 모습은 우리가 여태까지 잘 살아왔는지 물어 보는 것 같다. 작가 말년에 중요한 화두가 생긴 것이다. 이제 세계를 볼 때 탈(脫)인간중심주의와 생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생물과 우주까지 포괄하는 사상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좀 하려고 한다.”
노벨상(문학상)에 대해서는 한 발 떨어져서 평가를 절하한 황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철학동화를 쓸까 한다”며 여전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간담회장의 황석영/ 창작과 비평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