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인기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인 <웃음의 대학>이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대학로 연극메카 ‘연극열전’의 레퍼토리와 9년 만에 돌아온 <웃음의 대학>은 지난 11일부터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번 시즌에서 '검열관'역에 송승환과 서현철이, ‘작가’ 역에 주민진, 신주협이 더블 캐스팅되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전시 체제에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희극을 없애려는 냉철한 검열관과 기어이 공연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대본을 실시간으로 수정하는 작가와의 밀당을 통해 웃음과 함께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올해로 연기경력이 무려 59년에 이르는 송승환을 만나 ‘웃음의 대학’과 공연인생을 들어보았다. 송승환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4급이다.
Q. 연극 <더 드레서> 이후 2년 만에 연극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송승환: “<더 드레서>는 2020년에 시작했다가 코로나로 도중에 막을 내려야했다. 2021년 다시 무대에 올렸었다. 한 자리 띄어 앉기를 하며 가까스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을 고민할 때 이 대본을 읽게 되었고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 늙으면 검열관 역할 못할 것 같았다. 제작사인 연극열전과 이야기해서 이렇게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Q. 대사가 많은 작품이다.
▶송승환: “대사를 무척 잘 외는 편인데 사실 힘들었다. 대본을 못 보기 때문에 녹음해서 들으면서 왼다. 긴 대사는 욀 수가 있는데 주고받는 짧은 대사는 잘 안 외워지더라. 검열관과 작가가 주거니 받거니 대사를 이어가야하는데 연습밖에 방법이 없다. 6주정도 리허설하며 많이 익숙해졌다.”
Q. 미타니 코키의 작품은 정신없이 웃긴다. 혹시 너무 웃겨서 NG를 내거나 돌발상황으로 대사가 엉킨 경우는 없었는지.
▶송승환: “이 작품을 한 이유는 미타니 코키의 작품이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 웃기려는 장면이 없다. 검열관의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특별히 상대방의 대사, 움직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억지스러운 대사가 없었다. 연습할 때는 코믹한 연기를 개발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웃음이 터진 적인 있지만 공이 시작되면서 완전히 녹아들었다.”
Q. 코미디 연기는 했었는지.
▶송승환: “연극은 꽤 오래 전에 시작했었다. 코미디는 대학로에서 <아트>(2006)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TV에서는 김수현 선생님의 코믹한 홈드라마에 많이 출연했었다. <목욕탕집 남자>(96)에서 코믹한 연기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코믹한 연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검열관이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대사나 장면은 없다. 자기가 맡은 역에 집중하고, 그의 태도가 변하는 상황에서 관객이 웃게 되는 것이다.”
Q. 관객들 반응은 어땠는지.
▶송승환: “여기서 웃음이 나오겠지 하는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웃음이 터진다. 중간에 박수가 나와서 놀랐다. 연극에서 중간박수가 나온 건 오랜만이다. 마지막에 공연허가 도장 찍을 때도 박수 나오더라.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좋은 것 같다.”
“2,30대 관객과 5,60대 관객의 반응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출연해서 그런 모양이다. 젊으신 분은 작가에게, 나이 드신 사람은 검열관에게 감정이 더 많이 쏠릴 것 같다. 저도 검열관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연극을 통한 인간성 회복 같다. 공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직업이 사람이 검열을 하다가, 점차 그 연극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의 본분을 잊고, 더 적극적으로 대본을 수정하게 된다. 제도권의 이슈나 이념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상실한 검열관이 작품과 작가와의 교감을 통해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공권력과 싸워야하는 것이다. 작가는 고군분투한다.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포커스를 두고 볼 듯하다. 엔딩에 가면 이 작품이 웃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란 걸 알 것이다. 미타니 코키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Q. 서현철 배우와 더블캐스팅 되었다. 서현철 배우의 연기는 봤는지. 차이가 있다면.
▶송승환: “서현철 배우는 코믹 연기의 대가이다. 코미디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대사를 할 때, 어프로치가 뛰어난 배우이다. 연습할 때 많이 배웠다. 서현철의 검열관은 무뚝뚝하고 냉정하게 코믹연기를 한다. 나는 다혈질로 화를 잘 내는 검열관이다. 다혈질이기에 마지막에 가서 작가에게 공감할 때 그 공감의 폭이 커질 것이다. 두 사람의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역의 맡은 배우도 그렇다. 주민진 배우는 젊은 작가지만 노련한 느낌이 들고, 신주협 배우는 노련함보다는 풋내기 같은 열정이 느껴진다. 표현을 다른 식으로 하니, 그런 맛으로 이 작품을 반복해서 보시는 분이 있을 것 같다.”
Q. 공연 내내 무대를 지킨다.
▶송승환: “1시간 40분, 거의 퇴장 없이 무대에 있으니 긴장의 텐션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다. 무대연기를 좋아하는 것은 캐릭터의 몰입을 길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몇 십 초, 2~3분 집중하면 카메라와 조명을 바꾸고 연기를 하게 된다. 반면 연극은 길게 가져간다. 공연 한 편이 끝나고 나면 다른 인물로 갔다 온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번 작품에서는 단 둘이서 연기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그 집중도가 더 큰 것 같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퇴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는 퇴장한 작가가 저를 데리러 온다. 무대에 단이 있다. 원래는 대본에 한 번 더 있었는데 테크니컬 리허설을 할 때 암전할 때 떨어질 뻔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 있는 것으로 수정했다. 연출의 배려와 후배 배우들의 도움을 받아 공연 내내 검열관 역할에 푹 빠질 수 있어 좋다.”
Q. 송승환만의 전투방식이 있는가.
▶송승환: “극중 작가는 권력에 대항하는 작가로서의 방식을 전투방법이라고 표현했는데, 나에겐 그런 특별한 전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또 제겐 핸디캡이 좀 있다. 상대 배우의 얼굴이 잘 보이질 않으니 귀로 집중하는 것이 저만의 전투방법일 것이다. 잘 들어야 한다.”
Q. 핸디캡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정도인지.
▶송승환: “대충은 보인다. 지금 여기 인터뷰 하는 장소가 안개가 가득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 여러분의) 형태는 보인다. 저기 두 분, 여기 한 분 앉아 있네요. 옆에 분은 남자고. 근데 눈, 코, 입은 안 보이니까 다음에 제가 또 봐도 못 알아볼 것이다.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 귀가 굉장히 예민해져야 된다. 상대방의 대사를 듣고 감성이나 느낌이나 이런 것들을 교감해야 된다.”
Q.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무대에 열중하려면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송승환: “그렇다. 대본을 눈으로 못 보니 들으면서 암기해야한다. 그런데 그것도 몇 번 해보니 괜찮다. 드라마 <봄밤>하고 <삼남매가 용감하게>할 때에도 암기한다. 보고 암기할 때보다 훨씬 더 좋다. 무대 위 작은 소품에서부터 대도구까지 위치를 알아둬야 한다. 리허설 할 때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챙긴다. 또 상대방의 표정이 정말 궁금할 때는 리허설 할 때 제가 가까이 가서 살펴본다. 30센티 정도 가까이가면 보이니까. ‘아, 여기서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기억을 해 두고, 그걸 토대로 연기를 한다. 드라마도, 연극도 리허설 과정이 있으니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챙길 좀 많아졌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린다.”
Q. 무대 말고, 생활은 어떤가. 운전은 못 할 것 같고, 골프는 하는 것 같은데.
▶송승환: “시각장애인 4급을 받아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골프를 좋아한다. 근데 이게 어렴풋하게 흰 공이 보인다. 서서 이렇게 내려다보면 하얀 공이 정확하게는 안 보이지만 하얀 솜처럼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헤드가 하얀 솜을 지나가게끔 치면 이게 더 잘 맞는가. 제가 시각장애 4급 받고 바로 홀인원 했다. 20년 동안 못했었는데 말이다. 특히 위험한 것은 밤에, 어두울 때 계단 같은 것 내려갈 때이다.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갖고 다니는데 계단 같은 걸 확인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없으니까. 그래서 지팡이에 플래시를 달았다. 이거 만들어 강부자 선생님과 이순재 선생님에게도 선물했다.”
Q. 같이 공연하는 창작진과 배우가 젊다. 세대차는 느끼지 않는지.
▶송승환: “세대차 느끼겠더라. 누가 옳고 그르다가 아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니, 그 시대에 대한 느낌도 저랑 다를 것이다. 젊은 배우들도 다르다. 주민진 배우는 뮤지컬 두 개를 연습하며 이번 작품 출연하고 있다. 요즘 배우들은 기억세포가 따로 있어 파일을 각기 저장하는 모양이다. 저도 멀티하게 일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는 못한다. 작품해석에서도 놀라게 된다. 물론 그런 것은 연습과정을 통해 잘 조정이 된다.”
Q. 검열관 역을 맡았다. 대한민국 대중문화, 공연계에 오래 몸담고 있었으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본인이 직접 겪은 ‘검열이나 심의’의 경우는 없었는지.
▶송승환: “난, 70년대에 연극을 처음 했었다. 21살 때였다. ‘76극단’이라고 기국서와 함께. 내가 아역배우에서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한 극단이었다. 그때만 해도 검열제도가 있다. 공연하는 작품은 검열심의를 받아야했다. 대사에 빨간 줄이 죽죽 그였다. 페이지 전체가 그런 적도 있다. 대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첨삭된 것도 있고. 그런 시대를 겪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니, 연극하는 사람들은 수를 생각해 낸다. 이렇게 못한다면 다른 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비유와 은유 같은 표현에 능숙해졌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겠구나. 죽죽 그인 대본을 앞에 두고 회의를 한 기억이 난다. 우리끼리 통쾌하기도 하고, 우리들의 비법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랬었다.”
“검열관 대사 중에 ‘나는 권력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쨌든 공권력 안에 있는 사람 역할을 하면서 제도나 이념에 충실해야하는데 대본에 빠져서 신념을 잃고, 인간성을 회복한다. 시대가 달라도 통용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도 통할 것이다. 요즘 TV뉴스 보면 웃을 일이 없다. 어느 시대라도 공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인간성을 되찾고 싶을 것이다. 저도 그런 주제에 반해서 이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Q. 연극은 어떤 식으로 하게 되었는지.
▶송승환: “어릴 때, 1965년에 국어책을 또박또박 잘 읽는다고 선생님이 동화읽기 대회에 나가보라고 하셨다. 1등을 했었다. 그걸 KBS에서 읽었는데, 피디가 1주일에 한 번 나오라고 했다. KBS가 남산에 있을 때였다. <은방울과 차돌이>에서 차돌이로 데뷔했다. 이후 어린이 연속극, 성인극에서 아역을 출연하게 되었다. 그 때 어떤 배우가 나를 명동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에게 인사시키고 대본을 주는 거였다. 1968년 이진순 연출자의 <학마을 사람들>이라는 작품이었다. 내게 첫 무대였다. 너무 재밌었다. 한 선배님이 무대에서 퇴장할 때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단지 넘어지는 것인데 관객석이 웃음바다가 되는 거였다. 내가 넘어졌을 뿐인데 웃어? 신기하더라. 그때 아역 연기로 동아연극상 아역상을 받았다. 아역상이란 것은 없었는데 특별상을 만들어서 내게 준 것이다. 자의식이 생기기 전에 아역 연기에 빠졌던 것이다.“
Q. 유튜브 방송에서도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송승환: “유튜브는 코로나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난타도, 공연도 다 멈췄다. 다들 유튜브한다고 해서 나도 시작해 보았다. 무대 공연을 할 때 분장실에서 잡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그걸 대중에게 전달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다. 대중예술 쪽에는 아카이브가 없다. 기획자, 프로듀서의 마인드로 접근한 것이다. 연극 전공하는 사람들도 숀 코넬리나 존 웨인은 알아도 김승호나, 박노식, 최무룡을 잘 모르더라. 그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영상아카이브 만들자고 생각했고, 오현경 선생님을 시작으로 강부자까지 40여 분을 했다. 이야기가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선배가수나 개그맨도 다뤘다. 그저께는 가수 박인희가 출연했다. 6월에 콘서트한다고 해서. 표가 벌써 매진되었다고 하더라. 그런 분들을 그리워하는 세대가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이 있다. 구독자가 25만인데 젊은 분들도 많이들 보고 있다. 그 시대 이야기를,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다.”
Q. 아카이브 이야기하니까. <여로>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
▶송승환: “드라마 <여로>는 남아있는 영상이 없다. 하나 남아 있는데 장욱재, 태현실이 재회하는 장면이다. 장욱재 배우가 ‘바보 영구’를 연기하고, 내가 ‘영구의 아들’ 역할이었다. 그때는 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아마 시청률은 100프로였을 것이다.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다가 드라마 할 시간이면 로비에서 <여로>를 보여줬다. 드라마 끝나면 다시 영화를 봤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녹화가 되기는 했지만 에디팅이 안 되었다. 30분 드라마를 찍다가 29분에 NG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연극 연습 하듯이 드라마 연습했다. 방송 당일에 드라이 리허설, 오후에 카메라 리허설하고 녹화하고 그랬다. 어린이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은 생방송이었다. 오래 했었다.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재밌는 일화가 많다. 옛날의 추억에서 유튜브 <원더풀 라이프>를 하고 있다.”
Q. 시각의 문제에도 좌절하지 않고 연기에 매진하고,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송승환: “어려서부터 연기를 했다. 집보다 무대나 스튜디오가 편하다. 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눈이 나빠진 후 계속 일할 방법을 생각했다. IT기기의 도움을 받아, 리허설을 통해, 기억력으로 그런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방법을 찾다보니 다 길이 있더라.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처음엔 힘들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배우나, 연출자, 기획자로서 조기은퇴를 해야 하나. 넷플릭스에 한글자막 있잖은가. 외국영화 볼 때 그 자막을 읽어주는 방법을 찾았다. 이가 없으며 잇몸으로. 자포자기 하는 것이 문제이다. 제가 완전히 실명한 것은 아니니까.”
Q.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했고, 이제는 공연계의 주역이 되었다.
▶송승환: “‘76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하다가 카튜사였던 친구 따라 용산 미8군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 안 들어온 외국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뮤지컬영화 <헤어>와 몇 편의 뮤지컬을 봤었다. 재밌더라. 소극장용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노래를 못하니까 배우가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1978년에 ‘76소극장에서 제가 머레이 시스칼의 <로브>라는 연극을 뮤지컬로 각색했다. ‘사월과 오월’의 멤버였던 백순진 형이 작곡을 하고, 이대 무용과 다니던 김명수가 안무를 맡았었다. 그게 저의 첫 연출 제작 작품이다. 그 후 배우로 활동하면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76시절에 많은 연극을 제작했고, 뉴욕 갔다 와서는 환퍼포먼스 극단 만들어서 몇 편의 연극을 만들었다. 작품을 올리면 좋은 평을 받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고 나면 늘 빚을 지는 것이었다. 항상 적자구조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가 싶어 투자를 받고, 전문적인 경영인 필요한 시대에 맞춰 PMC라는 법인을 만들었다. 1996년에. 국내에서는 돈을 벌 방법이 없었다. 글로벌하게 오래 할 수 있는 <난타> 공연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 지금도 잘 벌고 있다. 작년부터 다시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관객 구성도 코로나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명동의 난타전용극장의 경우 300석인데 150석은 미국과 유럽사람들이고, 100석은 동남아, 30석은 일본이다. 중국은 20석 정도 차지한다. 문화관광이 된 셈이다.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예전에 동양하면 상하이나 도쿄를 가던 사람들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K팝의 영향일 것이다.”
Q. PMC 계획은?
▶송승환: “코로나가 지나간 3년이 너무 힘들었다. 비용이 계속 나가야하니. 첫 해에 70억, 이듬해 30억 원 적자가 났다. 작년에 적자를 메우고 올해 본 궤도에 오른 것 같다. 공연도 다시 시작한다. <웃음의 대학> 공연 끝나면 <뮤지컬 정글북> 제작 들어간다. 코로나 때 못한 <정글북>을 6년 만에 올린다. PMC에서 리스크가 있는 새로운 작품을 하기엔 아직은 어려운 상황이다.”
Q. 서현철 배우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의 귀여움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송승환 배우는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이 어떤 면을 새롭게 볼 수 있을까.
▶송승환: “첫 공연 때 장미희, 이경진 배우가 공연장을 찾았었다. 이전에 드라마를 같이 했었다. 공연 보고 문자를 보내줬는데 ‘멋지고 귀여웠어요’란다. 저도 서현철 배우처럼 귀여운 면이 있을 것이다. 공연 후반부 보면 검열관이 어린애 같다.”
Q. 대사에 까마귀가 자주 등장한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
▶송승환: “해석이 많을 것 같다. 십자매도 나온다.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吉鳥)라는데. 검열관의 까마귀의 상처로 고쳐주고, 집에 데려오고, 그게 집을 떠나니 허무해한다. 본성이 착한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Q. 본인의 시각과 관련하여 공연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송승환: “<더 드레서> 공연할 때 시각이 안 좋다는 게 알려졌다. 그 때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두 분이 공연을 보러오셨다. 공연 끝나고 만났는데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즐거웠다고 하셨다. 물론 보고 듣는 것만큼은 못하겠지만, 이 공연은 행동보다 대사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극이니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장치를 하지는 않았다.”
Q.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송승환: “길게 잡은 목표는 없다. 올해만 해도 바쁜 것이 많다. 7월 16일 <정글북> 막을 올리고, 파리 올림픽 개폐막식 행사 해설을 한다. KBS와 함께. 올림픽 끝나면 <파주 북앤 컬쳐> 페스티벌을 한다. 책에 있는 스토리를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행사이다. 신인 작품을 무대 공연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10월부터는 <더 드레서>공연한다. 11월,12월엔 지방공연까지 잡혀있다. 이렇게 몇 달 일하면, 올 하반기에 다음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그건 내년에 하면 된다.”
Q.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고, 이후 도쿄, 베이징(동계)올림픽 행사 KBS 해설을 맡았었다. 이번에 파리올림픽도 하는지.
▶송승환: “평창은 좋은 경험이었다. 뜻밖에 큰 행사를 하게 되었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눈이 이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데 그런 건 아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프로젝트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인연으로 도쿄와 베이징 올림픽 해설을 하게 되었다. 파리올림픽 해설도 기대가 된다. 개막식을 센 강에서 한다는데 독특한 개막식이 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KBS가서 유니폼 맞추고 왔다. 저는 스타디움이 안 보인다. 모니터를 앞에 놓고 해설을 한다. 시청자로 모니터로 보는 것이니. 현장의 느낌을 전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꼭 봐야하는 것은 망원경으로 보고.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 중국, 일본할 때도 문화 역사 관련 책을 많이 보았었다.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Q. 최근 이순재 배우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사 까먹지 않는 한 100살이 될 때까지 연기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 화제이다.
▶송승환: “이순재, 신구 선배님이 연극판에서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나 힘든데 힘들다는 말을 못하겠더라.(하하) 글쎄요 내가 언제까지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체력이 닿는 한, 대사를 암기할 때까지는, 무대에서 버티는 체력이 있는 한, 그리고 연출이 저를 필요할 때까지는 할 것이다. 목표는 없다.”
Q. 입체적인 검열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참조한 것이 있는지.
▶송승환: “공연을 보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게 영화로 만들어졌다. <쉘위댄스>의 그 배우, 야쿠쇼 코지가 검열관으로, 아이돌이 작가로 나오는데 일본말이라 참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 캐릭터를 누굴 참조했다기보다는 대사의 느낌에 충심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런 캐릭터가 생겨나더라. 번역 과정에서 감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공연은 그렇다. 고압적으로 공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작가에게 동화되어 인간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잘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대사에 충실했다. 연극은 책이 중요한 것 같다. 대본이 좋고 나쁨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는 것 같다.”
Q. 배우와 제작자로 활동하며 행정이나 이외의 제안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송승환: “제안은 많이 받았다. 예전에 장관 제안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제 체질에 안 맞다. 거절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행정능력은 다른 일이다. 장관 같은 것은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의가 오면 거절하는데 10초도 안 걸린다. ‘그 일 못합니다’고. 저는 이렇게 운동화에 청바지 입고 다니는 게 편해요. 양복에 넥타이는 불편하다. 여러 제안은 많이 받았지만 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 더더욱 이 눈으로는...”
한국연극계의 공연 대표브랜드인 ‘연극열전’의 20주년 기념 시즌 [연극열전10] 두 번째 작품 <웃음의 대학>은 지난 11일 개막하여 6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송승환, 서현철이 '검열관'으로, 주민진, 신주협이 '작가'로 출연한다.
[사진=연극열전]