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이 영화의 주요 소재(배경)으로 쓰인 영화는 꽤 된다. 옛 소련 핵잠수함의 미국 망명을 그린 <붉은 10월을 찾아서>, 핵미사일 발사 버턴을 둘러싼 함장과 부함장의 기싸움을 다룬 <크림슨 타이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일의 <유 보트>, 그리고 한국의 <유령>까지. 최근 이 긴장감 가득한 잠수함 대전에 프랑스 영화가 하나 추가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봉과 함께 조용히 사라져야했던 <울프 콜>(The Wolf's Call 2019)이다. <울프 콜>을 보면 프랑스 핵잠수함의 작전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프랑스 영화가 상상해내는 핵 전쟁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 잠수함 대 잠수함
프랑스 해군의 루비급 원자력잠수함 ‘티탄’이 시리아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다. 시리아에 투입되었던 특수부대원들을 긴급 구출하는 작전이다. 티탄 함 내부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각종 장비가 가득한 작전실에서는 레이더 화면분석과 각종 음파를 잡아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수면 위에 갑자기 이란 구축함이 등장하고,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잠수함이 접근한다.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음향탐지사 샹트레드(프랑수아 시빌)는 4엽 프로펠러 음을 포착한다. 가까스로 기지로 귀환한 이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했고, EU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한다. SLBM(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가 탑재된 프랑스의 핵잠수함 ‘무적’호도 출항한다. 러시아 동부지역(캄차카반도)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발사된다. 프랑스는 즉각 무적호에 핵탄두 미사일 발사를 명한다. 아뿔싸. 러시아에서 날아온 미사일은 핵 미사일도 아니었고, 러시아가 쏜 것도 아니었다. 이제, ‘무적’호의 SLBM 발사를 무조건 막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진짜 러시아와 프랑스, 유럽의 핵 보복전이 펼쳐질 것이니.
● 또 다른 ‘둠즈데이’ 악몽
‘무적’호에 무선으로 “실수였다. 발사를 취소한다”라고 알려 작전이 중단될 것 같으면 이런 영화는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에서도 같은 딜레마가 나온다. 강대국들은 복잡한 핵미사일 발사 명령체계를 완성시키고 끊임없는 훈련으로 숙달되었을 것이다. ‘실제상황’이 발생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최종 발사명령이 내려지면? 함장과 부함장은 각기 다른 곳(통제실과 발사실)에서 프로토콜에 따라 장엄한 죽음의 행진을 진행할 것이다. 그날의 발사 암호를 풀고, 발사 장치를 해제하고, 두 개의 열쇄를 각기 꽂고, 레버를 당기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중간 즈음에, 트럼프의 생각이 바뀌거나 푸틴이 변덕이라도 부려 미사일을 자폭시키기거나 회항시키거나, 발사체가 빈 탄두란 것이 밝혀지면? 급하게 연락해서 “아니, 아니, 발사 중지해!”가 제대로 이뤄질까. 분초를 다투는 상황, 최악을 염두에 두고 발사명령을 내린 뒤, 아니라는 또 다른 명령이 나올까. 분명, 적들의 해킹공격에 해당하는 가짜명령일 것이다. 그러니, 처음 명령 뒤의 그 어떤 명령이나 지시도 모두 가짜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사 버턴 누른 후에는 모든 무선이 차단될 것이다!) 그럼, 바다 속 잠수함은 핵미사일을 쏠 것이고, 지상에서는 상호간에 보복의 핵 미사일이 수십 발, 수백 발이 상대국가의 전략적 표적에 쏟아질 것이다.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전략공군의 한 미치광이 장군의 소련 폭격명령에 따라 어이없는 핵공격 전개가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페일세이프>도 미국과 소련간의 실수가 빚은 핵미사일 공방전을 다뤘다.
자, 프랑스 해군은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까. ‘티탄’함은 핵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급하게 ‘무적’호를 추적하며 절망적으로 작전을 펼친다.
외교관 출신의 안토니 보드리 감독은 ‘핵 미사일’을 탑재한 프랑스 핵잠수함을 활용하여 핵전쟁의 위험성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3자(이 영화에서는 테러리스)의 개입으로 시작된 미사일 공방전이 인류파멸로 이끌 수 있는 아찔함을 그린다.
<울프콜>은 잠수함 영화가 그리는 심해 속, 폐쇄된, 좁은 공간의 긴장감과 함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음향탐지사의 ‘절대음감’이 잡아내는 사운드의 효과로 영화의 긴장감을 백배 극대화시킨다. 프랑수아 시빌과 함께 오마 사이, 마티유 카소비츠 등이 프랑스 해군 잠수함 전사로 사투를 펼치는 프랑스영화 <울프 콜>은 OTT서비스 웨이브(wavve)에서 만날 수 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